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12_02_FOT_20160725_PNC_0001
    조사장소 :
    장흥군 관산읍 옥당마을 송재서예연구원
    조사일 :
    2016-07-25
    제보자 :
    박남철(남, 80세, 부억마을)
    조사자 :
    이미옥, 윤영소
    구현상황
    관산읍 방촌리 출신의 위철량 선생은 장흥 위씨로, 자자일촌인 방촌마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줄곧 현지에서 지내왔으며, 고향인 관산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 후 관산읍지 편찬위원으로써 관산 일대의 설화, 민담, 사례담 등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 또 조사위원으로 조사 작업에도 적극 협조해줘서 기존의 조사자료 내용을 거의 종합 정리해서 구술해줬다. 구술 장소는 위철량 선생이 주로 오가며 지역주민들과도 소통하고 있는 관산 읍내 송촌서예연구원에서 이뤄졌다.
    줄거리
    관산 부평마을에 있는 각시바위에 얽힌 이야기. 옛날 어느 각시가 장엘 갔다 오는데 자꾸 치한이 뒤를 쫓아왔다. 하여 각시는 자신의 젖을 떼서 버리고 나서, 그래도 따라오니까 수건을 벗어 던져버리고, 장에서 사갖고 오던 요강까지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부평마을에는 각시바위, 수건바위, 요강새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내용

    강진 넘어 가는 부평리 그 앞산에 그 이상 큰 바위가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 각시 바위에 얽힌 전설인데, 그 오도치를 장흥 장을 보고, 인자 용산으로 해서, 오도치를 해서, 부평 집을 오기 위해서, 오는데 뒤에서 치한이 쫓아와. 그러니까 겁이 나서 젖을 띠어서 땡겨 부러. 자기 젖을. 그러면 안 올 꺼이다, 그라고... 그래도 쫓아오거든, 젖을 띠어 던졌어도. 그랑께 머리에 쓰고 온 또 수건을 던져 부러. 그래도 또 쫓아와, 요강을 사 갖고 온디, 요강을 또 던져 부러. 그라고 헐레벌떡 숨이 차서 도망을 간 것이, 지금 그 바위가 있는 곳에 와서 쉬고 있어~~. 그래서 쉬고 있는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 전설인데. 처녀가 젖을 띠어서 던져부렀다 해서, 유동이라는 마을이 생겼어. 거가 부평리에가 유동마을이 있는데, 그래서 유동마을이 생겼고, 수건을 버렸는데, 거기에 바위가 있어서 수건 바위라고 이름이 지어지고, 요강을 던졌던 것이 요강소태라는 지역이 인제 생겼는데, 요강소태라는 지역에 묘를 썼는데 밀양박씨들이 선산을 만들어서 썼는데, 굉장히 잘 돼 왕성하니, 그 뭣이, 그 밀양박씨들 손들이. 그래서 각시바위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각시바위가 이라고 내다보고 있는데, 어쩔 때 내려다 본 것 같냐 하면, 처녀들이 큰소리가 날 때, 이라고 내려다 봐. 그렇게 형상이 생겼어. 그란디 그 바위가 내려다 본 바위가 마을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그림자가 딱 연못에 비치면, 처녀들이 바람이 나갔고 나가버려. 그러니까 동네서 그 연못을 메웠어. 그렇게 못나가게 할라고. 그렇게 그 각시바위에 대한 얽힌 전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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