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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만여 점이며, 난파선, 수중문화재, 항해술 자료, 모형선박, 원형선박, 해양민속품, 고기잡이 도구 등이 있다. 수중발굴과 해양문화 조사가 활발히 이뤄져 소장품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유물의 정보는 디지털 자료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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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태후 임씨는 고려 예종 4년에, 1109년에 관산읍 옥 당리 당동마을에서 중서령 고려 때 중서령이라는 벼슬을 했 던 임원우의 둘째딸로 태어났는데, 태후가 태어난 날 밤에 자기 외할아버지가 꿈을 뀌었어. 이위라는 분인데 외자야 이 름이. 이위. 외할아버지가. 그 분이 꿈을 뀌니까, 꿈에 황색 깃발이 태…
효부를 낸 데가 공자동이라고 해. 노인이 있었는디 자금덕이라는 분이 나왔는디 향교로부터 효부 표창까지 받았지. 시아버지를 오랫동안 봉양을 잘했다고. 상당히 오래 되았지. 남희라는 남자랑 결혼을 했지. 희의 아버지를 봉양을 했다고, 한 54년을 모셨다고 하데. 그 자손들이 광주에서 살고 있지. 남정우(88…
우리 면이 나중에 붙어 있을 때, 나주군에 붙어 있을 때에 나주 사람들이 여그 와서 어떻게 폭정을 했든지 도저히 군민이 살 수가 없었드랍니다. 그래서 나주사람들 그 행정에 대해서 아주 불만을 갖고 어떻게 해서 나주군에서 좀 다른 군으로 외속해 주면 쓰것다 그렇게 해서 어 면민대회를 했드라 그래 요.…
임박사는 우리하고 한 살 차인디 그 분은 전대 마취과를 나와갖고 정년 퇴직 헐 때까지 거가 있었어요. 마취과장으로 교수 겸. 과장하면서. 그런디 그분을 키운 분이 하인호박사라고 병원장까지 하신 분이어요. 그 분은 지금 여든아홉살인디 살아계셔요. 두암동 아니 산수 2동 두암타운에 살아 계신디 그래 인자 보…
암태면 동남쪽 첨단에 벗섬이라는 섬이 있지요. 지금은 본도에 연육되어 있읍니다만, 옛날 어떤 장사 한사람이 이 섬과 마주보는 박달산에 살면서, 벗섬 꼭대기와 박달산 꼭대기에다 쇠줄을 메고 1km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줄을 잡고 왔다 갔다 하면 서, 갖은 재주 풀이와 심기 단련을 했다 합니다. 지금…
일본 놈들이 무지하게 뺏어갔어라우. 유기그릇을 안 뺏길라고 여그저그다 아무리 꼼쳐 나둬도, 다 뒤져서 가져갔어. 우리 집에서는 시암 속에다 빠쳐 놨는디, 어찌게 알고 다 건져갔어라. 사람 을 내려 보내서 시암 속에 있는 유기를 건져 올립디다. (조사자 : 유기를 가져간 대가로 어떤 것 주던가요?…
내가 어째서 시집을 왔냐 그러면 그 때 열일곱에 안 갈 것인디. 공출을 가, 여자 공출. 그래서 저닉에는 크내기들 나오라고 합디다, 나오라고 한께. 바구리에다 도장 찍은 놈 딱딱 놓고 한나 집어라. 굵은 크내기들, 스물 넘은 크내기들 안 집은디 어린 거시 집어. 딱 집어서 둘이다 우리가 딱 집어 가꼬…
년도는 알 수가 없고 우리 할아부지가 지금 살았으면은 한 백 열 여덟 살이나 그 정도 됐을까. 저허고 마흔 네 살 차인가 됩니다. 우리 할아부지가 젊었을 때 왜정 시대에, 일제가 막 많이 착취를 해가기 위해서 혈안이 됐을 때, 그때 얘깁니다. 근디 그곳에 풍산골이라는 약 만평의 땅 가운데, 53…
전에 일본시대 때 살아놔서, 그러고 막 잡아 갈라고 모두 마냥 큰 애기들 잡아갈라고 한트럭 모여 놓 고 그런 세상 살았소. 참말로 인공 때 적군 일을 생각하면 밤에 뭐. 우리 진슬이, 진슬이 낳아가꼬 아들 못낳았다고 어매집에서도 그런 꼴 당했지. 거 저기 해갖고 한참 키운데 인공때에 적겄어. 모두 …
<용장리 용장성 옆 임성게 가는 길목 밭> 요 밭이 쪼끄만 하기는 합니다마는 나로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밭이어서 산 되븐 밭을 다시 내가 개간을 해서 옛날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은 내가 한 다섯 살이나 먹었을 때 일제시대였습니다. 일제시대, 그런데 부모님께서 여기서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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