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17_01_FOT_20170825_KYS_PSY_0001
    조사장소 :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행정 동우회 사무실
    조사일 :
    2017. 08. 25 10시
    제보자 :
    박세영 (남, 1954년생)
    조사자 :
    김영수,김창훈
    구현상황
    함평읍 문화원 분원장님이 사전에 연락을 취해 구연시간과 장소를 잡아 조사자들이 행정 동우 회를 방문해 구연. 제보자는 전 공무원.

     

    줄거리
    함평군의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비화

     

    내용

    1980년 5,18일에 계엄군이 광주에 진격 하면서 광 주로가는모든교통수단을 차단했다.
    함평은 5,19일 지역방위 협의회장(군수)의 제안으 로 경찰서 및 각 지서의 무기들을 군부대 (함평 717관 리대대)로 이관 했다.
    그 날 오후부터 다음 날 까지 광주의 학생 시위대가 함평읍에 진입 했다. 읍내 상가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빵과 음료수 등을 학생들에게 제공 했다. 함평 경찰서 직원들은 광주로 차출되어 경찰서에는 당번 2명과 교 환원 2명 뿐 이 었다.
    5월 21일 1시경에 계엄군이 시민들에 무차별 총격 을 가했다. 총격에 밀린 시위대들은 우리도 무기가 필 요 하다고 외치면서 교외로 나갔다. 화순. 나주. 영 암. 해남의 경찰서와 지서의 무기고를 습격 탈취 했다. 함평에도 3시경에 시위대들이 경찰서 무기를 탈취 하러 왔으나,이미 무기들을 군부대로 옮겨 갔기에 공 기총 3정 밖에 없었다.
    시위대들은 함평 궤도버스 3대를 빼앗아 타고 가다 가 낡아서 고장이 나자 대동면 고산동에 버리고 갔고

    이 버스회사(광진 여객)는 5,18이 끝난 투,새 차로 3대를 받아 80여대의 시외버스의 운송회사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21일 오후 7시경에 함평읍의 청년들과 주민들이 광인중 학교 숙직실에 24명이 모였다. 현 광주 상황을 애기하고 논의 하던 중 이 중차대한 일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내일 장 날(22일)을 기해 함평군민의 뜻을 모아 군민 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김창훈(당시 대동 성중학교장) 에 일임 하였다.
    다음 날(22) 10시가 되어도 뜻을 모은 24명의 어제의 동지들이 이런저 런 핑계로 모여들지 않자. 행사를 주도하던 김창훈,모효남(광인중 교사) 은 군민궐기대회를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하고,김철수(문학인)을 찾아가 행사계 획을 설명하고 동참을 이끌고 당시 읍장인 김하균씨를 찾아가 만세 삼창을 앞에서 해주기로 쾌히 승낙 받았다.
    이어 군수(나승포)님을 면담하면서 행사 취지를 설명 하고 함평공원으 로 향 하였다,이 날 행사는 11시 50분에 시작되었는데,김창훈씨의 사회 로 김철수씨의 광주현황보고,광주 시위대를 지지하는 결의문 낭독,행동 지침의 인쇄물을 군민들에게 배포하고 김하균(함평읍장)의 선창에 따라 1,000여명의 군민이 만세삼창을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 었다 평화롭게 군민궐기 대회를 마친 함평군 시위대들은 학교면 사거리로 이동하여 검문 검색을 하면서 외지 시위대들이 오면 “여기는 우리가 지킨다고” 하면서 목포. 무안. 나주로 유도하여 보내 곤 하였다.
    그래서 우리 함평은 4일 동안 평온을 유지 했을 뿐만 아니라,사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편 군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일부의 군민들은 다른 시 위대와 함께 해남.목포.무안 지역 예비군 대대에서 무기를 탈취 하는 시위 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한편 22일 저녁에는 타 시군에서 수거한 무기류 ( 총75점,수류탄5발,탄알, 50박스)를 자진해서 수거하여 군청에 반환하 고 자진해산 했다.
    암울 했던 5월이 지나고 6월초에는 군수가 함평읍장에게 표창장을 수여 했다. 내용은 지역안전을 도모하고 시위 진압에 노고가 많았다는 것이었 다.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7월 중순에 강 모씨가 공무원(읍장)이 광주 항쟁과 관련하여,함평군민 궐기대회에서 만세삼창을 불렀다고 내무부에 투서를 한 것이다.
    무슨 일이나 연유가 있는 법이다.
    읍장을 쫒아내고 자기가 읍장을 하려고 한 짓 이었다. 내무부에서 감사가 나왔으나,이사건은  군 수 (나승포)의 상황 설명으로 마무리 되었다. 5월 함평군민궐기대회를 주도했던 김창훈씨는 경찰에 불러가 많은 고초를 받기도 했다.
    7월25일 부터는 반상회를 통하여 분실된 총기류 찾기 운동이 대대적으 로 전개 되 었다. 총기1정에 포상금이 100만에서 시작하여 400만으로 올 라갔다. 광주,목포 구간(국도1호선) 도로 변에서 퇴비증산운동에 참여 하 던 학교면 사거 리 에 사는 김 모씨가 총4점을 발견해 1600만원을 보상금 으로 받아 갔다.
    5월의 광주와 함평의 군민궐기대회는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찿아 볼 수 없는 의로운 행동이었다. 이 또한 의향 함평의 역사와 맞물린 일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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