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1_16_04_MPN_20161122_JKS_JJY_0002
    조사장소 :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 몽탄초등학교
    조사일 :
    2016-11-22
    제보자 :
    정재용 (남, 1941년생)
    조사자 :
    조기석. 한경란. 김세나
    줄거리
    6.25당시 마을 사람들 중에는 인민군 부역자가 더러 있었다. 여러 만행 중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동네 사람들을 다 나오라 해놓고 줄을 세워 서로 빰을 때리게 한일이다.
    내용

    그때 우리 동네 인구가 천 명이, 쪼금 몇 명 허믄 천 명 된다. 했어. 백 한 오십육 호까지 갔어. 여 마당에서 우리 학교 다닐 때 부락별로 줄 서라고 하믄 딴 동네는 한 줄로 쓰고, 두 줄로 쓰고 한디 우리 동네는 세 줄로 서갖고 이 뒤에 까지 와브러. 백 한 육십 명 그 정도 되지요.

    (조사자 :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간 사람도 있고 했을까요?) 

    우리 동네에서 칼 들고 댕긴 사람 수두룩 해브렀어.

    (조사자 : 인민군에 끌려간 사람은 북한에 넘어간 사람도 있고 할까 요?) 

    네. 그때 몇 분 넘어 갔어요. 

    (조사자 : 생사도 확인되고요.) 

    생사는 확인이 안되아브렀제. 우리 동네에도 칼 들고 다니는 사람 몇 사람, 동네사람들이 재앙은 다 쳐브렀제. 동네사람들 다 나오라 해갖 고 줄 뺨 때리게 허고. 두 줄로 쭐줄이 서갖고 둘이 때리라고 허믄. 그런 께 아버지 또래 되는 사람도 있고, 하네(할아버지) 또래 되는 사람도 있 고, 젊은 사람들이 언뜩 때릴 것이요. 때리라고 헌께 때리믄 “ 야 이놈의 새끼야. 이렇게 쎄리라.”고 뒤지게 뚜드러 맞고. 아주 형편 없었제. 그라 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너무 했어. 6·25 때 거물이 좀 들어 브렀어. 쩌 그 저 상신기 사람이 매제가 사내에 살았다고. 그 선으로 들어왔다고 그 럽디다. 몽탄은 인민공화국위원장이니, 뭔 경찰보다 그때 뭐라고 했냐. 뭐니 다 해먹어 브렀어. 내무서장. 

    (조사자 : 그 후손들이 여기서 살고 있지는 않죠?)

    많이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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