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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게는 일하시는 분들이 농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를 심으며는 지금맹키 막 기계로 날리고 재초제로라도 뭐하는 것이 아니라, 비료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뭐하니까 이 구정물만 이뤄도 나락이 활착이 된다고 했어. 구정물만 이뤄도…그래가지고 일꾼들이 호미로 뽁뽁 기면서 그걸 저그 저 고랑을 긁꼬 다녔어요. 그…
내 밑에 동생이 내가 지금 이른 여섯인께 이른 세 살 먹었소. 그 동생 얘기 좀 하까라. 이 손꾸락이, 왼손. 이놈이 붓드란 말이요. 통통 부서. 그래서 인자 난잡하게 논께 얼음 들었는가만이, 옛날에 얼름얼름 하니 그라요, 동상 든거만이. 땡땡 부슨께 인자 얼음 들었다고. 근께 얼음 약만 계속 해줬단 말…
일제가 탄압할 시기 1924년도에 침계에서는 농민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을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그 후손들, 자손들이 전부 육지 나가서 열심히 살면서 지금은 흩어진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 팔십 호가 되었는데 지금은 한 삼십호 밖에 안 되는 적은 마을입니다. 제가 후에 그 어르신들…
침계리 교육자 및 박사 기념탑 인자 우리 마을 출신 교육자 및 박사에 대해서 말씀 드릴랍니다. 교육자는 십여 명이 대학을 전부 졸업했고, 박사학위 또는 변호사 또는 고등고시 합격한 사람이 있고, 한 십여 명이 교장서 퇴임 한 사람들이나 모도 변호사도 하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마을을 적극적으로 …
여기가 조사를 해볼라고 준비 중인디, 옛날엔 여기가 침양지로 유명했다한데. @ : 아, 침양이요? 침양에 관련된 이야기 한 번 해줘 보세요. 없어, 이야기는. 양지가 있었다고는 한디, 여기가 아니고 저쪽 금리에서 넘어오면 중학교 밑에 양촌 그 마을에 가 있었다 간디, 것이 중간에 모두 없어부러 못짜…
옛날에 날이 저물면 밖에 나댕기는 것이 어려워. 전에는 시방처럼 전기가 없응께, 캄캄한 밖 을 어떻게 댕기것어. 도채비들도 많고 눈도 어둡고. 남정내들은 혹시 횃불 들고 나다니기도 하 지만 보통은 아니여. 우덜은 밤에는 무서워서 칫간에도 못 갔는디, 우덜이 어렸을 때 하도 칫간에 안 가고 아부지…
전에는 모다 집에서 애를 낳았어라. 산부인과라는 것은 들어도 못 봤고, 돈이 없어서 산파도 못 부르고 집에서 친정어머니가 봐 주던가 시어머니가 받아주고, 아무도 없으면 남편이 받아주 기도 하고 그라제. 그냥 자기 방에서 낳는디, 애기가 하도 안 나오면 칫간에서 낳았어라. 통증이 나도 하도 안 나…
[벌교남교] 24회입니다. 에 (그때는 학교 졸업할 때 쯤이면 6.25 끝나고 나서) 6.25 근께. 45년에 해방이 됐섰거든요. 4, 45년 해방이 돼서 3년 후에 여순반란이 났어. 근께 48년이제. 또 그러다가 3년 지난 51년에 6.25가 났다고. (50년) 50년. 근께 3년 주기로. 그때 당시…
저기 오산리 앞에 뾰족한 바우 있는 것 봤소. 그것이 칼바우라고 한 것인디, 그 내력이 재미 있어라. 본시 오산에는 지네바우가 있고 저 건너 주암에는 닭바우가 있었어. 지네바우 밑에는 지네들이 겁나게 살았는디 마을 사람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어. 해만 지면 지네들이 밖으로 나가 주암마을에 …
내가 여기서 살면서 저 위쪽 마을 묵동이라는 이름이 하도 신기해서 그 내력을 알아봤어요. 묵 동은 원래 먹뱅이라고 했는데 이 마을이 유난히 해가 빨리 진대요. 그래서 저 아래 동네 사람들 이 “먹뱅이는 애기들 갤혀 입혔냐”라고 놀렸다 해요. 그만큼 빨리 어두워진께 아기들 기저귀 갈아입히고 잠자리 준비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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