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3_08_FOT_20170823_GYS_CHU_0002
    조사장소 :
    강진군 조사자 서재
    조사일 :
    2017. 08. 23
    제보자 :
    최형욱(남, 80세)
    조사자 :
    강영석, 강두재
    줄거리
    내용
    구술자: 내가 6.25때 13살 먹었네. 그때 얘기를 함세. 그래가지고 내가 그 당시 정종실씨가 중학교가 없었어 중학교가 없었는디 그 인제 여기 논 부지를 기부해가지고 지금 학교 부지가 정종실씨 땅이여 원시 그래가지고 기부해서 중학교를 건립을 했어. 성전중학교 그래가지고 그때 1회가 노남식씨 같은 분들이 1회여 노남식이. 1회로 나왔는디 6.25통에 우리가 13살 먹었는디 6.25가 났어. 그래가지고 그때 우리가 내가 성전중학교를 다녔어. 다녔는디 저녁에는 학교에다 불 지른다고 마을을 돌아감시로[돌아가면서] 애기들 열한살먹은 열두서너살 먹은 열댓 살 먹은 애들이 와서 보초를 섰어. 야경을. 야경을 하면 애기들이 뭣을 알 것이여. 그래가지고 그 당시만 해도 학교가  정부가 예산도 없고 손도 뻗치지 않으니까 예능과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영수국어 이런 것들만 집중해서 이렇게 쭉 나오고. 우리같은 사람은 그래서 성전중학교 5회여. 그리고 5회에서 저기 옴천 김기삼이라는 사람이 조선대 총장 하다가 사고나서 죽고 그런 것이 있고 그리고 터가 그 전에 수가 적으니까 제초제도 없고 그러니까 여름방학에는 나와서 풀 베고 운동장에 풀이 막 엄청난께 돌아감시로 풀 베고 그런 것이나 하고. 참 그래가지고 이게 고등학교 전시되니까 성전 인재 요람지도 되고 인재양성하는데도 보탬이 되고 모든 것에 기여한 양반이 정종실씨 덕이여. 그래갔고 그 당시는 작천 강진군 일원에서 발령해서도 중학생들이 오고 작천는 말할 것도 없고 넘어 댕기고 군자리 작천 평리 쪽에서 그래갔고 학생수가 많지는 안했어도 다 괜찮하게 실력들이 그 당시에는 시험보고 들어간 판이라 그런 머시기를 지내고 그랬네.
      우리 어렸을 때 인민군이 밤에는 이동하고 낮에는 남의 집에 방이 있는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우리 동네도 가본께 한 열 명 남짓 군인들이 인자 낮에는 잠을 자 그래갔고 우린 어린께 가서 따발총도 만져보고 방에 잠을 잤제. 그랑께 저녁에 이동한께. 비행기 무서운게 그래갔고 비행기 무서운 게 이렇게 하다가 6.25가 났다한디. 그 당시 저 쌕쌕이. 쌕쌕이가 막 지나가고 호주댁이라고 이슬람인인디 그래가지고 그 당시 할아버지인가가 총에 맞아. 쌕쌕이 총에. 그리 알고 있어. 그래 갔고 그 당시에는 참 비참했제. 머 저 그래가지고 그 당시 조금 우리가 배운 사람들은 좌우익이 이렇게 확연히 갈렸거든. 그래갖고 선생들 글 갈치다가도[가르치려다가도] 경찰서에서 와갔고 내 잡아가고 저기 수양리 이양수라고 혹시 아실란가 모르것네. 이양수 그 사람 공부하다 갑자기 뭣을 잡아갔고 고문하믄 딱 불거지면 딱 잡으로 와서 연계된가 하고. 딱 그런 일들이 많았어. 그래가지고 인자 여수반란 난께 우리 랑동사는 교회 철동 갔다오다가 송양섭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송양섭이가 새벽에 교회 갔다 오다가 장오 사는데. 이장 집 앞에 굴뚝 있는데 반란군한테 총 맞아서 그 자리에서 죽고 온께[오니까] 경찰인줄 알고 그래가지고 우리는 어려서 초등학교 다닌디 반란군들이 저그 저 수암산에 있다가 저 윤씨 제각에서 윤시현인가 누군가 있었어. 고발해분게[고발해버리니까] 그때 전투가 벌어져갔고 우리 학교에 있는 디 그때 쓰리쿼타 있다안했는가 그때 아홉인가 실고 왔어. 잡아서 그래갔고 그날 저녁인가 그 뒷날저녁인가 저그 오산이 그쪽으로 내려와갔고 반란군들이 다 못잡고 옴천 신기 그 개울 수인산으로 내려오는 개울이 있어 그놈타고 나와갔고, 못잡고 인자 저녁에 내려와 오산 그쪽은 젊은 사람이 몇 사람 있었는데 싹 죽여 부렀제. 보복을 해 부렀어. 잉 그래갖고 신고한 사람은 시장 통에서 첫째로 총살을 당하고 우리 어렸을 때 그리고 누군고니[누구인고 하니] 금당리에 가서 이행복 형 이원교 이원교씨는 그 머시 본보기로 시장 통에서 총 쏘라고 했어. 그때는 인민재판이 없고 나중에 질서가 잽힌께[잡히니까]. 청년 조직이 딱 생기든마[생기더구만] 어렸을 때 그래갖고 저녁에는 저 대상을 비협조적이거나 과거에 많이   머시기를 한사람을 대상으로 해갖고 잘 협조 안하면 반공분자로 딱 몰리고 숙청해 불고 그런 머시기가 있고. 또 연구포섭 즉권포섭을 하기위해서 어려서 보니까 논을 한 평에 몇 주가 심어졌는가, 나락 포기는 몇 개가 섰고 나락 알갱이가 얼마 몇 개. 딱 한 평 얼마인지 나와부러.[나와버려] 나락수확이 그래갔고 그런 거시기를 하다가 퇴각을 했어 그런디 내가 벌라고 다니면서 강원도에 가서도 들어보니까 그런 거시기를 정책적으로 했다고 하데. 강원도 거그를[거기를] 다니니까 그런 사람들 남한으로 되니까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런 생활을 했다고 하데.
    내가 지금도 그래, ‘공산주의가 무서운 정치다’고 그리고 이론상으로는 우리가 상당히 좋게 받아들이고 하는디. 실지 지금도 방송에 나온 거 보면 진짠가 거짓말인가 몰라도 이론하고 현실하고는 맞지 않는 현상이 많어. 그래야 그 사람들이 체면이 유지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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