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6_FOT_20170620_SJS_LGY_0002
    조사장소 :
    담양군 대덕면 성곡리 마을회관
    조사일 :
    2017. 6. 20
    제보자 :
    이강열((남, 1935년생)
    조사자 :
    오평후, 정호, 김미승
    구현상황
    성곡리를 비롯해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6.25 때 화를 입었던 이야기를 들려주 셨다.
    줄거리

    창평면 사람, 대덕면 사람들이 한국전쟁 후 많은 희생을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내 이름이 이강렬이요. 해방된 날 그때 내가 학교를 2학년 올라감서 해방이 되었는데 열한 살 묵었으까. 만덕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6.25 때 인민군들이 부산만 빼고 점령했을 때 인천 상륙작전으로 미국이 도와준 통에 낙동강 물이 핏물이라고 했어요. 그때 나는 열일곱 살 묵었는디 인민군들은 나보다 어린 중학교 일학년 짜리들인데 장총 메고 왔어. 그래도 민간인한테 요만큼도 피해를 안 줘. 이북서 내려온 인민군들은 말도 선하고 일체 손도 안대고 피해를 안줬어. 우리 마을에도 수십 명이 들어앉았다가 저녁이면 가고 그랬어.

    인민군들은 구루마에 씻고 다니는 박격포가 있어 총 하나는 잘 쏴. 명중률이 아주 높아. 이씨 비석에 요만한 글자를 다 맞혀버려. O. O. O정이가 저 여곡에 가서 조O태씨, O석씨 두 분을 차동마을 넘어가는 골짜기에서 독으로 쳐서 죽였어. 우리 어머니, 누나는 떼놓고. O태씨는 조O현이 아버지이고 조O석씨는 나보다 다섯 살 더 먹었어.

    O정은 지금도 등갈리에 살아있어. 백아산에서 자수하고 나와 가지고 경찰이 되았어. O정이가 길을 잘 안다고 채용을 한 것이지. 그때 나도 앵겼으면 죽었을 거여. 미리 알고 도망가버렸응께 살았지. 저쪽 골짜기 성곡 오산에서 열일곱 명이 죽었는데 전부 창평 사람들이었어. 군인들이 차를 실꼬 와서 죽인거지.

    창평 김문용 삼형제 그 집이 별이 일곱 개여. 김문용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였고, 별 네 개 였어요. 김홍룡은 6.25 나기 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어요. 김성홍은 비행기 조종사로 별 3개였어요. 그런데 빨치산이 김홍룡이를 잡아다가 죽였어요. 그래서 문용이가 여기다 사단을 보내버렸어요. 창평, 고서 전부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하더라구. 그때 애매한 사람들 많이 죽었어. 갈전서도 하루 저녁에 50명 제사를 지낸다구만. 우리 마을도 하루 저녁에 군인들한테 이사복씨, 송춘근씨, 오민옥씨, 추장룡씨, 이기옥씨, 다 기억이 안 나네. 6~7명이 죽었어요. 군인 9중대가 여기에 주둔 했는데. 해걸음에 창평으로 철수 하고 아침에 다시 주둔하고 그랬어요.

    내문 마을 가는 길에 새주막이라고 있는데 군인들이 주둔한 첫날 우리 아부지도 그까지 따라갔어요. O진이라는 사람이 6.25때 인민위원장이였는데 우리 형이 6.25 나기 전에 군대를 가서 군인 가족이라고 엄청 시달렸어요. 아부지가 작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아부지에게 무슨 책이 있다고 아부지가 군인을 따라 갔는데 아부지까지 총 8명이였다요. 군인이 저쪽으로 가니까 아버지는 슬그머니 빠져갖고 나머지 일곱 사람도 작은 어머니가 따라가지 말라고 붙잡았다요. 살라고 그랬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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