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때 말입니다. 작은놈 학교도 5ㆍ18이었어요(5ㆍ18 민중항쟁에 참여했어요).
아니, 담임한테 전화가 왔어요 대학교수한테서. 어떤 일로 전화를 하셨냐고 물응께,
‘다른 학부모들은 우리 애기 데모 못 하게 하고, 모도(모두) 난린데(난리인데) 어째 창준이 엄마만, 나만 전화통화도 안 한다’는 거요.
그라먼, 놈의 자식은 귀하고 우리자식은 안 귀해서, 시대가 학생들 피를 보는데 우리 아들도 죽든 살든 운명에 맡겨야지, 놈의 자식만 나가라고 이불 속에 다 두고 따둑거리고, 너만 안전해라 하겄어요?
다른 자식이나 내 자식이나 다 똑같은데, 시대가 그래서 내 자식도 젊으니까
같이 해야지, 우리 아들만 이불 덮어놓고 방에다 여놓고(넣어두고) 따둑거리며, 나가지 마라고 하껏이냐고(할 것이냐고),
말도 안 되는 교수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고 그랬더니, 교수가 나중에 나를 찾아왔습디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어도 같이 살어야지 내 자식만 빼놔서 되겠어요 말도 아니지.
세상일이 내가 죽을 때 있어서는, 내가 피한다 해서 안 죽는 거 아니고, 어려움속에 있어도 살라먼 사는 거요. 카만이(가만히) 있어도 죽을 놈은 죽고.
그런식으로 교육을 시켰더니 [우리]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성공하는 거 같어요. 사회에서 칭찬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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