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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묵었을 때 함평 월야에서 아버지 어머니하고 송정리로 나왔어. 동생들은 행방불명 되야 불고. 송정리에서 서울로 갈 때 내가 열여덟 살 인가 열아홉 살 인가되었는데 나 혼자 갔어요. 돈이 있으니까 뭣을 할 것은 없는가 해서 남대문으로 갔어. 거기서 함평에서 행방불명된 동생 둘을 참말로 우연히 다 만났…
인민군이 함평군을 점령하자 경찰은 물러갔다. 얼마 후 유엔연합군의 도움으로 다시 경찰이 함평을 점령하였는데 치안이 아주 불안하다. 특히 밤이면 어둠을 틈타 불순분자들이 마을에 들어와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식량과 가축을 강탈하고 사람까지 함부로 죽이는 불순분자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소중한 목숨을 뺏기지…
난 시집올 때 열아홉에 시집을 왔는디 열일곱에 해방 되었어. 내가 4학년 때 6.25가 났는디 사람 잡아 죽이러 온다고 산으로 피신을 갔어... 그러다가 또 반란군들이 동네 사람들 다 죽여 버린다고 그래서 모여가꼬 쏴~ 악 산으로 올라갔다 또 내려왔어. 아~이고 옛날에 그러고 살았어. 아~ 저기…
열아홉 살 때 첫애를 벴어. 근디 우리영감이 경찰이라,옷 갖고 우리친정이 냉칭이라 피난을 갔어. 그 냉칭이는 반란군 잘 안 왔거든.여그만 많이 왔재. 갔는디 아이고 기냥 막 12시 된께 옆집에서 톡 톡 발령이 들어와.아 그래서 영감을 막 저그 화장실이 그때 거름이 있었어.막 수류탄을 요렇게 차고 왔는디 …
여기가 여 저 제주도 4.3사건 있었고 그 대구 쪽에 그 사건 있었고 여가 여순이 1948년 12월 26 10월 26일날 여기서 벌어졌어. 사건이 그때 인자 아시다피시 여수서 14연대가 완전히 그 전국으로 그냥 개최해가지고 결정해서 기양 이 사람들이 맘 묵고 한번 쟁탈헐라고 일어난 것이 사변 아닙니까 흠…
그래갖고 저거 군인들이 부산서 전부 밀고 내려와서 학도병까지 다 밀고 내려 와 갖고 부산 가는디 저거 마산 낙동강 그거서 인자 미국 군인하고 우리 한국 해군이 나와 갖고 부산 낙동강에서 부산서 데리고 여거 반란군들은 요짝에 낙동강 건너갈라다가 싸우고 그거서 인자 몰싸 죽음을 허고 우리 시집와 사는디 쫓겨…
1950년 6월 25일이고, 인자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23일이고 그래요. 근게 그것이 구례는 연속이 되어 버렸제. 전쟁이~전쟁이 48년부터서 말하자면 반란군 요리 거석 해갖고 고놈이 그~그 산에 그냥 반란 그다음 1년7개월 후에 그걸 38선이 덮쳐서 내려와분게 그것이 계속해서 휴전 53년 된 뒤…
(조사자 : 어르신이 그러면 몇 학년 때 해방이 됐을까요?) 졸업타고. (조사자 : 졸업타고 해방. 예예. 그러면 6.25도 겪으시고 아까 인민군 해가지고 여러 사람 죽고도 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6.25때 이야기 좀 해 주셔요.) 6.25때 여가 그때는 그 사람들은 부자를 전부 싫어하는 사…
나는 장교로 가라 그래, 그때. 6.25사변 나고 전쟁 빵빵빵빵 허는디. 3.8선이 터져갖고 난리 난 판이여. 장교로 뽑아갈락 해. 나 사범학교 나 왔다고. 긍께 하루살이 소위라고 소문 났어. 하루살이 소위. (조사자 : 그랬제, 하루살이 소위.) 그랬어, 하루살이 소위. 가다본께 송정리서…
군대를 21살에 갔는디 음~저~여수서 전라남도 여수서 훈련을 받다가 음 15연대가 전주로 이동을 했어~전주서 6.25사변을 만났는디 그날 저녁에 막 비상이 걸려 가지고 전원 모집 전원 집합 해가꼬 완전무장을 시켰가꼬 화물열차를 완전무장하고 타고 밤에 영등포까지 갔어, 그때 3.8선이 터졌어. 인자 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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