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2_02_MPN_20160818_JIS_0001
    조사장소 :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신생마을 장인심 자택
    조사일 :
    2016-08-18
    제보자 :
    장인심(여, 80세, 1937년생)
    조사자 :
    이옥희, 신은정
    줄거리
    학교에는 병 안든 학생들만 예뻐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환자를 사랑해 주고 신경 써 주는 주 선생님 같은 분도 있었다. 그런 주 선생님은 여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아서, 쌀을 모아 선생님께 떡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주 선생님은 서울로 간 후에도 소록도에 있는 자신의 누나에게 면회를 올 때, 꼭 제보자를 보고 가고는 했다.
    내용
    다른 애들은요. 엄마 따라와서 병 안든 애들도 많이 있었어요. 공부 했어요. 엄마 따라와서. 그럼 여기서 그냥 살면서 같이 한 애들도 있고, 그러니까 이런 병든 사람은 인물도 안 좋고 육체도 이러니까 인기 없잖아요. 그래도 어떤 선생님은 그런 학생만 이쁘고(예뻐하고) 그런 학생만, 참 공부는 못해도 참 사랑하드라구요. 간디(그런데) 정말로 주 선생이라고 그분은 광주 사람이에요. 근디 아~조(아주) 미남이고 잘 생겼어요. 근디 그 선생님은 저를 참 사랑했어요. 그라고 항상 성적표에다가 ‘인심아, 좀 더 노력하여 1등 하길 바란다.’ 그라고 써놨는데 나는 좀 더 노력을 안 했어. 시험을 못 쳐도, 그래도 내가 1학기 때 저 8등 했어요. 그러고 암껏도 모르고 가만히 꿔다놓은 보릿차댕이(보리를 담아놓은 자루) 같앴어요. 이 병이 아플 때 굉장히 아픕니다. 그래갖고 그냥 난 너무 이렇게 장애를 많이 가지고 왔거든. 그랑께 약하고 빼짝 말라갖고 빼딱(뼈)만 걸레갖고(남아서) 왔었거든요. 죽어블라고 맘 먹고. 그래갖고는 그렇기 때문에 축 쳐질라 그래. 그렇기 때문에 노는 애들 나가도 내는 놀러 안 나가고, 그냥 공부 아까 배왔던 걸 이렇게 두 번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하면서 살았어. 그래서 긍께 이라더라고. 우리 여학생 중에 하나가 선생님 보고 1학기 때 시험 쳤는데, 내가 하도 바보같이 생겠는께(생겼으니까) 그랬으까, 왜 그랬으까? 지금까지 그거이 궁금해. “선생님, 선생님, 인심이는 몇 등 했어요? 몇 등 했어요?” 그러고 쫓아가드라고, 선생님한테. 그랑께 선생님이 하는 말이 “꺼꾸로 해서 8등 했단다.” 그라드라고요. 그래서 나는 진짜 ‘나는 거꾸로 해서 8등 밖에 안 한다.’ 는 실력으로 제가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랬겄다!’ 그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드라고요. 진짜로 8등이에요. [활짝 소리 내서 웃으시며] 그래도 그라고 또 2학기 때는 내가 2등 했습니다. 잘했죠? 공부 통 안 했거든요. 안하고 그런 바보였는데 그래서, 그래서 내가 ‘정말 공부를, 병 안 들어서 공부를 했으믄은, 내는 공부 못하는 학생은 아니었겠다.’ 그런 생각까지도. 그라고 선생님이 이렇게 수학을 알려주믄 잘 듣고 있었고, 모르는 것은 반드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는(나는) 학생들 오믄은 “느그들 공부 잘하는 방법 가르켜줄까?” 그라믄 “예, 예, 그래요.” 그라믄 “가장 기본적인 건 강의시간에 집중적으로 잘 들을 것. 집중적으로 잘 들어. 하나도 핸드폰이나 뚜들고 있으믄 안 된다 말이야.” 그라면서 “잘 듣고, 모른 거 있으믄 반드시 질문해라. 질문했던 건 일평생 안 잊어불고, 질문했던 건 시험에 잘 나온다.” 그런 소리 갈켜줘요. (조사자 : 16살이면, 이렇게 남자선생님이 잘해주면 흠모하는 마음도 들고 그랬겠는데요?) 그럼요, 아주 많이 존경했고. 선생님도 그 항상 그 선생님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 딱 시험 치르게 해놓고는 저~ 뒷문 앞에 창문 열고 딱 거기 걸터 앉었어요. 거기서 감시해요. 그래서 나는 컨닝할라고 꿈도 안 꿔. 공부도 못하는 학생이 하나가요(한 명이), 컨닝하다가 들켰어요. 그랑께는 그냥 ‘짝’ 찢어블드라고, 시험지를. 그래서 낙제한 거고. 내하고 나이가 비슷해. 그래갖고 서울에 가서 병 나서갖고. 선생님은 아무 표도 안나. 개갖고(그래가지고) 결혼 했고, 서울 가서 살면서 한 번씩 여기 면회 오시드라구요. 오면 언제나 저를 찾어와요. 찾어오구요. 인자 저 주차장 있는 디가 자기는 살았어. 거기 동네에서. 근디 인자 거가 자기 누님 있으니까 거기를 면회 와갖고, 여까지 신생리까지 나를 찾아서 오는데. 오믄 그때는 테리비젼이(텔레비전) 거기 장안리 동네만 있고, 우리 동네는 없었어요. 그 선생님이 테레비 거석 내가 선생님 보러 거까지 갔어. 밤에 인자 밥 먹고 갔다고. 거기서 텔레비 보고 선생님이 데꼬 오고(데리고 오고). 그러믄 선생님이 여까지 다 이렇게 다 커서 그거 했는데도 이렇게 딱, 바람이 굉장히 세거든. 우리 동네 올라믄. 겨울에는. 그러면 언제나 바람이 쎄가지고, 자기가 바람은 개래주면서(가려주면서) 좋은 얘기 해줘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된다. 너무나 그냥 부자 될라고 막, 그렇게 해도 안 되고. 그냥 딱 적당하게 사는 거이 사는 거다’ 그러면서 그런 좋은 교훈적인 얘기를 해주고, 그래서 항상 그 선생님이 정말…. (조사자 :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세요?) 주씨 이름을 그냥 해도 될까 싶어서 이름 해도 되겠죠? 선생님 돌아가셔뿠어. 주용택이라. 주씨라. (조사자 : 그분도 환자셨던 거죠? 그니까 그분도 양성이었던 거죠?) 예, 그란디 아무 태도 안 나. 선생님이 막, 우리들이 그랬어요. 그라니까 여가 어딘가, 팔꿈친가 어딘가, 쪼끔 이거 한다 한, 병이 감각이 없는 그것이 그거입니다. 마비. 딱, 여기 어디가 그런다는 거야. 아~무렇지도 안 해. 아무렇지도 안 해. 그란디 체육선생이었어요. 얼마나 운동을 좋아하는지 배구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아주 잘하고 그런다고요. 그래서 그 선생님은 참말로 다시 만나봤으믄 좋겄어. 지금도 만나봤으믄. 그때는 철이 없어앚고 막, 만나서 더 어떻게 옳은 말도 선생님께 감사한 말로 할지도 몰랐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같으믄은 ‘아이고, 선생님 좋다고. 얼마나 내가 … (존경한다고 할 텐데…)’ 선생님 안하고. 또 인자 안하고 있었어. 쩌가 있을 때, 무슨 일 때문에 그라고 있을 때, 우리 선생님 3학년에 다른 반에 하다가 다른 일 때문에 안하고 있을 때, 우리 반에서요. 여학생들, 내맨한(나만한) 굵은 여학생 많았어요. 저만 그란 게 아니라, 우리끼리 가난하고 그런디 “우리, 쌀 걷자.” 선생님 떡을 좋아해. 밥을 막, 도굿통에다 찧어갖구요. 우리 송편을 만들어갖구요 월편을 만들어갖고. 낮에 거기 갔다 왔어. 가갖고는요 선생님은요. 여만치 데려다주면은, 또 우리가 또 고만치 델다주고. 저녁 때 내~ 그라고 돌아다녔어. 어, 선생님도 우릴 그냥 좋아해. 어짤 줄 모르고 좋아해. 다른 여학생들하고 같이 갔는데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선생님은 정말 다른 여학생도 참, 그 선생을 좋아해. 간디 그거는 부끄럼이 너무 [고개를 숙이며 숨듯이] 만해갖고. 기양 선생님 보러 가서도, 내는 그냥 말할 거이 있으믄, 이렇게 툭툭 하는데. 그거는 막, 또 속으로 젤 좋아합니다. [몸을 숙이며] 그래도 막, 이라고 있어요. 그럼, “야, 니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니?” 그라고 선생님이 막, 자기가. 선생님이 똑똑하니까, 자기를 얼마를 좋아한다는 걸 다 알아요. 말을 표현을 안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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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_02_13_MPN_20160818_JIS_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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