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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천에서 미암 소재지까지가 한 사키로 정도 된디, 그 중간에 긴 고갯길이 오미재여. 지금은 오미령이라고도 부르고, 거그에 있는 약수터를 길암천이라고 불러. 옛날에는 그 고개를 넘어 다니는 미암 사람들하고, 해남 계곡 사람들은 지금 생각하면 애환과 전설이 서려있는 그런 추억의 길이기도 하제.&nb…
우리 선조가 여기 터전 잡기는 지금으로부터 한 오백 년 넘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여그 인자 해산물을 주로 해가지고 생활을 했어. 그런 저, 우리 선조들이 있어요. 임진왜란 전에, 전에 전에 여그를 들어오셨어. 그런디 전부 이 건네나 우리 마을이나 호서나 강천이나 요리는 전부 우리 …
저 요 동네가 저 예고자 터 그래가꼬 고터라고도 하고 또 뭐 뭐 뭐 곰곰이 드러누워 있는 설이 있어가꼬 곰 웅 웅기라고도 하고 근디 옛날에 오동에 암자가 있었다고 암자 곽씨들 제각에 암자거든 이 뒤로 새들이 고려 때는 전부가 절터였데요. 절터. 긍개 시 시방 회장님 집 뒤에 감 밭하고 우리 큰 집 감 …
예. 저 오봉마을 유래비를 세워놨는데 최초로 우리 마을에 밀양 박씨가 형제가 와가꼬 살다가 마을이 변경되고, 그 후에 곰터가 폐쇄됐고 동산마을에 속해가꼬 그 다음에 오봉마을 자치마을로 되었는데, 그 오동암이라는 암자가 있었어요. 근디 그 위에다가 오동나무가 크게 있었는디 봉황새가 낮에는 봉성산에 가서…
우리 동네는 용혈이여. 예 용혈인데 오봉산, 이제 낙안팔경 중에서 오봉명월 주산, 주봉 오봉, 오봉 그 주령에 용혈, 대용혈, 소용혈 그런디 이제 큰 용이 아기용을 품고 내려온 그 혈에 이제 운동마을이 형성이 된 거여. 옛날에 그래도 정이품 벼슬 허시고, 귀양허신 이 선자 문 할아버지가 이 선자…
제가 여기를 오기를 1969년도 8월 20일 왔는데, 여기에 조그마한 보살이 토담집을 건축을 해가지고 부처님을 모시고 계셨어요. 그 분 아들이 시인 정욱 선생님이라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로 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따라서 보살님은 가시고 나는 선암사에서... 선암사를 가끔 다녔거든요. 그 보…
[본문] 그냥 저 바위 (오봉산 정상에 보이는 바위) 이름이 뭐여(무엇이다)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저 나름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에게 다 물어보니까 바위는 바라보는 곳마다 다르니까 다르게(마을마다) 말하는 거에요. 역전마을에서는 웃마을 아랫마을이 있는데, 내가 어려서 웃마을에서 살…
일본이 쇠말뚝을 박았다는 말은 들었어. 어느 자리에다 박았다는 건 정확히 모르고. 어느 산 끄트머리 위치 그런 정도만 말하드만. 여기서 듣기로는 귀성 오대산 끄트머리에다 말뚝을 박았대. 어찌 그런 말을 해. 그랬던가 어쨌던가 몰라도.
그리고 8경 지금 현재 아까 문바위 옆에가 봉오리가 5개 갖다가 지금 이게 현재 오봉산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달리기 연습하고 물이 또 오봉산 옆에가 저수지가 두 개가 있어요. 거가 지금 현재 앞전엔 했 을 때 사파리 공원을 만들려고 했던 그 부지예요. 그 부지에 저수지가 두 개가 있습니다. 양쪽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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