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이름을 한자로 바꽜어 다. 일본사람들이. 긍께 내가 이 1966년도에 군대에 내가 갔을 것이여. 1961년에 군사 혁명이 일어났는가? 66년에 군대를 갔는데 내가 군대 생활을 4년 했어 라우. 1년 더 했어 다른 놈보다. 왜냐하면 항만 사령부가 있는데, 월남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헌 디여. 말뚝 박아버릴라고 하다가 그 협립 양산에 있는 놈이 ‘아 우리 집이 양산공장이니까 같이 일하자. 제대 하자’ 그러드만. 그 놈도 4년 나도 4년. 그래가지고 내가 1970년도에 제대 했단 말일세. 근디 그때 와서 본께 인구가 한 2만 이여 여가. 그러면 무 안읍은 인구가 5000명. 세발에 피. 무안읍은 여기서 발로 뭉게불고 취 급도 않고 여기는 이 술집에 가면 전부 한복입고 있어 여자들이. 술시중 든 사람들이. 여기는 북적북적했어. 그런디 인자 나 제대하기 전에 67년 도에 군청이 일루 옮겨와. 무안읍으로. 옮겨 오면서 무안이 조금씩, 조 금씩 커져가지고 이렇게 된 거여. 그때는 무안사람들 해제. 그리고 감사 원에서 감사하러 와도 무안에서 밥 안 먹어. 해제에서 먹어. 감사원 감 사가 와도. 감사팀들이 한 열댓 명이 와서 한 달간을 여서 살아버렸어. 무안서 밥을 안 먹는당 게. 해제치가 맛있다고 이리 와버려. 그런 정도 였어. 잠만 무안서 자고 이리 오고, 오고. 그런데 그 안내하고 대녀{다 녀} 버리니까 해제가 그렇게 좋다고 해 그들이. 편하고.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되어 버렸당게. 무안읍은 면성면 이었어, 이름도. 몽탄은 박곡면 이고. 해제 사람들이 그것보다 뭐이라고 해 거시기 울력, 두드려 맞고. 울력을 많이 했어. 여 형님들 바로 윗사람들이 다녔것구만. 윗사람들. 지금 살아계시면 90, 100 이런 정도 된 사람들.
(청중 : 나 초등학교 3학년 때에 해방 됐어.) (조사자 : 그 위에 분들은 요새 한 90 가차이{가까이} 되신 분들은 거가 일 했다고?) 그 울력을 가도 내가 밥을 내가 싸갖고 가고 그랬다고 해. 말 들은께. 걸어서 오고 걸어서 가고. 망운까지. (조사자 : 여그서 걸어가면 한나절 다 걸려 불 것인데 언제 일 한데요?) 그래도 걸어 다녔어. 새벽부터 걸었것제. (청중 : 비참한 세상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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