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장소 :
    목포시 용해동
    줄거리
    내용
    〇 전설1 이 갓바위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진리를 깨달은 경지 높은 도사 스님이 영산강을 건너 나불도에 있는 닭섬으로 건너갈려고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과 지팡이를 놓은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〇 전설2 월출산에서 도를 닦던 도사 스님이 상좌스님을 데리고 목포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려고 축지법을 사용해서 영산강을 건너려다 상좌스님이 잘못 따라와서 건너지 못하고 둘이 돌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〇 전설3 아주 먼 옛날 목포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목포근방을 드나들며 소금을 팔아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병든 아버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착한 청년이었다. “아버지께서 아직 병환이 낫지 않으신 것은 나의 정성이 모자라는 것이다”라고 항상 마음에 두고 충분한 치료를 하기 위해 약값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머슴살이로 들어가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갓바위 부근의 부자집에 머슴살이로 들어갔다. 한달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나으리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부친 약값으로 쓰고자 하오니 품삯을 조금이라도 먼저 주셨으면 하옵니다.” 그러나 욕심쟁이 주인은 볼멘소리로 “뭐? 너는 아직 품삯을 받을 만큼 일하지 못했어”하고 거절하였다. 가슴이 찢어질듯한 이 젊은이는 갓바위 양지 쪽에 가서 주저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지다가던 스님이 까닭을 물으니,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말씀드렸다. 이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러나 자네의 부친께서는 한 달이 넘었는데 어찌되었을까?……. 아버님이 급해. 나무관세음보살”하고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그때야 한 달 동안 아버님 병간호를 아니한 어리석음을 깨닫고, 단숨에 집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미 손과 발이 식어 있었다. “모두가 저의 잘못이오니 아버지 저승에서나마 편히 쉬세요”하며 갓바위 양지 바른곳에 아버님을 모시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만 실수하여 관이 벼랑 아래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후 이 젊은이는 천하에 가장 큰 죄를 지었다며, 큰 삿갓을 쓰고 하늘도 보지않고 추위와 더위는 물론 음식도 먹지 않은채 그 자리에서 용서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고 한다. 〇 전설4 큰 바위는 ‘아버지바위’이고, 작은바위는 ‘아들바위’라 하며 둘이 머리에 삿갓을 쓴 형태지만 역시 아들바위의 삿갓이 보다 근사하다. 옛날 목포의 갯마을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가난한 소금장수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포구에 실려오는 소금을 받아 인접마을에 팔아서 끼니를 이어갔다. 가난하여 약 한 첩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청년의 아버지는 날로 병환이 악화되어 갔다. 청년은 안타깝기만 했다. 그는 스스로 큰 결심을 한다. 이번에는 아버지 약값을 충분히 벌어야 집에 돌아온다고 다짐했다. 힘에 겹도록 소금짐을 짊어지고 떠났다. 그러나 딱하게도 소금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청년은 날품이라도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유해 보이는 길갓집에 찾아 들었다. 그 집주인은 소문난 구두쇠로 한 달 동안을 일하고 품삯을 달라는 청년에게, “그동안 먹여준 밥값도 못한 주제에 품삯을 무슨 놈의 품삯이냐”며 쫒아버렸다. 아버지 약값을 구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터라 길거리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다. 그 마을을 지나던 도승이 청년을 보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기에 그리 한숨을 쉬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자초지종 그의 처지를 말했다. 얘기를 들은 도승은 크게 낱색이 변하며 청년을 꾸짖었다. “청년은 한가지만 생각했지 깊은 생각이 부족했네, 자네가 약값을 마련하겠다고 타향을 전전하고 있는 동안 병든 아버지는 누가 돌보았겠으며 그동안에 죽었다면 애써 약값을 마련했다한들 무슨 소용있겠나” 그때서야 병든 아버지를 생각한 청년은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돌보는 이 없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청년은 그의 어리석음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이승에서 편히 지내지 못한 아버지이지만 저승에서나 편히 쉬게 하는 것이 그의 도리라 생각하고 관을 메고 명당을 찾아 나섰다. 갓바위는 예부터 말 형국으로 명당이 있고 안장터가 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산을 헤매던 청년은 지금의 갓바위 곁에서 앞을 바라보니 시원하기가 그지없고 양지바르므로 이곳에 묘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관을 바닷가에 놓고 묘를 파던 청년은 그만 실수를 저질러 곁에 둔 관을 건드렸던지 관이 데굴데굴 굴러 바닷속으로 첨벙 빠지고 말았다. 넋을 잃은 청년은 행여 관이 떠오르지 않을까 기다렸으나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엉엉 울던 청년은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놈이라며 바다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이곳에 아버지바위와 아들바위가 솟아오르고, 아들은 죄진 몸이라 하늘을 대할 수 없어 삿갓을 쓰고 있었다. 이 삿갓은 넓이가 6m 가량이고 한쪽 깃이 2m가량이나 된다. 청년이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팠다는 바위의 윗부분은 바위가 널리 깔린 탓인지 풀이 자라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은 청년이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바위를 중바위라 부르는 이도 있다. 아라한(阿羅漢)과 부처님이 영산강을 건너 이곳을 지날 때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곳 갓바위에는 이(李)씨 집안의 선산이 되어 여러 개의 묘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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