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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장소 :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 김영호 자택
    조사일 :
    2016-09-11
    제보자 :
    김영호, 남, 70대 초반, 타지생활 후 고향정착
    조사자 :
    박경숙, 남성자, 임준석
    구현상황
    사전연락 후 1차 조사를 위해 갔지만 제보자의 급한 사정으로 1차 조사는 취소되고 두 번째 만남으로 2차면담이 이루어졌다. 동네 이장 업무를 보는 관계로 마을에 관 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道光十九年祈雨年’의 년호가 어째서 쓰였는지 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줄거리

    영광군 대마면 평금마을은 원래 12당산이 있었는데, 9당산이 있을 때까지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평금마을은 과거에 당산제를 지낸 후 고창군 성송면과 다툼이 치열 했다고 한다. 당산제가 끝난 후 연례적 행사로 치루었다고 하며 평소에는 서로가 우 호적 관계였다.55 이후 고창 성송면에서 당산을 폐지한 후에는 다툼이 없었다고 한 다. 평금마을 넙적 바위는 할머니 당산으로 그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던 것으로 보아 제보자가 말한 것처럼 원래는 소수 족(그때당시 청나라사람)들의 기우제단으로 사 용되었던 것이 어느 시기에 평금마을 할머니 당산으로 지내는 제단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평금마을에는 일명 ‘넙적 바위’라고 부르는 12당산 중 하나인 할머니 당산이 있다. 그런데 넙적 바위 위에 신기하게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글이 새겨져 있 다. ‘道光十九年祈雨年’ ‘도광19년기우년’이라는 글은 청나라 연호로 도광 1839년 을 뜻한다. 이 시기 청나라는 아편전쟁 등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그런데 대마면 평 금마을에 어떤 이유로 바위에 청나라 연호가 쓰여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 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단으로 쓰여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현재 ‘넙적 바위’ 할머니 당산은 원래는 마을 한 가운데 있었다가 집이 들어서면서 집 안, 하우스 옆에 있다. ‘道光十九年祈雨年’ 8자는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다.

     

    55 『향맥』 제 6호, 사단법인 영광향토문화연구회, 문원각, 1993

    내용

    전에는 12당산이 있었다는디 우리가 지낼 때는 아홉 당산만 있었어요. 아무튼 세 당산이 없어지고 아홉 당산만 지냈거든요? 아홉 당산만 당산지낼 때는 생계복덕이라고 가장 운수 좋 은 사람이(지냈죠). 그때는 젊을 때인데요. 1980년대 그때 (당산제를) 하면서 철륭 할아버지 당산은 새벽 4시경 때부터 지내면서 동 네에 있는 아홉 당산한테 인사 드리는거죠. 그리고 아침에는 할머니 당산에 제사를 지냈어요. 그리고 제가 (당산제)를 하면서 상을 다 닦고 음식을 장만하거든요? 그 할머니 당산 넙적 바 위에서 마지막으로 지내고 인자 동네사람들하고 먹고 놀았죠. 오늘 아침에도 제가 확인을 해 봤어요. (그 바위에 뭐라고 쓰였는지) 당산제를 지냈던 할 머니 당산 넙적 바위에 쓰여 있는 글귀. ‘도광19년기우년’이라고 써 있어. 지금으로 하면 177년 전이여. ‘도광 19년 기우년’ 년대는 정확히 저도 그걸 모르니까 저기 그 노트다 기록을 해놨다 가 지인 박사님한테 물어봤어요. 삼국시대 ‘도광’이라는 왕은 없는디, 어느 나라 왕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하니까 중국 왕이라하더라고요. 중국의 후손이 여그 와서 살았다는거여 그 증거여. 일본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기 나라 국호를 쓴단 말입니다. ‘도광’ 길 도道자 빛날 광光자, 왕 연대가 있죠. 지금 현재 거기 그 대로 있어요. 그래서 그런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기록을 해놓았거든요 그래안했음 모르지. 그냥 흘러 지나가는거지. 마을 가운데 나무도 없이 돌하고 흙만 쌓아졌어. 그걸 왜 무덤처럼 쌓아졌을까. 근데 당산제를 지낼 때면 거기가 해 마다 좋은 황토(흙을) 조금씩 부어 일주일 채워갖고. 아홉 당산제를 지냈는지 몰라도 내가 추측해보는건데 소수민족들이 자기 저기를 신격화하는거에요.

     


    ‘道光十九年祈雨年’이라고 새겨진 넙적 바위 할머니 당산 

     

    예를 들면 최씨, 김씨, 등 그런 씨족들이. 나름대로 자기 부족들이 제사를 지내는거에 요. 그랬던 것이 유래적으로 당산이된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통합되어버리니까 그날 한 날 돌아다니면서 내가 이제 추측컨대 그렇단 거지. 거기는 중국 사람이 지내는 거에요 국호를 ‘도광’이라 썼으니까. 근데 다른 데는 흔적이 없으니까 소수민족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았겠는가. 그나마 있었 던 아홉 당산나무는 지금 가운데 하나는 없어져부렀네 여덟개는 지금 남아있죠. 우리 집 옆 장독대 돌로 쌓아진데가 원래 있었었는데 없어져서 지금 이렇게 됐어요. 거기에 있었던 밤나 무 고목 하나도 없어져버렸고.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 정확한 연대는 모르고 한 20년 전까지는 지냈을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살다가 서울에 가서 몇 십년은 살았거든요. 지금은 고향 와서 사는 거에요. 지 금은 전혀 안해요 1980년대에 지낼 때는 전남대학교에서 취재도 오고 할만큼 그때 당산제 구 실을 엄청나게 세게 쳤거든요 굿도 세게 치고. 마을이 크다보니까 한번 취재해 간걸로 알아 요. 근데 지금은 지낼 사람이 없어서 운영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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