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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장소 :
    영광군 고창읍 월곡리 강형렬 자택
    조사일 :
    2016-09-22
    제보자 :
    강형렬, 남, 1937년생, 고창군 대산면 토박이(현재 고창읍 거주)
    조사자 :
    박경숙, 남성자, 임준석
    구현상황
    제보자는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출신으로 그 지역은 일제시대 이전 행정구역이 영광 군 대마면에 속해 있었던 곳이다. 오래전부터 대마면 고성과 고성산 등 인근주변 마 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 산악회 활동을 하여 특히 고성산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줄거리

    영광 대마면 원흥리와 장성군 삼계면 사차리를 연결하는 ‘깃재’는 영광의 관문으로 영광읍에서 어물, 소금, 포목장을 보러 전북 고창 등 전국각지서 모여든 장사꾼들이 넘나들었다고 한다. 고산과 고성산 사이 가랫재를 중심으로는 장성 황룡을 가고, 고 창 그리고 영광 법성포로 보부상들이 왕래를 했다. 1950년대 이전 깃재 정상에는 영광과 장성군계 5m 간격을 두고 2개의 주막이 있었 다고 한다. ‘칠일시일해잔등’61으로 불렀던 이곳은 현재 시등 휴게소 일대이다. 이보부상들은 당시 시등휴게소(현재)에서 일일장을 열었다. 해안가 법성포에서는 생 선 같은 어류나 소금, 장성 황룡 내륙 쪽에서는 곡식 등을 가지고와 서로 맞바꿔 시 장이 열렸다.

     

    61 현재 시등 휴게소가 있는 곳은 ‘장등’이라 하여 ‘일해장등’, ‘시장’, ‘시장리’라고도 불렀다. 주교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장이 섰는 데, 고창군 대산면으로 옮겨졌다. 『한국지명총람 15 전남편 Ⅲ』

    내용

    이 이야기는 가랫재와 연계가 되는 것으로 보부상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장성 황 룡이 있습니다(그림참조). 그 쪽에서 가랫재를 지나서 저기 해안 법성포까지 걸쳐있어요, 요렇 게 오는데 여 거리가 결국은 지금도 그렇지만은 내륙과 이 해상과는 물류가 사람 먹고사는 것 이 다릅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내륙의 물품과 해상의 물품을 교류하는 그 때는 소금이 며, 생선이며 이런 말린거 해산물하고 이쪽 내륙의 곡식하고 해안 쪽은 곡식이 귀하고, 내륙은 소금이 없는 겁니다. 지금은 자동차로 쫙 갖다 주지만은, 아 그 때는 사람 등짐 지고 아 저 마차로 끌고 와야 했죠. 긍게 지금 차만 그렇게 해서 소금을 나르잖습니까? 그런데 그 등짐 보따리 진 보부상들 이 쭉 거기를 왕래하면서 주막집이 있었어요 가랫재 밑에가. 그 터는 지금 논을 쳐가지고 있는 데, 거가 주막이 있었어요. 그곳에 사신 분들에 의하면은 6·25 전까진 있었대요(주막이). 왜그 러냐하면 보부상 다녔던 길에서 쭉 가다 보면은 여기 ‘시등’이란 데가 있습니다. 시장 시市자, 오 를 등登 거기가 전라남도 대마면 홍교리 로 들어갑니다.

     


    시등휴게소 

     

    거기 시등이 지금은 거 휴게소로 되 어있는데, 시등휴게소요. 그 먼 시등(시등 이름이)이라고일곱 칠일만 장이 섰어요. 그래서 ‘칠일시 일회잔등’이라고 불렀어요 옛날에. 긍게 칠일만 장을 슨다고. ‘칠일 시 일해장등’ 지금은 5일간 (장이)스지요? 그때는 1일(하루)만 섰어요. 그리고 일회 장터, 우리 한국말로 ‘일회장터’입니다. 그 말은 ‘하루 만에 장을 선다.’ 그 뜻인겨. 그래서 ‘칠일시 일회잔등’ 그랬어. 우리도 어려서 ‘일회잔등’이라 들었어요. 그런데 그 형태가 상당히 컸었어요 (시)장이. 제가 6·25를 13살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는데 그때까지도 거기 주막집이 있었고 보부상들이 거기서 먹고 자고 술집에서 자고 장을 보고 인제 가랫재로 돌면서 황룡을 가고 법성을 가고 했어요 가랫재를. 그 때도 법성포의 마른생선이나 또 그것허고 소금하고 그땐 소금이 귀할 땝 니다 금보다 귀하고. 그것하고 인자 보따리다 짊어지고 가서, 황룡 가서는 비싸게 팔고 황룡에서는 인자 먹을 식량, 잡곡이랄지 쌀이랄지 법성보단 비싸죠 귀하고. 인제 고놈을 반대로 지고 고리 갑니다. 왕복으로 장사하는 거죠 부상들이. 아마 제가 유 추하기는 적어도 이조 말에는 계속 했을 것이다 이 말이죠. 2년 그 몇 십년 한 게 아니고, 적어도 그 보부상 길은 몇 백년에 걸쳐서 했을 테죠. 지금 23번 국도에 대산에서 영광, 고창에서 대산, 고창에서 영광, 이렇게 되어 있죠. 교통로가.

     

    칠일시 일해장등 노선도(옛 보부상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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