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9_FOT_20160713_CSE_JIS_0004
    조사장소 :
    보성군 조성면 조성면사무소
    조사일 :
    2016. 7. 13 (수)
    제보자 :
    정인석, 87, 남, 고졸, 토박이
    조사자 :
    최성은
    구현상황
    보성 조성경로당에 들러 경로당을 날마다 출입하시는 정인석 어르신을 만나 경로당에서 녹음을 했다. 정인석 님은 조성면장을 15년간 역임하시면서 조성면 발전에 노력하신 분이다. 구술 도중 손님이 문을 여는 바람에 중단했다.
    줄거리
    정인석 님은 1949년 4월 27일 육군 보병 제20연대로 입대헀다. 6.25 직전에 목포교도소 죄수 탈옥사건이 발생하여 6개월간의 훈련중이었지만 죄수 생포작전에 투입되어 목포 앞바다 섬 마을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6.25가 터지자 6월 이십칠팔일경에 순천에서 기차로 경기도 문산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중공군이 배치되어 시체를 넘고 넘어 내려오는 인해전술로 남하하자 문산지구 전투에서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용
    (군대 얘기 좀 한번 얘기해 주십시오) 예예. (6.25때 참전을 하셨는데) 예 예. 제가 1949년 4월 27일날 입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입대해서 제가 그 당시 육군 보병 제20연대가 보병 제20연대가 광주에 지금 말하는 상무대인가 거가 위치돼 있었습니다. 20연대가. 그런데 거기서 훈련 중에 6.25사변이 났지요. 그랬는데 훈련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그 앞에 목포에서 탈옥 사건이 있었습니다. 죄수들. 그 탈옥 사건을 그 죄수들을 다시 인자 전부 나간 놈을 잡아 들여야 되기 때문에. 저희들이 6개월 복무를 했을 거에요. 그래갔고 총을 그때 처음으로 M1 총을 만졌는데 이 실탄 장치를 하는 사람이 머리가 좀 좋은 사람들은 하고 머리가 나쁜 사람은 총알 열지도 몰라요. 근디 총만 메고 가갔고 그 당시 목포 바닷가의 섬 마을에 전부 밤에 주둔하고 있다가 경계를 하고 있다가 걔들이 배를 타고 들어 온다든지 그러면 그놈 잡아가지고 그 당시만 해도 계엄령을 그 당시에 선포했는지 몰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묶어놓고 사살을 시키고 그런 것을 저희들이 보고 그 후에 돌아와서 6.25 사변이 났는데 6.25 사변 때는 저희들이 에 광주로 해서 가잖에 순천으로해서 열차로 문산에를 갔습니다. 문산에를. 그때게가 6.25가 발생했으면 6월 칠 팔일경에나 되었을 거에요. 6월 이십 칠팔일경. 그래갔고 문산지구에 가서 전투를 했는데 아닌게아니라 그짝에 가니까 포가 떨어지고 사정없이 그 강력하게 나오는 것이 그때 중공군이 막 투입을 한 거에요. 저희들 갔을 무렵에. 근디 그 중공군 인해전술이 뭐이냐 그러면은 상대방을 완전히 그냥 거 약화시키기 위해 자기들 죽어 포탄으로 맞어서 죽은 것 총을 맞어 죽은 것도 전혀 두려워 하지 않고 꼿꼿이 걸어 올라옵니다. 계속. 옆에서 죽어도. 옆에서 죽어도. 그놈 죽은께 나는 나대로 간다. 이래갔고. 그러니까 얼마나 우리들한테다가 겁을 준겁니까? 그래서 그 인해전술에 의해서 거기서 인자 전쟁을 뭐이냐 문산지구에서 허다가 계속 후퇴를 한거에요. 인자. 저쪽에서 강력하게 나오니까. 끝. [뒤에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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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_09_FOT_20160713_CSE_JIS_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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