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05_MPN_20161208_JMG_SGT_001
    조사장소 :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조사일 :
    2016-12-08
    제보자 :
    손갑태(남·87세)
    조사자 :
    장민경
    줄거리
    삼일운동 당시 열네 살이었던 흥촌 출생 목포 여중생이 있었다. 돌아가신 후 삼일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유공자 표창을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한 분으로 현충원에 들어갔다.
    내용
    삼일운동 때 목포 항도여중에서 열네 살, 열다섯 살 먹은 여중생이 한나 있었어요. 여그, 여기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 흥촌리야. 흥촌! 그, 그래가꼬 그 사람이, 직금은 항도여중이 목포여중이제. 그 사람이 국가에서 포사, 그것에 해당이 돼서 또 그분하고 또 한분 있어요. 여, 박노수씨 부인이라고, 그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집이여. 지금 농장도 커. 근디 그분의 아주머니 하고 같이 그 분 목포 항도여중에 다닐 때 독립만세 부르고 깃발을 달고 목포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해요. 문유금이, 문유금! 우리 마을 사람인디 전혀 몰랐는데, 하루는 내가 알던 옛날에 경찰관이였던, 여 근무했던 적이 있다고 합습디다. 그라고 모른 사람하고 둘이 같이. “거 어서 뭔 일이냐?”고 인자 그라고 물어 본께는 ‘자기 아버지가 옛날에 여그서 살았다’고 ‘방노수씨 아들’이라고 그란다 말이여. 거 즈그 형은 나하고 잘 알제 동창이니까. 거 즈그 동생이니까 모르제. 인자 저 밑에 두 째 세 째나 밑에서 간디 거 경찰관은 또 어뜨케 알았냐믄 그분이 여그서 해남에 이사한 해남서 거, 책을 팔았제. 문구점이랄까, 뭐이라할까. 그 박노수씨란 분이 그래가꼬 그 인자 그 자식들이 해남 초등학교를 다녔지. 지금 해남 초등학교. 그래서 그 경찰관하고 아, 동창이라 해. 그래서 나를 델꼬 갔어. 거 즈그 아버지 기록은 여그 저 우리 마을 기록에가 있습니다. 우리 마을 기록에 박노수씨라 아까 말했던 그 기록 갈쳐준께 ‘그놈 증거로 쫌 갖고 가야 쓰겄다.’ ‘뭣하러!’ 그란께 즈그 어머니가 인자 그, 뭐냐 ‘그 당시 그 독립만세 가입한 사람으로서 유공자로 표창이 되서 대전 현충원에 들어가게 됐다’고. 그랑께 즈그 아버지도 그 어머니 들어가면 아버지도 들어간 모양이야. “아버지의 기록을 좀 알고 싶다.” 인자 그래서 그럼 인자 조사하는 과정에 아까 문유금이도 그 때 알았어. 흥촌의 문유금이라 나오더란 말이요. 문유금이라고 그 저 박노수씨 부인이니까 우리 어머니뻘 아입니까. 즈그 형이 나하고 동, 동갑내기고. 그러니깐 인자 어, 그런 분들 거 나와 있어. 인자 거, 박노수씨 부인은 인자 표창을 받는다는디 문유금이란 분은 그런 기록이 없어. 거 그분이 또 신문을 여 거 나와 있는 걸 나한테 보내왔어요. 인자 그 박노수씨 아들이 나한테 찾아온 사람이 인자 그 기록을 본께 문유금이가 흥촌으로 돼 있어요. “그 뭐, 뭐 상받았단거시 없다.” 그란께 내가 또 주, 중앙으로 또 인터넷으로 물어봤제. 인자 물어본께 답장이 뭐이라면은 “이분은 더 먼저 받아뿐 사람이요.” 그래 이분 문유금이는 더 먼저 인자 발견됐어. 받어부렀고. 세 분인가는 아직 그 행세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그랬어도 나중에 일본 사람들한테 편에 들어서 일한 사람은 해당이 안된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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