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1_02_FOT_20000600_LJG_HSC_001
    조사장소 :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조사일 :
    2000년 6월 ~ 2000년 6월
    제보자 :
    황성채(남, 77세)
    조사자 :
    이준곤(목포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경수(목포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1년) 목포대학교 민속분과회원 일동
    참고문헌 :
    『도서문화』제 19집 신안군 비금도 조사연구
    줄거리
    정승을 세운 이유는 멀리 있는 산에 운이 끼어서인데 근처 산보다 크기 때문에 그 산이 근 처의 산을 눌러서 정승을 세워야 젊은 사람이 안 죽고 정상적으로 많이 산다고 하였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식으로 투구를 쓴 장승을 세웠는데 6.25이후에는 본래의 장승으로 돌아 왔다.
    내용
    『이 앞에 정승은 언제 세워졌어요?』 6.25때 나는 왜정때 생긴지 알았디 왜정때 일본식으로만 했제. 6.25때 시웠어 6.25때 『왜 세웠는지 아세요?』 쩌그 있는 산이 운이 끼어서 그런디 여그 산보다 저 건 너산이 더크거든 높고 그 산이 이 산을 눌러블고 한께 정승을 여그다 세워야 젊은 사람들이 안 죽고 정상적으로 많이 살어우리 부락이 35댄디 『저 산이 커서 이쪽 산을 누르니까 정승을 세워서 그 기운 을 받게 한거예여?』 응 저 건네껏은 선왕산 그라고 여그는 큰 산 그란디 이 산제란 것이 비금 천체 산을 지사로 모신디 다 폐지해블고 내 촌하고 월포하고만 산의 지사를 모셔 그란디 그것도 젊은 사람 은 마다 한디 우리 부락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수상하고 한께 젊은 사람들 될 수 있으믄 끄꼬 사는 동안은 내가 모셔야겄다 3일 정성 해갔고 제사 모시고 내려와서 인자 장승 앞에다 또 하고 『장승을 누가 세우자고 했어요?』 우리 부락에 이전 대표 그 풍수 하신분 네가 해야 한다고 했어 『이 마을에 풍수 하신 분이 계셨어요?』 응 『그 분 인제 돌아 가셨겠죠?』 그라제. 인자 백살 넘어브렀어 시방. 『선왕산이 이 마을에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거에요?』 응 그랑께 그것이 면론인가는 몰라도 저 건 너산이 악산이고 이 섬산에서는 상당히 약해 뵈제 산이 그랑께. 『앞을 가려서요?』 응 서울대산은 돌 이 야무지고 수박처럼 야무진디 여그 산은 이렇게 양설해야꼬 하고 한께 여그 산은 야찹고 그랑께 살 기 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제 『장승 세우기 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6.25때 인자 상승을 세웠응께 거그 날짜가 있어 전부 『저 산이 막고 있어서 마을에 안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라제. 저 건네산은 높아서 엉설해 저렇고 하고 우리 산은 순하고 항게 그 악을 재하기 위해서 하고 『어떻게 안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것은 미신인디 부락에서 이 젊은 사람들이 너무 죽은께 틀림없이 앞에 산 이 저렇게 앞에 있어농께 그란다 그렇게 해가꼬 인제 풍수들이 한 일인디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고 저 것도 아니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그라제. 많이 죽었다 하제 『그럼 저 정승을 세우고 나 서는요?』 저것 세운 뒤로는 인자 그란지는 별라 모른디 그랗게 돼얐어 자랑보다도 인자 부끄러운 말 이지만은 월포가 옛날에 한 80호 있다 인자 35호 전부 도시로 나가불고 35호 된디 혼자 산 집이 인자 한 10호가 넘어 여자들하고 『그 뒤로 정말로 마을에서 젊은 사람들이 안죽고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응. 그런거 같다고 보제 『저건 세우길 잘했네요?』 응. 그란디 옛날에는 이 갓을 쓰고 한 정승인디 인 자 해방 직후라 나서 일본사람들이 투구쓴 거시기로 해놨제. -(비평)- 『장승 모양이 일본식으로 돼있 다구요?』 그라제 일본 사람 이전에 투구를 그라고 썼다고 한국사람은 이전에 갓을 쓰고 댕기고 그란 디 도초 저 고란하고 보태골하고는 그렇게 장승을 씌운디 내 가본지 오래돼야꼬 시방 어떻게 폐치해브 렀는 모양이여 요새 젊은 사람들은 미신을 안 지키고 그라지만은 결국 사람이란 것이 가서 일본가나 외국을 가봤지만은 교회 믿는 사람은 전부 절로 가서 그란디 일본이나 한국이나 동양 3국은 불교를 옛 날에 많이 믿었어 그란디 인자 느닷없이 교회가 인자 요것이 생겨갖고 전부 고리 많이 딸려서 간디 아 직도 불교가 이 동양3국은 본교라 봐야써. 『저 정승이 6.25때 세워졌는데 왜 일본식 투구로 돼 있어 요?』 일본서 그 대동아 전쟁때 우리 회관이라고 저그 와서 살다갔거든 『일본 사람들이요?』 응 군 인들이 그란디 전부다 투구를 쓰고 댕긴께 그것을 본따라서 했제 일본사람들이 세계에서 영리하다고 보제 그란디 그 사람들이 불교를 여간 진실로 대동아 전쟁까지 불교를 믿었어 다 자빠져 감시랑도 이 대한미에서 전부 이 독을 해줬어 독을 불교 독 거그다 역사까지 해서 그란디 내가 왜정때 쩌그 내포라 고 저그 끝인가 우리 형제간 집이 있어 밥에 옛날에는 이 전골 같은 것을 남자들이 많이 했거든 일 칠 라믄 아들 딸 여울라믄 이 전 같은 것을 『부침개요?』 응. 손님 대접할라고 남자들이 많이 했어. 그래 가꼬 인자 밤에 밤중에 인자 젊은 사람이라는 것은 술도 안먹구 그란디 위마 고 위게 산에서 아침에 보믄 근디 사람 거른제가 있고 거른제 우그로 또 있거든 그랑께 큰 거시기가 내 앞으로 지내가드마는 왐마 집에 와서 나는 죽네 하고 막 울려서 궁글고 막 항께는 동네 어르신들이 단독제비다 뭐 빈 술을 달아 넣더니 칼을 갖고 와서 막 소금을 땡김시롱 막 경을 읽고 막 우짜고 한께 차츰차츰 이 귀신 붙은 사람은 눈이 빨개져 『그럼 할아버지한테 귀신이 붙은거에요?』 그랬제. 그란디 이 놈들이 장승이 시워 그랑께 귀신을 만나서 그렇게 연금을 봤어도 시방 밤에만 저 눈만 보이믄 젊은 사람 저 면사무소도 여 그 혼자 넘어 다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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