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02_MPN_20160622_KKY_MKD_002
    조사장소 :
    해남군 삼산면 신리길 42번지
    조사일 :
    2016-06-22
    제보자 :
    민경덕(68세)
    조사자 :
    김경윤, 민경
    줄거리
    5.18 당시 구술자는 광주 교도소에서 의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계엄군이 교도소에 상주하였다고 한다. 계엄군과 시민군 사이의 싸움에서 환자들이 교도소로 이송되어 왔는데 화상 환자가 가장 많았고 갑자기 많은 환자가 들이닥쳐 제대로 치료하기 힘들었던 당시 상황과 계엄군의 지시로 환자들의 신상파악도 하지 못했고 환자들의 숫자도 헤아리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내용
    저녁에 계엄군끼리 붙었어. 그란디 그 계엄군은 외곽이고, 광주 교도소에서 상주했어. 모든 계엄군들이. 우리 직원들은 뭣을 못하고, 재소자만 가고 밖에를 못나오고 모든 경비를 계엄군들이 했어. 교도소 경비를. (청중: 교도소가 털려 불믄 골치 아퍼 불거든.) 교도소만 살어 있었지, 그랑께 교도소가 여기 있다 그러믄 거기 쪼끔 나와서 주유소가 있어. 이 주요소까지만 산거여. 그랑께 이 주유소는 31사단에서 딱 칸막이 하면서 “우리는 여러분들 편입니다.” 그라고 써 붙여 놨었어. 그랑께 그때 당시에 31사단장이 누구여, 이름 한자, 외자. 잉, 그래 갖고 98프로 나와 붓제, 국회의원 나와 갖고. 응. 구십 몇프로로 돼야 부렀제. 응, 이름이 외잔디. 31사단에서는 여그 딱, “우리는 여러분들 편입니다.” 팻말 붙여 놨든거여. 그라고 공수부대들은 전부 다 교도소 안에서 상주를 했제. 그래 갖고 온 것은 이십, 이십일부터 교도소에서 상주해 갖고, 27일날 아침까지, 인제 27일날 아침에는 모든 전화를 싹 뽑아 불드만. 그라고 작전하러 갔제. 도청을 점령하러 간 거여. 본께 교도소 운동장으로 모든 그 헬리콥터가 떴다 내렸다 떴다, 여기서 보고 또 교도소에도 밖에서 잡아 들어온 사람이 많이 있어. 첨부터 잡어 들어 갖고 왔고. 나는 그렁께 그때 당시에 의무실 직원인께 환자 치료하라 한디, 어떻게 최류탄을 뿌려 부렀는가. 사람을 이르케 옷을 떠들믄 최류탄이 팍, 팍 나오는거여. 밖에다 일단 짐짝 내리듯이 내려놨어 그냥. 쌀가마니 내리데끼. 푹푹 사람을 내려놨어. 이 트럭으로 싣고 와 갖고. 그랑께 쪼끔 있으믄 인제 바람이 부니까 산사람 죽은 사람 구별이 되드만. 뿌시럭 뿌시럭 한거여. 도저히 여기서는 못 하것다 그라고 안으로 들여주라 해 갖고 교도소 인자 정문이란 디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 갔고 저녁에 인자 못 일어난 사람 좌측, 걸어 댕기는 사람 이렇게 구별해 갖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가니까 또 세 명이 죽어 갖고 왔드라고. 거기서. 그런 상황이었어. 그러고 우리는 교도소라는디가 뭣이 없제. 방이 없제. 그랑께 인자 창고 이런 창고에다가, 일하는 그 창고가 있거든. 재소자들 출결해 갖고 나가서 일하는. 거기다가 바닥에 뭐 특별한 거 깔것어. 그냥 거가 가마니가 있어 뭐가 있어. 그랑께 모포 한 장씩 깔아놓고 그때는 여름이고 그랑께 덮도 못하고 그라고 잤제. 여자는, 또 여자도 덮혀갔고 왔는디 이름을 모르것네. 여자 앞가슴 이른디가 팍삭 저, 불에 탔드라고. 그랑께 데인 자국이 막 있드라고. (청중: 그때 그 노래가 있어. 왜 찔렀니, 왜 찔렀니 그라고.) 그래서 그때 당시에 공수부대 중위 하나가 있었어. 중위. 중위가 인자 중위가 그 의사 중위여. 공수부대 그, 그 군인들 군대 가믄 중위 계급장을 줬잖어. 긍께 그 사람하고 우리하고 인자 환자 치료를 했제. 그때 제일 많은 환자가, 덴 사람들. 화상 환자들. 그르케 많드라고. 막 진물이 찍찍 나고 이거 거즈를 붙여 노믄 막 껍질하고 같이 떨어지고 그래. 그랬어도 다 치료를 해서 한디, 고개를 치료한디 그때 나중에 내가 청문회 때 박찬종의원이 몇 명이냐 그란디 못 쳐다보게 해. 옆을. 거기 혼자만 보락 하제 전체를 못보게 해. 그란디 왜 거그 매일 들어 간디 몇 명인지를 모르냐고 그런거여. 박찬종이하고 나하고 청문회 할 때 일대 일로 면담하고 그랬제. 정확한 인원을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왜 이 기록은 있냐므는 여기서. 우리 교도소 의료비 예산을 썼기 때문에 이걸 냉겨 논 것이라고. 이것을 기록하고 싶어서 냉겨 논, 이른 것은 전혀 없고. 솔직하니 말해서, 이걸 다시 추가로 신청을 해야 한디 그래서 내가 그, 그때 당시 상황을 적어 논 것이지, 다른 것은 없었다. 뭐 옆을 쳐다 보도 못하게 하고 앞에 환자만 치료하라 한디 우리가 어떻게 정확한 인원은 모른다고. (청중: 다른 사람은 못 보게 하고) 응, 못 보게 하고 거그만 있는거여. 다 이르케 있는디. 거그만 딱 치료 하는 거여. 매일 오전 오후 치료하고 그랬제. 그란디 거그 들어온 환자들은 더 혜택을 더 못 봤어. 왜냐므는 31사단으로 간 환자는 거기도 기록이 남었을 것 아니여. 거의 기록이, 31사단 거, 거 간방에 있었거든. 그리 간 환자는 나중에 허리 다쳤네 뭣했네 하믄 전부 보상을 받었는디 교도소로 온 환자는 어떻게 보상을 받었는가, 나는 그건 모르것어. (청중: 교도소에서도 기록은 해 줬을 거 아니여.) 기록을, 즈그가 기록을 안 가져갔어. 어. 난 기록은 싹 남겨 놨었제. 누가, 아니 그 따로 인제 딱 놔뒀제. 그란디 이름을, 이름을 쓰들 못해. 이름을 우리는 못 쓰제. (청중: 환자가 말도 못하고) 그르제. 환자가 말을 하더라도 이름 뭣이냐 못 물어본다니까. 그 환자 상태만. 치료만 하제. 그라고 몇 명 치료했다 써 갔고, 몇 명 치료하고 그 저기 머시기 약이 얼마 들어갔단 것만 내가 기록해 놓제. 모르제. (청중: 신원파악을 못하게 하니까) 신원파악을 못하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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