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8_10_FOT_20160901_PKS_CGS_0215
    2-18_10_FOT_20160901_PKS_CGS_0215
    3-18_10_FOT_20160901_PKS_CGS_0215
    조사장소 :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카페
    조사일 :
    2016- 09-01
    제보자 :
    최광석, 남, 1934년생, 토박이
    조사자 :
    박경숙, 남성자, 임준석
    구현상황
    1차 조사 이후 제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성에서 서로를 부르는 별명은 아주 유 명한데, 이번 조사에서 별명에 관한 것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이번 기회 가 아니면 말해 줄 사람도 없이 별명에 관한 표현들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고 하여 2차 조사에서는 주로 별명위주로 면담이 진행되었다.
    줄거리

    법성에는 장씨라는 사람이 선대부터 받은 교지敎旨를 갖고 있었다. 당시 법성에는 조 창이 있었고 세곡운반선을 관리감독을 했던 ‘파총把摠’36을 두었다. 당시 장씨의 3대 선대先代는 무관직을 하셨고 그 무렵 임금으로부터 교지를 받았다고 한다. 법성에는 1945년 해방 후 각질 전염병이 돌았는데 법성포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36 조선후기 1779년(정조 3) 훈련도감에 협연파총(挾輦把摠) 1인이 증치되어 지방사무를 두었는데 총리영·관리영·진무영 등에도 각각 12인, 6인, 10인의 파총이 있었다. 대부분 인근 고을의 수령이나 전함관(前銜官)으로써 임명하였다. 제보자가 말한 ‘장파초’ 는 ‘파총’이 ‘파초’로 변화되어 불러지게 된 것 같다.

    내용
    세곡 운반선 총 책임자를 에… ‘파초(파총)’라고 칭호를 붙여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성 에 장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디, 그 선대가 세곡 운반선 책임자를 했든가봐요. 그래서 ‘장파초’라 고 했겄죠잉? 그때 그 3대선대가 임금님이 도장 찍은 교지를 받았는디, 그 교지를 ‘하루거리’(라 합니다) 라고 해요. 병을 앓을 때는 그 교지를 얼굴에다 싸놓으면은 ‘하루거리’가 놀래가지고 그 병이 나섰다(낳았다)는 이런 설로써, 이게 동네(에서) 그것이 유행으로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나았으니까 그것이 유행처럼 돌아다녔죠. 그‥ 교지를 제가 봤는데 장씨 교지의 집안 삼대 손은 지금 고인이 되았습니다. 예‥ 그러니까 1945년에 해방 직후, 1946년 그때 그 교지가 ‘하루거리’ 병 떨어친다고 유행으로 말이 돌아다녔죠. 근데 같은 (친척 되는) 장씨가 집 안 자랑을 허기 위해서 그 교지를 빌려요. 그리고 빌려 주었다는 거까지만 알고 회수 되았다 는 거까지는 지금 모르고 있어요. 장00이라는 친구가 저하고 갑술생인데 법성고등학교 3회 졸업생입니다. 그때 연대가 한 1968년에서 1689년이나 될 겁니다. 그때 장00는 내무부에 근무하다가 에‥ 영광 군수로 임명 받았죠. 그런데 군수 영광군수 재임당시 자기가 장씨기 때문에 에‥ 임금님 교지 받았다는 자 기 조상을 자랑, 과시하기 위해서 빌려갔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그걸 빌려갔다는 얘기만 들 었지 회수했다는 이야기는 저는 못 들었습니다.
    저작권
    상업적 사용 금지
    2-18_10_FOT_20160902_PKS_CGS_0215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은 로그인 후 사용이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