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2_12_MPN_20160801_CGJ_0001
    조사장소 :
    고흥군 과역면 신곡리 구곡마을 마을회관 앞 정자
    조사일 :
    2016-08-01
    제보자 :
    최공준(남, 76세, 1941년생)
    조사자 :
    박종익, 신다슬
    줄거리
    제보자가 40여 년 전부터 유자나무를 심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유자농사를 시작했다고 하며, 시제 때에 유자를 제물로 유자를 올린다. 그 외 다수의 소농가가 밭떼기로 거래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조사자 : 유자농사는 많이 지으시나요?) 아니요, 얼마 안 돼요. 한 백여 주. 에, 그러니까 지금 저것이 나무의 심은 제가 한 사십 년 될겨. (조사자 : 그러면 비교적 오래 되었네요. 80년대부터 시작하셨나요?) 에에, 그르게 되겠죠. (조사자 : 여기가 유자농사를 짓는데 기후가 잘 맞나 봐요?) 예, 여가 맞는 편이여. 우리 고흥에가 유자가 맞는 편이라고 합니다. 근디 저는 여가, 여 마을에서 지금 이제 저 혼자 짓고 있고. 쩌 저기 도야마을이라고 거 가게 되게 되면, 많이 짓는데. 우리 고흥군에서 유자가 많이 생산되는 곳은 풍양, 바로 풍양면. (조사자 : 도야도 과역면이죠?) 에에, 과역입니다. 거그서도 거, 그 마을에는 거즈반(저의 절반 가까이) 마을이, 주민들이 유자 농사를 많이 짓죠. (조사자 : 처음에 유자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 인자, 그때 당시 유자, 옛말에 ‘유자나무 한나 하게 되게 되면 대학교까지 보낸다.’ 는 말이 있었어요. 그런 설들이 있어가지고. 그 유자나무를 인자 많이. 그때 당시 풍양에서 해가지고 했었는데, 도야 같은 데도 그런 마을에서도 인제 상당히 했습니다. 그랬는데 저는 인자 도야 사람들이 유자 여럿을 따가지고 팔 때에, 저는 그때 당시 심었어요. 도야 사람들보다는 늦죠. 그르니까 지금 한 사십 년은 못 되고, 한 삼십 사오 년은 됐을 겁니다. 저가 심은 지가. (조사자 : 고흥에 유자가 들어온 지 오래됐나요?) 예, 오래 오래 됐죠. 에에, 글쎄요. 그건 인제 그것은, 저가 인자 여긴 그릏게 많이 뭐냐. 도야 같은 마을에 그릏게 집단적으로 그케 많이 심은 제는, 한 사오십 년 아마도 되지 않았냐, 생각이 듭니다. (조사자 : 그게 어디서 들어온 거예요?) 예, 그러니까 그 전에는 옛날에 가끔 가다가 쩌어기 각 마을에 한 주 쓱(씩)이 있그든요. 더러 한 주 쓱(씩)이 있어 가지고, 우리가 시제를 모시게 되그든. 되면은 유자, 유자를 언제나 그 제상(祭床)에다가 안올려놓습니까. 유자향. 네, 시제를 모시게 되그든. 되면 언제나 유자는 안 빶습니다(빠진다). 그런디 고흥에가 그때 당시 유자가, 그때 있으면 풍양에서 제일 먼저 와 있었나? 그런 자세한 역사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풍양 가서 물어보게 되면 잘 알 줄로 믿습니다. (조사자 : 시제라고 하면 봄에 한식 전후나 가을 시월 달에 산소 가서 지내는 제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가을 음력 시월 달에 우리는 주로. (조사자 : 방안 제사에는 안 올라가는데 유자를 시제에 올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그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는가 모르겠습니다. 유자향이. 과일 통째로 그렇게 올려놓는. 한 그릇에 네 개. 세 개 밑에 깔고 위에 하나 낳고. 네 개 정도 되죠. (조사자 : 유자를 수확하면 수입은 어느 정도 돼요?) 그러니까 제대로 수확이 되게 되면은, 한 주에 보통 평균해서 저~ 십만 원 썩은(씩은). 한 천만 원 정도 되게 되면, 그때 당시에는 수확이 잘됐다 하는디. 고것이 항상 고정적으로, 그런 입장이 안 돼요. 보통 잘 됐을 때. 고리 되았고. 있을 때 그 정도는 받죠. 근디 그것은 저가 하는 것은 저가 손포(일할 사람)가 없어가지고. 손. 일꾼들이 없어가지고, 이 일종 다 혼자, 다 혼자서 따서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만 딱 지(어)놓고 팔아요. 나무채(나무 그대로) 팔아요. 밭째 팔게 되게 되면은 보통 잘되었다 하면, 한 나무에 십만 원 썩을 번다고 합니다. 넘길 때, 나가 인제 전부 다 유자를. 이제 전부 다 키와 가지고 상인들한테, 인제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그분들이 살라고 합니다. 근데 인부들이 사가지고 자기들은 막 와서 하기 때문에…. (조사자 : 인부를 사서 따면 중도매인에게 넘기는 것보단 많이 받으시겠어요?) 항, 그르죠. 더 받죠. 그르기 때문에 인제 뭐냐? 주로 파는디. 한 백여 주 정도 되는디. 인제 잘 받아야 천만 원 받을 때가 백 주에 한 두어 번 있었고, 그 외에는 칠백, 팔백, 육백, 또 때로는 흉작이 될 때는 삼백 하게 되게 되면은. 언능(얼른) 거름 값이야 뭐, 거서 친환경, 거서 자재비야, 이거저거 지(제)하게 되면은 없을 때가 있어요. (조사자 : 농사가 참 힘든 일이에요.) 예, 그르죠. 더군다나 가시가, 까시(가시)가 있어가지고 전부다 그거이 짤라야 되고. (조사자 : 그러면 수확할 때 나무가 훼손되진 않았어요?) 자, 그것을 알고 그냥 그릏게 저기 하죠. 긍게 자기들도 크게 그 나무를 기냥 막 짤라서 절개하거나 그런 것은 없고 훑어 내려불여요. 그래가지고 자기 집이 공장이 있는 분네들은 이놈을 한나 한나 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갈쾡이로 가지고 인자 [나무를 갈퀴로 훑어 내리는 시늉을 하며] 훑어 내려불여요. 그런디 그 나무가 찢어지고, 더러 그런 나무가 더러 있죠. 그래도 거 상관 읎어요. 인자 그런 거 하게 되게 되면은 또, 어떤 사람들은 판로를 해요. 그러믄 한나 한나를 한 개 한 개를 전부다 가위로 짤라요. 짤라가지고 이것을 인자 서구리(소쿠리)나 상자에다 담아가지고 서울, 여그들은 각처로 부친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도 있고요. (조사자 : 개인이 직접 하는 거네요?) 예, 개인이 직접. 그런 사람들도 인부를 사가지고 와서 그릏게 해요. 그르니께 인부 값 주고 자기도 이득을 마진(중간 이윤) 조끔 먹어야 하고. (조사자 : 인부한테 하루 일당은 얼마를 줘요?) 지금 현재 해년마다 다 달라요. 인부를 사게 되게 되면은 팔만원도 주고. 인자 그러니까 아침 일곱 시부터서, 지금 같으게 되면 일곱 시부터서 저녁, 하여튼 에, 여섯 시까지는. 이 촌에서는 그릏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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