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장소 :
    목포시 죽교동
    줄거리
    내용
    1928년 윤치호 전도사가 기독교정신으로 7명의 부모 잃은 아이들과 생활하게 된 것이 공생원의 시작이 되었다. 1938년 일본인 여성 윤학자(다우치지즈꼬)여사와 결혼하였으나 1951년 6.25사변 당시 500명이 넘던 아이들의 식량을 구하러 광주에 갔던 윤치호전도사는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 윤학자여사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평생 희생과 봉사로 아이들을 키웠으며 그 공로로 1962년 문화훈장을 받고 1965년 제1회 목포시민상을 1968년 일본 황실에서 남수포장을 받는 등 민간대사로써 한일가교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생원은 한국 사회복지의 뿌리가 되어 현재까지 4천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라 사회의 일원으로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1997년 공생원과 윤학자여사의 생애 「사랑의 묵시록」가 한일 공동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게 한 터전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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