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1_FOT_20170529_SJS_CYH_0001
    조사장소 :
    담양군 담양군 담양읍 만성리 고려약국
    조사일 :
    2017. 5. 29
    제보자 :
    최영환(남, 1935년생)
    조사자 :
    한삼채, 은경진, 장윤자, 안오일
    구현상황

    만성리에 살면서 고려약국을 운영중인 담양읍 제보자는 주요 4개리와 다리 건너 주변 마을과의 관계에 생활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줄거리

    담양읍 경찰서를 기준으로 천변리, 객사리, 지침리, 담주리 4개리만 ‘성안에’ 라고 하고 다리 건너는 ‘물 건너’ 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조사자 : 여기서 약국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담주리에서 만성리 가는 다리 이름이 만성교인가요?) 

    1955년부터 고려약국을 했어. 만성리인게 만성교지. 그 지역이름을 많이 따. 그래서 만성교라고 했지. 

    (조사자 : 담주교라 할 수도 있잖아요. 양각리 다리도 담양교라고 써졌는데 왜 양각리 다리라고 부르지요?)

    담양읍 경찰서를 기준으로 4개리가 천변리 객사리 지침리 담주리, 거기만 ‘성안에’ 라고 해. 저기는 나쁘게 말하믄 ‘물 건너 사람’이라고 혀. 다른 곳은 다리건너는, 물 건너 놈이라고 혀. 좀 한시하고 차별하고 그랬지. 그래서 그쪽 이름을 따서 한 것 같애. 

    향교리는 향교다리, 만성리는 만성다리, 양각리는 양각다리(담양교)라고 말했지. 그러니까 그쪽을 우대한다고 할까, 생각한다고 할까. 좀 못살아서. 옛날에는 변두리가 못사는 사람들이 살았었지. 요새는 변두리에 아파트가 많이 생겨서 바꿔졌지만∙∙∙∙.

    옛날에 만성리는 농토가 없어. 땅이 많은 사람이 부자여. 공장이나 사업체가 없었으니까 생산된 것이 농토에서 나오지 농사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었지. 돼지를 기른다든지 닭을 기른다던지 부업이 없었지. 노동으로 벌어먹고 살았지. 만성리는 부채마을이었어. 김대석씨가 명인인가 되지. 

    (조사자 : 만성리 다리 쪽에 시장이 서서 돈 많이 벌지 않았나요?)

    시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돈이 없었어. 화폐가 물물교환이여. 자기가 난 것을 가지고 와 시장에 적당히 옆에서 얼마 받아라 얼마 받어라 해서 자기가 가진 물건하고 살 것을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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