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3_09_FOT_20180611_KJK_DHJK_0002
    조사장소 :
    순천시 서면 판교리 고룡사
    조사일 :
    2018. 06. 11.
    제보자 :
    도허지각 스님(남, 1959년생, 60세, 토박이)
    조사자 :
    김종균
    줄거리

    고룡사에 여승이 살았는데, 여승이 바람이 나 절이 망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현 고룡사 주지인 도허지각 스님에 따르면 용봉 끝 영골(靈谷)에 기우제 등 천제를 지내는 단을 지키고 살던 배씨 아낙이 자주 출몰하는 호랑이가 두려워 청소리 송내로 이사와 살다 한 사내와 사랑을 맺어 아들을 낳았는데 다섯 아들 자손들은 사내의 서손(庶孫)들이므로 그 이야기를 숨기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또한 많은 절들이 벼룩이 많아 폐사되었다는 이야기도 실제 조선시대 유학이 불교를 탄압한 것을 덮기 위해 퍼뜨렸다고 한다.


    내용

    절터에서 보믄 좌청룡, 용 줄기에요. 우백호는 저쪽이고. 그래서 요쪽 끝이 저쪽이 용봉이거든. 구룡 뒤에가 구상. 건천 뒷산이 용봉이에요. 절 중심으로 용봉이거든. 그래서 그 용봉 끄터리는 서리바위라고, 무등산 입석대처럼 그런 바위가 있어요. 

    서릿발처럼 바위가 섰어요. 

    어 거기도 할아버지 묘가 있어서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갔지.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명당 쓴다고 그리 가서 따라다니고 그랬어. 여기가 마치 이거 들어올 때 저 밑에 다리에서 보면 이렇게 좀 와이자처럼 보여. 그건 사실이여. 

    그러나 풍수라는 것은 이렇게 평면으로 보는 거 아니거든. 그것은 아니여. 입체적으로 봐야 되거든. 마치 코끼리를 다리만 보고 코끼리라 한 것과 똑같애. 그런 격으로 여기서 쳐다볼 때, 그렇게 와이자로 보이니까 거기를 여자의 음부라고 풍수들이 그렇게 다녔어. 

    시내 모, 그 강사주라는 양반이 저기 죽어불었어. 많이 왔더랑마. 풍수 연구한다고, 내가 무슨 말 하니까 나한테는 말도 않고. 지금 그 양반 돌아가셨지만은. 그러고 요즘 풍수들이 그러고 다녀. 

    나는 이 지역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웃어불지. 그래가지고 저기를 있도 없는, 원래 지지각골이여. 글고 용, 용봉줄기에서 나온 말이니까 용소가 맞아요. 용 폭포가 맞고. 이쪽 가면은 삼거리가 물이 요렇게 합수가 돼. 왼쪽으로는 이렇게 좀 졸졸졸 흐르고. 

    내가 요. 저기 저 사진 찍어놨네. 저기 저거이 올라가믄 좌우 물이 내려오는데, 저기 있죠잉? 그것이 왼쪽으로 절로 올라간 데서 내려오는 용소 폭포여. 저 밑에가, 요 밑에가 지금 각시소라는 물이 많은데서, 일명 각시소라 그래. 인자 글고 용소라 그러고. 각시소, 용소 그래요. 

    근디 또 요 오른쪽으로 보면, 여 저기서 물이 합수가 되는데, 오른쪽으로 보면 거기는, 저 괴목, 괴목 소 있죠? 그. 폭포 내려온 거. 그것도 용손가 뭐 돼. 구례구역 못 가서. 오른쪽으로 비오면 있어. 사성암 못가서 그 폭포 있거든. 거기도 비만 오믄 폭포가 떨어져. 

    근디 여기도 똑 그와 같은 곳이 한 곳이 있어. 좀 적어. 그래서 요렇게 물이 떨어져. 와이자로 이렇게. 

    양쪽으로 이렇게 가랑이로 이렇게 내려가고 그러는데, 그래서 나는 정확허니 요쪽 왼쪽이 용 폭폰가, 오른쪽이 용 폭폰가를 명명할 수는 없지만, 어 그거이 인자 용산에 내려온 폭포가 나는 두 개 다 용소라고 해요. 

    그래서 오른쪽에 폭포, 비 올 때만 나온 폭포는 그 계곡을 지지각골이라 그래. 글고 여기서 쭉 가는 곳은, 큰 음달, 작은 음달. 그늘진다고 그렇게 돼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서면사를 편찬할 때, 마치 그 산하고, 절하고 연결을 시켜버려. 그 용소하고, 각시소라는 것 하고. 

    ‘거기 고룡사에 스님이 살았는데, 여스님이 살았대. 근데 여스님이 바람이 나서 절이 망했다.’ 이거 완전 흥미롭잖아? 이렇게 해버린 거여. 그래서 내용을 이상하게 만들어불었어. 그것도 흥미로. 나가 해준 이야기는 딱 그거여. 

    근디 거기서 고룡사와 금시조, 여신산과 고룡사.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거여. 어, 글쟁이들이. 인자 그래서 내가 반론을 재기한 거여. 그래서 인자 그 설화 얘기를 좀 더할까요?

    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냐 글믄, 고룡사와 금시조 이야기는 아 그건 인자 그것까지는 괜찮은디, 여자 스님이 바람나서 했단 것은 거짓말이여. 내가 근거를 이야기 해줄게. 

    아까 그 여신산은 여기서 봤을 때 코끼리 다리만 보고 코끼리라 한 것처럼 그런 이야기고. 인터넷 봐도 알아. 산이 요렇게 되가지고, 여자 거시기가 아니라, 인자 거기 물만 그렇게 가운데 이렇게 와이자로 돼 있제. 그런 산은 많이 있잖애. 합수 된디는. 바위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제. 황토 흙은 좀 밀려서 이렇게 밋밋하지만. 

    그 여신산은 그렇게 해서 즈그들이 만들아분 말이고. 만들아분 말이고, 고룡사 비구니가 바람났단 이야기는, 거기 한번 보세요. 연혁에 보면, 근거한 이야기에요. 내가 그냥 지은 거 아니고. 

    저 밑에, 또 도량 내 연화대, 석좌대에서는 야단법석(野壇法席)과 개산대재(開山大齋)가 행해졌고, 그 뒤 불법이 살아갈 때는 관가에 고을 수장의 주민, 수리봉 아래 수리봉 단에서 국운법제(國運法齋)와 기원제를 조선말까지 했다고 인자 그렇게 돼 있죠? 거기 이야기라 거기. 

    거기 위치는 여깁니다. 

    (고룡사 주위 지적도를 가리키며)지금 여기가 고룡사 터에요. 우리가 지금 여기 있어요. 여기서 쭉 올라가는 여 파란색 가는 길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한 여신산은, 그 각시소는 여기에요. 

    그래서 저 지금 사진은 요쪽 부근이고. 여기는 비만 오믄 나타나. 폭포가. 그리고 여기는 요것이 우리 줄기가 좌청룡, 절로 봐서 좌청룡 뒷줄기. 요쪽이 구상, 구룡 뒷산인 용봉. 여기가 지금 큰 음달, 작은 음달 이렇게 해서 인자 이렇게 가면은 어, 여기가 절터가 있어요. 여기가 절터가 있는데, 이쪽 우리 이쪽이 남향을 보는, 이쪽이 남쪽이에요. 남향을 보게 따뜻해 여기가. 

    그래서 여기 지금 이렇게 보이면 이렇게 삼각형 비슷하죠? 여기 부분이 기우제 지낼 때, 지내는 집이 있었어. 근디 여기 인자 그 옛날에 마을 관가에서 하고 그러니까, 제단이여. 거기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있었어. 여기를 지키는 저 흙담으로 지은 집이 있었단 말이여. 

    그래서 이 아줌마가 여기서 살 수가 없어. 왜 못 사냐믄, 여 남도 쪽에 호랑이가 어 일제시대 때, 최후로 죽었다 그래요.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한 얘기를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요 노은 가면은 호랑이가 호식을, 사람을 잡아서 먹어뿐 집이 있어. 

    호랑이는 사람을 잡으면 다 먹을 것 같아요? 내장만 먹어버려. 내장만. 그 사실이라. 거기서 딱 자고 있는데 그냥, 해가지고 가서 먹고 묜가, 어디 산에다가 앉혀 놨더래. 그 동네 사람들이 막 징을 치면서, 죽을 쒔다더냐, 어쨌다더냐. 옛날 호랑이가 오믄 죽을 마당 앞에다 쒀놓고 그랬거든 대문 앞에. 그 사실이여. 가짜가 아니라. 

    그래서 인자 그 호랑이가 여기 살았어요. 그 요쪽 너머 가면은 영굴이 있어요. 영골쉼터 있죠? 산장. 어 거기가 자연 동굴이 있어서 영굴이로고도 하고, 이쪽 산너머 거가 응달이 여기보다 커. 험해. 그래서 신령스런 동물이 산다 그래서, 영골이여. ‘신령 령’(靈)자. ‘골짜기 골’(谷)자. 

    그래서 옛날에는 호랑이 살면 호랑이 산다, 이렇게 말 안해요. 그 존칭을 썼어. 말하자믄 같은 사람이믄, 임금이믄 임금님. 이명(異名)을 썼다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안부르고. 그 산에서 호랑이 봤다 절대 안하는 거여. 그러면 해친다는 그 말이 있어요. 

    그래서 ‘멧돼지가 지나갔다’거나 서로 안 놀래게 ‘뭐 노루가 지나갔네.’ 이렇게 말해. 호랑이 봤단 말 절대 안해. 왜? 서로 겁이 나고, 세뇌가 되니까 최면이 걸리잖아. 그래서 인자 거기보고 영골이라 그래. 호랑이가 옛날 살았다 그래. 

    그리고 그 호랑이가 낮이 되면, 심원 앞에 뒷산이 요렇게 철탑 있는 산이 괘관산(掛冠山)이야. 갓처럼 보여요. 그렇지 그것이 바로 갓을 걸어놓은 모습이라. 그 한자로 괘관(掛冠)이라, 괘관. 

    ‘갓을 걸어 놨다.’ 그래서 금평에서 보면 이렇게 갓처럼 보여요. 그죠. 그 괘관산인디, 거기 가믄 상투, 갓 속에는 뭐가 있죠? 

    (조사자 : 망건?) 

    아니 근께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믄, 상투가 있제? 거기가 상투바위가 있어. 실지로. 거기 가면 이렇게, 한 열댓 평이나 되게, 한 스무 평 되게 이렇게 마당이 있어. 자연 마당이. 거 낮에는 호랑이가 거기서 쉬었다는 거여. 사람 절대 안 간 곳이니까. 

    어 그래서 인자 그 호랑이, 마지막 호랑이가 음, 조선시대 때 마지막 일제 순사들이 저쪽에 지금 청소년 수련원 있죠? 죽평에. 거기서 쏴가지고 잡았다는 거여. 그 이야기는 사실 이야기여 그것도. 그래서 호랑이가 사니까 이 아줌마가 배씨라는 아주머닌데, 살지를 못해. 혼자 못 있어. 밤에 못 자. 

    근께 요 산 너머에 송내라는 마을이 있어. 이 절터가 봐봐. 여기가 지금 고룡사인데, 여기가 지금 기우제 지내고 그럴 때 제단이 있었단 말이여. 제사를 지내는 천제. 여기서 요렇게 가서 여기가 이 너메가 원동리 송내 마을이 있어. 청소리 송내 마을. 그 이씨들이 그 터를 잡고 살아요. 그래서 거기서 인자 이씨들 집성촌인데, 거기서 방을 하나 얻어서 살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때 그 이웃집 어떤 양반하고 사랑을 하게 돼. 그래서 인자 이렇게 자식들을 많이 낳았어. 사실 이야기라 이건. 근거에 의한 이야기. 나 만들어낸 이야기 아니여. 그래서 여기서 자식을 낳아불었어 인자. 다섯 명인가를 낳았어.

    하여튼 그, 이 제사 지내는 이곳의 여자와, 배씨 여자와 이쪽 동네 사는 사람하고 사랑을 해서 자식이 다섯인가, 남자가 다섯인가 태어났다는 거여. 그건 족보에 어디 근거가 있다 그래. 분명히 있다 그래. 그래 내가 배씨 할머니까지 알잖아. 근디 요쪽 새로 나온 사람, 성은 내가 말 않겠어요. 

    그래가지고 이 이야기라. 근데 이것을 절이라 그래 사람들이. 근디 또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적손(嫡孫)이 아니잖아. 적손이 아니다 보니까 옛날에는 어째요? 

    어 나가 알기로는 의도적으로 숨길라는 것 때문에 이야기를 스님으로 바꿔분 것 같애. 글고 옛날에는 보통 다 왜 절이 망했답니까? 

    그러믄 벼룩이 많았담마. 벼룩이야기를 해. 근디 인자 그렇게 그 유학, 우리나라 조선 불교를 유학자들이 탄압을 했잖애. 그래 전부 그렇게 말을 만들었던 거여. 

    그런 것이 옛날에 교육이 안되고 쭉 내려오다 보니까, 그거이 자꾸 진짜처럼 굳어버린 거지. 그래서 고룡사는 그 여자와, 그 여신산과 스님과의 관계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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