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9_FOT_20160713_CSE_JIS_0005
    조사장소 :
    보성군 조성면 조성경로당
    조사일 :
    조성면 조성경로당
    제보자 :
    정인석, 87, 남, 고졸, 토박이
    조사자 :
    최성은
    구현상황
    보성 조성경로당에 들러 경로당을 날마다 출입하시는 정인석 어르신을 만나 경로당에서 녹음을 했다. 정인석 님은 조성면장을 15년간 역임하시면서 조성면 발전에 노력하신 분이다.
    줄거리
    정인석님은 6.25 전투에 참가하여 경상도 문경쪽으로 후퇴했다가 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상주로 후송되었다가 하룻만에 기차로 대구를 경유 부산 모여고까지 후송되었다. 마침 같이 근무했던 향도 김중사와 함께 지냈는데 그는 피난길에 돈뭉치를 주워 가지고 왔다. 그러나 무릎이 관통상을 입어 정인석님을 통해 매점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몇 개월 후 부상이 낫게된자 530군번을 가진 전남 출신들은 광주로 진입해 서석국민학교에 연대본부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암호문제 때문에 경찰과 군인이 충돌할 뻔한 사고도 일어났다. 이후 강원도 건봉사 지구에서 전투를 하다가 1953년 7월 휴전이 되었다. 휴전후 5년이상 근무자중 제대를 원하는 사람 순으로 제대하자 그 순서에 따라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 왔다. 1951년 전투중 부상으로 화랑은송훈장을 탔고 그 이듬해 화랑무송훈장을 탔다. 현재는 부상당한 흉터가 안보일 정도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내용
    (네) 그래가지고 인자 거기서 인자 거 저희들이 후퇴를 해 가지고 어디까지 갔냐면 경상도 문경쪽으로 갔습니다. 그래갔고 경상도 문경에서 인자 그또 그때 전투를 했는데 역 이용을 당했지요. 저희들이. (어떻게) 역 이용. 무슨 이야기냐 그러면은 그 당시 정보가 내려 오기를 어느 지점에 인민군들이 거기서 전부 자고 있으니까. 그놈을 포위를 해서 전부 생포를 해라 이야기에요. 일개소대가 자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희들 중대가 그 놈을 포위하러 내려 갔는데 저 산 밑에 구렁에가 있어요. 걔네들이. 있기는 있어요 분명히. 있는데 그놈을 잡으려 내려갔는데 우리는 오히려 포위를 당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거가서 인자 잡을라고 그러는디 잡을 수가 있어야지요. 총갔고 하니까 같이 쏘지요. 인자. 그래갔고 하는데 뒤에서 쏴분거요. 우리를 보고. 그래갔고 거기서 올라오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어떻게 잘못 지형을 선택을 해 가지고 자갈밭, 인자 돌밭 거기를 올라 가는디 저쪽에서 상대방이 총을 쏘고 그 돌에가 맞으면 돌이 펀득펀득하고 하니까 얼마나 겁이 났는지도 몰라요. 계속 이렇게 올라온디 올라 가다가 어찌게 발을 잘 못 디디면 미끄러워서 다시 원상으로 내려오거든요. 그라면 다시 쫓겨 올라가고 그랬는데 거기를 올라 가다가 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오른쪽 오 다리를. 이것은 관통상은 아니고 유탄 날아가면서 인자그 쏘아분 것인데. 그래서 그렇게 맞고 밤에 인자 올라 왔어요. 일정한 고지를. 그래갔고 그 고지를 올라 오면은 인자 반대쪽으로 인자 우리 이쪽에 경상도 쪽으로 대구 쪽으로는 우리 아군들이 다 있고 그러고 저쪽에서 밀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거기서 부상을 당하니까 저희들은 할 수 없이 후송을 합니다. 저는. 그래갔고 후송을 한다고 그래서. 인자 이 발만 동기고 피 난놈만 좀 동기고. 이렇게 옆에서 부축을 해 주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했는데 부축을 받아 갖고 내려 오는데 그 당시 인자 기억이 난 것이 에 정지 누구냐 암호 근데 암호가 있거나 그러지를 못했어요. 근께 암호가 모르니까 그러면 거기 손들고 서 있으라 얘기에요. 손을 들고 싹 서있으면 옆에 풀밭에서 나와 갔고 뭘로 우리 아군이고 적군을 표시하냐 그러면 그 당시 인민군들은 머리를 빡빡 깎았어요. 근디 우리는 전부 이 하이카라 머리여. 그러니까 이렇게 머리를 만져 보거든요. 그래갔고 인자 머리가 있으니까 그래 너 요리해서 요렇게 빠져서 요리 가면은 에 차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환자들 모두 부상당한 환자들 실은다고. 그래갖고 내려와서 그 당시 제가 인자 환자로 해서 인자 총 맞은 부상 환자로 해서 나온 것이 인자그 상주. 에 상주에 가면은 성주가 아니고. 상주에 가면은 그 학교가 있었는데. 아니 학교가 아니라 창고가 있었는데. 창고 바닥에 가마니 거 우리 가마니 옛날 가마니란거 있습니다. 볏짚으로 짠 것 가마니 한나쓱만 깔아 놓고 환자를 한나쓱 눞혀 놨다구요. 그런는데 거기서 하루도 못지냈는데 다시 이 환자들을 싹 수송을 합니다. 그래갔고 열차에다 실고 대구를 경유해 갔고 부산까지 저희들은 후퇴를 해 분거에요. 부산까지. 그런데 부산에 막 도착해서 들어 보니까 대구 시내까지 적 포탄이 떨어졌던 거에요. 그때. 몇 발이 근께 많이는 안 떨어졌습니다마는. 그래갔고 그 낙동강 전선 거기서 많이 더는 즈그들이 못오고 그랬는데. 그래갔고 저는 밀려 가가지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부산 에 무슨 여자고등학교 교실로 싹 치워놓고 환자를 거그다 다 눞혀 놨는데 거기는 가마니가 아니고 모포 한 장씩을 놔두고 환자 한 앞에씩을 눞혀놓고 있는데 거가서 내가 환자로 들어가 있는데 다행히 그 교실로 들어 가니까 내가 드러 누운 옆에가 제가 모셨던 거 저 선임하사관이 아니고 향도 향도라는 직함이 있어요. 선임하사관 밑에. 그 향도가 거기를 와갔고 드러누워 있드라고요. 그래서 아니 어디가 김중사님 어디 다쳤습니까? 그런께로 자기는 딱 어디를 다쳤는고는 이 발 어디를 다쳐 갔고 전혀 행보를 못해 부러요. 무릎인가 어딘가를 다쳐갖고 그래갔고 관통상이 되었어요. 그랬는데 그분하고 거기서 같이를 있는데 한가지 기이한 것은 인자 바로 옆에가 누웠고 인자 거 우리 중사는 옆에가 바로 누웠는데 목침인줄 알았는데 목침. 에 목침인줄 알았는데 후퇴를 하면서 돈 뭉치를 한나 주서갔고 온 거에요. 에 그런데 그것을 알면 회수를 하잖아요. 인자 우게 군인들이. 상사들이 회수를 하니까. 그놈을 옛날에 배낭이란 것이 있어요 메고 다니는 배낭. 그래갔고 수통차고 다니는 통 조그만한 것에가 돈이 지금으로 말하면 뭐 오만원권으로 하면은 아마 뭐 한 천만원쯤 그렇게 될꺼에요. 그렇게 된 놈을 벼게를 하고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갔고 내가 인자 자기는 가 가덜 못하니까 아래층에 1층에 가면은 인자 지금으로 말하면 슈퍼같은 것이 있어요. 뭐 파는 점포에. 거기를 댕기면서 뭘 사다주라면서 거기서 돈을 빼 줘. 그래서 아니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인자 물어 보니까. 후퇴하면서 더 많이 있었는데 그거 다 갖고 오면 총 맞아 죽겄고. 일부 빼갖고 담아 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돈도 써보고. 거기서 에 한 몇 개월 있다가 다시 저희들이 완쾌가 되어서 20연대 출신 군번이 530 전부 나오라고 글더라고요. 왜 나오라고 그러냐고 그러면 530 출신이 전부 전남 출신인데 광주를 진입을 할 터이니까 진격을 할터이니까 나온나. 그래서 530 군번을 가진 사람은 전부 나온나 이야기여 그래서 인자 530이라 저도 기죠. 그래 같이 와갔고 그때 퇴원허기 에 퇴원을 해갖고 저희들이 광주에 오니까 까만 미국 미군들이 와서 미리 점령을 하고 그 사람들 다 쫓겨 나가 불고 그래서 서석국민학교에 광주에 있는 서석국민학교에 연대본부를 설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내가 편입이 된 것이 어디가 돼 있냐 그러면 20연대 작전과에 편입이 되었어요. 그래갔고 제가 인자 그 암호를 매일 저녁 받아 오고 그러는데. 그 암호 때문에도 한번 기적적으로 좀 어려움이 있었는 것이 경찰하고 부딪치면 암호를 얘기를 해야되요. 근디 경찰국에서 오는 경찰 그 뭐이냐 암호 갖다가 전달해 주는 그 연락관이라고 그러지요. 그 당시. 그 당시 경위였습니다. 경위. 그 그분한테다가 인자 제가 그 암호를 알려줘. 그런데 암호를 오늘 저녁에 해 줄 놈을 미리 댕겨갖고 해 줘 분께 우리 것 하고 안 맞아요. 에 군인들하고. 그래갔고 한 세 군데선가 충돌이 있어 갔고 복잡했어요. 인자 요고이. 그래서 인자 갑자기 밤에 바꿔주고 인자 그 저도 인자 그렇게 처벌을 받아야 할 사항이죠 만약에 그것이 그 당시만 했어도 참 보안법에 그거이 알았다든지 그러면은 상당히 문제가 되었을 것인데 별 문제없이 그 암호 전달을 잘못해갔고 경찰하고 군인하고 인자 계엄군이죠 저희들은. 계엄군. 인자 그 크게 마찰없이 그대로 진행을 하다가 다시 저희들은 인자 또 일선으로 나갔지요. 에. (어디로 갔습니까?) 에 그 당시 어디로 갔느냐하면은 강원도 건봉사 쪽으로 갔어요. 에 편입을 인자. 그래가지고 그래가지고 인자 그러고 댕기고 그러니까 1957년 7월 27일인가 휴전이 되었잖아요. (53년) 52년? 휴전이 에 휴전된 것이 천구백 맞다맞다 53년인가? (예) 그러지요? (7월에) 예예 53년 그 무렵에 휴전이 되어서 저희들이 인자 얼마 안있다가 야 5년이상 군복무한 사람 거 제대하고 싶은 사람 순차적으로 내 보냈지요. 에 그래서 그 순차에 맞춰서 저희들이 그 제대를 한 겁니다. 에 그런께 그래가지고 제 제대해 가지고 아까 말씀 드린대로 참 와서 할 일 없고 그래서 예 제가 그렇게 얘기 했습니다. (훈장은 받지 않았습니까?) 에 1951년도에 화랑 은성훈장을 받고요. 화랑은송. (어떤 목 어떤 것 때문에 받았습니까?) 이 전쟁 참선 참전 때문에. 참전을 해서 저희들이 거 총도 맞고 그랬지요. 1951년도에 그리고나서 그래서 훈장 받고 그 이듬해에 화랑 에 무성훈장도 받고 그래서 훈장을 두 개 받았습니다. (다행입니다 훈장이라도. 지금은 뭐 발이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뭐 괜찮습니다. 암이상도 없고. 흉터도 완전히 가버렸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예 (잘 들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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