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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오 년 전. 대웅전이 조금 저 쪽에가 있었어요. 저 이 반대편으로 보고 있었고, 근데 세 채가 있었는데, 예 이십 한 이년 전에 화재가 났었어요. 근데 그걸 스님이 체험한 게 아니고, 예 우리 보살님이 기도를 열심히 여기서 다니셨는데, 예 잠깐 잠을 자는데, 뭐냐 이렇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향적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터가 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고 기왓장이 지금도 나온다고 합디다. 통일 신라 시대 때의 절인 것 같아요. 향미봉 동북쪽으로 800미터 정도를 가면 서당골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가 서당이 있어서 가서 공부도 하고 그랬어요. 산길로 다니면 가까웠습니다.&n…
이 방죽 여 수로가 옛날에는 이쪽에가 있었어. 문행기, 물 넘치고 하 는데. 이것이 큰 냇갈이였어, 옛날에. 개설피 승달공구 있잖아요. 거리 지금 냇갈있제 쬐깐한. 그리 기였는디 우리가 듣기로는 그래요. 어디든 지 지역에 가면 그 지역 토백이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무안도 지…
시집왔는디... 그날... 온날 시집 온 며칠 안 되서 삼 삼으러 가라고 하고 미영 자스러 가라하고 그러드마...(조사자 : 삼을 어디로 삼으러 가요? )아... 집집마다 인자 모두 거시기 해야갔고, 저기저... 그... 전에는 품앗이로 했어.삼도 삼고 막... 뭐 그래가꼬 내가 베를 메고 짜고, 그래가…
백방산의 호랑이라고 했잖아요.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마을에 훌륭한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신방리 마을의 고개를 하나 넘으면 그곳을 한밧재라고 하는데 그곳 범의 허리를 잘라버렸어요. 그런데 그 뒤로 내가 들었는데 황토 흙이 많았는데, 피같이 보였다. 범의 허리를 잘라서 신방리에는 훌륭한 사람이 안 나온…
우리 아버지가 일본서 탄광을, 일본을 들어가서 살 저게, 갈 저게 징용으로 들어 간거 아이라, 시골서 농사 지키고 못 먹고 사니까, 이민을 가는거 아이라 밀항을 해서 갔겄지 이, 지금으로 치먼 뭐... 그 회사에서... 모집을 해가꼬 거기 가서 노동자로 쓰기 위해서 모집을 허는 거여 그래서 가는 거여 울…
인제 지금은 없어졌지만은 벌교 인자, 벌교가 낙안고을 낙안군이란 말이에요. 벌교가 그때는 인제 조선 후기 때, 우리 마을이 조선 말기 천팔백 한 오십년 경에 동초면이라고. 낙안군 동초면이 우리 동네가 운동리가 면 소재지여. 동초, ‘동녘 동(東)’자 ‘풀초(草)’. 아 그래가지고 그 삼대 째 면장이 배출…
어뜬 처녀가 인자 즈그 아부지허고 둘이 사는디. 거 밥을 허며는 인자 밥을 해서 담으면 밥태기가 날 치고 그러면 부시막에 와서 멋이 얼른 주서 묵고 가고 얼른 주서 묵고 가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 보며는 먼 그 개구리도 같고 뚜거비도 같고 허는 짐성이 꼭 밥 차릴 때 나와서 주서 묵고 가고 주서 …
우리 관내에 읍동이라는 마음에 안산이라고 그 해발 이백 메타 정도 우뚝 솟은 산이 있습니다. 그 산 중덕을 미처 못 가서 기슭에 올라가며는 지금 현재 읍동리에 거주하고 계신 김공기씨 이 분이 연령이 예순 일곱입니다. 이 분 증조할아버지 이야기가 되겄읍니다마는 증조할아부지가 참 그 오랜 병환 끝에 시…
문덕면 법화마을은 순창 조씨가 설촌(設村)하여 집성촌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한 집도 없고, 파주염씨, 진원박씨, 그리고 다른 성씨들이 많이 살고 있지요. 효자 진원 박씨는 아버지 중백(重伯)과 어머니 함평노씨(咸平魯氏) 사이에 삼남 중 둘째로 태어났어요. 박효자의 휘(諱)는 홍현(洪鉉), 서기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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