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장님이신 심영현님의 소개로 찾아뵈었다. 모판을 만드는 중이셨는데 일을 멈추시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부인께서 함께 했다.
어렸을 적 4.3항쟁과 6.25를 겪으면서 양쪽 간에 동네에 들어와 서로 쟁탈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어린애로써 느꼈던 이야기와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전쟁의 폐해에 대한 견해와 현재 제삿날이나 돌아가신 분들 중 과부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가 여 저 제주도 4.3사건 있었고 그 대구 쪽에 그 사건 있었고 여가 여순이 1948년 12월 26 10월 26일날 여기서 벌어졌어.
사건이 그때 인자 아시다피시 여수서 14연대가 완전히 그 전국으로 그냥 개최해가지고 결정해서 기양 이 사람들이 맘 묵고 한번 쟁탈헐라고 일어난 것이 사변 아닙니까 흠 그러고 거 순천역에서 그 철도경찰허고 차를 하천리 임양리에 대 가지고 붙어가지고 선공을 허고 저 막 거그다 타고 구례구에서 내려 14일날 아니 거 10월 26일날 새벽일거예요. 아마~
그래가지고 이것이 피아골로 들어갑니다. 피아골이란 영화도 있고 거 책이 나왔잖아. 피아골로 들어간 그거이 유래라 내가 그때 열다섯 살인가 됐제.
그러고 인자 육이오는 중학교 이삼학년에 났고 그래 한 인자 여순사건 나기 전에 이 지역에 또 저 해방 막 되가지고 그 저 주조장을 했을 때 거 주조장 인부들이 가담을 해서 저기 저 폭동이 한번 난적이 있어.
연파리서 그것은 좀 12월 26일 그때도 저 26일 기점이 그땝니다. 그때는 인자 연락수단이 이런 문명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봉화 밤으로 불을 판닥쓰고 똑 두 번 썼다 꺼지고 이거이 암호여 이걸 경찰이 모이지.
그래서 그때 아홉 명이란 사람이 그날 저 끌려가서 밤에 대창으로 쩔려 맞아갖고 죽어 근디 그 중 한사람이 유일허게 살아 흐 그 저 아주머니가 살아갖고 사니까 누가 죽인지 알거 아닙니까 시방 사람들이 한 부락 사람이고 전부 누구누구니 모습이다 허니까 그러니가 일망타진이 돼.
그 인자 그 사람들도 인자 다 세워갖고 그때는 막 잔인해 막 죽으니까 그래가지고 인자 그래가지고 12연대가 옵니다.
진압허로 공비가 인자 되어서 빨치산이 되어서 지리산으로 가니까 그걸 소탕할라고 여기서 12연대가 구례 중앙국민학교에 일개 연대가 주둔을 해 그래갖고 12연대 1개 1대대가 에 그날 이십육일이 아니고 그 며칠 뒨데 산동에 소탕하러 가가지고 새벽에 이평에서 다 죽어요.
몰살 갸들은 이미 본토에서 밥해 묵고 기관다총 있다가 여기오믄 정보 다 알고 있거든 딱 해놨다가 그냥 오니까 이미 다 죽어 다 죽였는데 연대장이 지휘를 허고 맨첨에 가면서 맨 첨으로 연대장은 통과를 해놓고 그 나머지 병력만 다 죽어 다 죽었는디 아마 내가 알기로는 인자 그 뒤에 수십년이 지나고 인자 육이오 사변이 끝나서 휴전이 된 뒤에 그 당시 인자 그 저기 전역을 아직 안 허고 온 군인이 공비잔당 소탕하러 와 가지고 여기로 왔는디 그 양반 증언을 인자 우리 집에서 일개 소대가 주둔을 허고 있으면서 그 말을 해 내가 여기서 12연대가 다 죽을 때 두 사람이 살았는디 그 중 내가 하나 살았다고 저만 그 말 들었어요.
인자 김제 사람인디 그래가지고 저기 저 뿔이 날거 아닙니까 연대장이 그러니까 연대장은 살았어.
어디가 살았냐믄 산동시장이란 동네에 들어가 가지고 보니까 막 우당땅땅 한디 보니까 아군이 전부다 섬멸되었다고 허니까 내가 거 책임자가 살면 되냐해가지고 그 배 시양이란 부락엘 들어가 갖고 자기 거 기사보고 니가 날 쏘아라.
그니까 기사가 쏘았는가 자기가 자기가 했는가 몰라도 연대장이 거기서 자기가 목숨을 끊어요.
그러니까 그 부락에서 고이 봉해가지고 깨끗허게 묘를 써서 해 놨단 말이요 인자 그러자 십이연대는 거기서 또 후퇴를 시키고 이게 삼연대 그 저 건국군 삼연대 이대대라는 병력이 남원서 주둔부댄디 이대대가 인자 산동을 맨첨에 와가지고 긍께 조재민이란 그저 대대장이 뿔이나갖고 올거 아닙니까 그래서 산동서 무차별허게 사람이 가담한 사람이 많이 있는 걸로 보고 그들이 죽어노니까 보복을 당했지.
그래가지고 그 저기 그 담에 인자 광의 와가지고도 솔찬히, 많이 어렵게 대해 썼는디 그 당시 인자 면장이나 하청 반장들이 광의서 사람이 많이 죽을거 같으믄 나부터 죽이고 피하그라 하믄서 그냥 막 붙들고 늘어진 바람에 인자 광의도 희생답이 덜 났어 그래 우리가 봤어요.
그러니까 산동 중동은 구십세 백세 된 분들 해 가지고 그 저기 미망인 그 부인들이 거대 과부가 많습니다.
지금은 싹 갔지만은 암울했던 시대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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