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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詩社)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목포시사는 시인묵객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결사단체였다. 이곳에서 매년 봄가을 2회에 걸쳐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는데, 전국 각처에서 200여 명의 문사들이 모여들어 한시의 명맥을 …
목포양조주식회사(삼학양조주식회사의 전신). 남교동파출소 뒤쪽에 1929년에 한국인의 자본으로 세워진 주조장(사장 김상섭, 전무 차남진)이었다. 광복후 삼학양조주식회사(사장:김상두)에서 승계하여 어려운 시절 우리의 시름을 달래주던 삼학소주의 본산지가 되었다.
그만 두고 나와서 배를 한나 무었어(만들었어). 이런 데서 옛날에 목선 한나 무을라먼 힘듭니다. 목포서 소목수를 데려다 배를 한나 무었는데, 이게 뭔 배냐 하먼 화물선, 화물선을 한나 무었는데, 마침 한 일년 반 된께는 빚이 전부 싹 정리돼불대. (조사자 : 배를 무었다는 얘기가 샀다는 얘기에요?)지었어…
‘부내에 있는 조선인 예기는 소화4년(1929년) 8월 현재 33명을 헤아리고, 일본인의 가정이나 연회석에 줄입하는 자가 점차 많아져 계속 그 수가 늘어나므로, 유지들이 회사조직의 권번을 창립하기로 논의하여 소화5년(1930년) 1월 관계기관의 인가를 얻어 죽동 132번지에 목포예기권번을 설립하였다.’(…
“목포는 지구의 위도 북위126도 2분이므로 대체로 이태리의 나폴리의 위치와 비슷해. 이태리의 나폴리는 구라파에서도 예술인이 굉장히 배출된 유명한 항구로 알려졌어. 목포도 예향이라 해서 예술의 도시에. 기후, 풍토하고 그 지방 사람들의 성격 형성과 관계가 깊지. 말하자면 목포가 항구이기 때문에 이성적이라…
옛날에 그 머 턱없는, 턱이 작은 그 양은 냄비같은거 팔러 댕기는 리아카에다 실고 팔러 댕기는 사람이 있었어. 깎아 주씨요 그라먼 택도 없는 소리 마라, 지가 택이 없응께 그러지, 택이 적응께.(웃음) 그 사람도 간첩이어갖고 나중에 잡혀가고 그랬잖아. (석순이 말고요?) 뒷개 리아카 끌고 다니는 …
목포의 별칭이다. 목포시사 발행문집인 <목포풍아집> 제6대 무안감리를 지낸 초정 김성규의 <초정집> 등에 ‘목포’라 해야할 자리에 ‘청호’라 표기한 시구를 여러군데서 찾을 수있다. 다목동 차재석은 유고집 <삼학도로 가는 길> ‘목포 생리’라는 제목의 글 첫머리는 ‘푸른 바…
목포에는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많이 있었다. 먼저 권투선수로는 서득균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시대 때 일본 프로복싱 팔회전 선수로 활약했다. 당시 조선사람으로는 아주 드문 경우다. 서득균은 좌익활동을 활발히 했던 인물로 6.25를 전후해 행방을 알 수 없다. 목포상고 재학시절 천황…
대 종교 본산지, (산정동성당-1897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 양동교회-1897 목포 최초 교회, 달성사-1913 노대련스님, 전통사찰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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