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10_MPN_20161124_JMK_YHD_001
    조사장소 :
    해남군 옥천면 영춘1리 경로당
    조사일 :
    2016-11-24
    제보자 :
    양회도(남 69세)
    조사자 :
    장민경
    줄거리
    518 광주사태가 벌어진 과정에서 여러모로 힘들게 겪어야 했던 상황들을 이야기로 풀어 놓은 글
    내용
    저어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광주사태 때 얘기를 좀 할랍니다. 그 때는 5·18 사태를 뭐신지도 모르고, 다방을 하고 있는데,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막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집에 와서 어 다방에 와서 물을 좀 달라고 그래서, 인자 물은 준디 바로 우리집 다방 앞이 파출손디, 거기가서 물을 먹을라하니까 파출소 소장이 아 순경 경찰들이 막 내빼블더라구요. 거 “왜그 왜 왜 이러냐?” 그랬드니, 나도 모르고 인자 물을 전부 인자 그 그분들을 한 30명 됐나? 우리 들어오신 분들은 물 한잔 씩도 주고 그랬는디, 광주가 지금 상당히, 에... 그 때는 노태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 모르는 상탠데, 지금 김대중씨를 잡어서 죽일라고, 지금 국가가 아주 시끄럽고, 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렇게 지금 군인들이 한테 봉변을 당했다. 그런디 젊은 사람들이 이러고 있어선 안되서 한께, 전체적으로, 어, 국민들이 나서서 이걸 막을라먼은, 숫자가 많~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돼서 광주로 올라와서 날짜를 받아서 그렇게 가는 것이 좋것다. 인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 소리가 뭔 소리 뭔 소린지를 처음에는 다 모르고, 지금 하는 얘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따. 뭔뭔 군인들이 와서, 인자 심하게 말하믄은 마악 군인들이 여자들 막 에 옷을 다 배끼고, 막 유방을 막 거 총으로 막 이릏게 칼뱅이로 막 이릏게 내려찍고,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고,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그라믄 어띃게 하믄 돼냐?” 그런께   “많은 사람들을 더 이릏게 해서 해달라”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라고 있는디, 또 인제 여그 그 때 자 감태가 여기썻어. 여 감태랑 근한도 나한테 왔더라구요. (조사자: 감태?) 김광태라고 (청중: 여그선 안 살아요.) 지금 여그선 안살은디 그 때는 인자 여가 있었는디, 그라고 정철우라고, 인자 그 분하고 매스 한 시대면이 왔드라구요. 와서 “형님 어띃게 하면 되겄소” 인자 그렇게 얘기를 “나는 잘 모르는 관계로 어띃게 된 내용을 잘 모른다.” 자 이렇게 하니까, 차를 타고 이릏게 돌아다니면서 홍보를 하자 그랑께 “어떻게 하면 된다냐?” 그랬더니 지금 영동 근까 북도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북도가 거그를 가믄은 광주고속 사차는 전부 거긋다 갖다 피신해놔서, “거그만 가믄은 차는 얼마든지 있따.”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만 한다 하더라도 내가 서른 한살 먹었나? 그래서 인자 그럼 가보자 그랬갖고는 처음에는 열이 인자 거기를 가서 보니까, 진짜 광주고속 사차가 한 30대 있더라구요. 차가 자 인자 차로가 그 때 인자 버스기사를 할 줄 알고, 그래서 “형님, 어뜬놈 차 갖고갔으면 쓰겄쏘?” 그래서는 나는 잘 모르고 “기왕이 갖고갈라면 다 새차여, 암놈이라도 갖고가자.” 그라고 인자 그놈을 갖고 여그를 나왔어요. 연들 나와서 인자 요롷게 요쪽으로 산공쪽으로 해남으로 넘어가서, 해남서 타라가니까 해남도 지금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먼저 가라고 인자 그래. 그래서는, 그리 해서 인자 사기를 가니까, 경찰서를 가니까 거기서 하는 말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저쪽에서 군인들을 만나믄은 죽어불지. 우리도 거 대비를 해야 될 것 아니냐” 인자 이렇게 얘기를 했어. 그라믄 “어떻게 하냐?” 그래서 그 때는 ‘타격대’라고 이릏게 면단위, 우리 옥천면에도 있었거든요. 인자 칼빙하고 총알하고 엄청 있거든요. 그걸 내가 우암마로 그 문을 때려붓고, 총을 스무동을 거서 내려 내서, 인자 그 그 거 타격대에서 그라고 총알하고 싣고, 거그서 인자 저어기 살맹까지 간께, 냉랭해갖고 뭐신지를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이리 넘어와갖고 여 강진을 가니까, 사람 한 사람이 타요. 인자 인자 우리가 한 30명 탔는디, 28명 탔구나, 그랬는데 손을 들어 그니까 태워서 보니까, 그 사람이 목사였어요. 그 분이. 게 광주 사투리를 자아아알 알고 계시더라구요. 그 분이. 인자 그 분이 나한테 설명을 하는것이여. 광지, 광주, 실태가 이렇게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니까, 지금 사람이 막 죽어가고, 실지 인자 그 사람들 얘기봐도, 그 목사 목사님이란 말도 안하고, 양선생님한테만 말씀 드린디, 저는 목산데 지금 광주서 바로 내려와서, 학생들인지 알고 이 차를 탔는데, 그것은 아니고, 너무 다 동똘어진 차를 탔다고 그래 “우리는 너무 잘 모르지 않느냐 그라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라.” 그라서 인자 그 분이 “전두환이 때려잡자. 전두환이 물러나라.” 하고 인자 그 사람이 구호를 거서 갈치는 거여. 차에서 나한테 게서 인자 안도를 가는디, 안도 거 다루를 가니까, 사람들이 엄~청 있드라고. 뭐단 사람들이냐 그랑께, 우리가 인자 광주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광주 실태가 이릏게 지금 해갖고 있어선 내려왔다. 그랑께는 그 태극기 크으으나큰 그랑께 그때만해도 민주당인가 그 당에서 당사무실에서 엄청 큰 태극기를 잡고 여사시가 나오더니 따악 잡더니 “자, 안도로 그라믄 경찰서 디로 들어가서 군청 앞에다 들어갑시다. 게 사람이 도움이 되야될 것 아니냐” 그란디 거그를 걸어들어간 사이 한 30분에 인자 그 때 말로 대퉁치 와도 이릏게 사람이 모일 수 없는 3일분 동안에 오도가도 못하게, 딱 이 사람이 모여부렀어. 인자 그래가지고 거그서 인자 거그서 갇힌거지. 감태는 인자 내가 네가 올라가서, 우리는 시골에서 산께 얼굴이 다 검은디 감태는 얼굴이 하애. 일을 안해먹어 논께 (조사자: 감태요?) 김광태 거 적은사람. 게서 인자 그 사람을 해갖고 거 목사를가 나한테 갈치대끼, 내가 인제 감태를 거 차에서 갈치는 것이여. 지금 광주가 지금 이릏게 되고 막 여자고 애기도 노인도 누구도 없이 전부 짓밟히고 이릏게 해가지고 광주가 지금 쑥대밭이 되아브러갖고, 앞으로 이 상태로 가믄은 보름도 못가서 전라도 사람들은 다 죽게 되았다. 인자 이릏게 얘기를 시켰어 인자 그랑께 감태가 하~얀 와이셔츠 입고, 그 단상은 그 사람들이 헤진대 올라가서 막 구호를 함시러, 인자 이릏게 해서 우리가 전라도 사람들은 다 죽게 되았다. 이릏게 하니까 은~마나 사람이 모여갖고, 오고 갈 수가 없었어. 그런께 그 목사가 하는 말이 오늘이 고빈데, 오늘은 그 사람이 그것까지 알아부렀어. 내가 생각 해보니까 지금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살포를 한다. 게서 양선생님 빠알리 여기를 빠져 나가야 됩니다. 그라고 나도 강진까지 좀 데려간디 “지금부터서는 차 불을 끄고 소등만 끄고 조용하니 가야돼 까딱하믄 다 죽습니다.” 인제 이릏게 얘기를 하더라구 그래서 와우 그 소리 들은께 겁나대. “조용히 해라. 불을 끄고 조용히 해라.” 그래갖고는 강진은 그 냥반은 내려다 주고 나온지 거그서 군청 뒤에서 그 다루 암벽 들어간 다루 있는데로 나올라 사람이 거까지 차부렀어. 시간 반이 걸려부렀어. 비켜줘야 차가 나오제. 그 사람들이 인자 이분들 광주로 올라가야된께. 막 앞에서 해도 사람이 사람땜세 나갈 수가 없어, 한시간 반 걸려갖고 여덟시에 여 강진땅 델다주고 여그로 오니까, 우설지에서 그 때 사람 죽었잖아. 그 때 사람이 죽었어. 총으로 싸가지고. 그래가지고 “지금부터는 조용히해라. 여그서는 이제는 다 죽는다, 까딱하믄 군인들한테.”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은 갈리고 차는 저어기 한 4km(사키로)나 떨어진데 갖다 나두고, 다시 나와 가지고 어 인자 우리가 헤어졌는디, 거그서 인자 언능 말해서 여그서 원이씨하고 신원이씨하고 이승림씨가 “세상에 젊은 사람들이 이라고 있나, 나라도 앞장을 설것인께, 내일은 영암으로 가서 광주로 올라가자.” 인자 이릏게 얘기를 그 냥반들이 하시더라구 그래서는 “자 그라믄 많이 가지 말고 여그서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그랑께는 포상 정당우씨는 우리차를 안탔는데 여기를 나와가지고 “자 나도 여기를 가것다” 그래가지고 36명이 차를 타고 영암을 가는 것입니다. 그 뒷날 영암을 간께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못가게 해브러 인자, 차 아주 딱 절단해브러. 더 이상은 영암 이상으로는 못 가. 그라고 욱에서는 헬기가 막 뱅뱅뱅뱅 돌고 그랬써 “아야 안되겄다. 우리가 철수를 하자.” 그라믄은 내려와가지고 있으니까 5일 있었을까, 한... 한 일주일 아니여. 여 경찰서 소장이 왔드라고. “아이 사장님 경찰서로 좀 갑시다. 그라 아 파출소로 좀 갑시다.” “뭔일있어요?” 그랑께는 “아이 뭔일을 잘했는가 모른디 표창을 내릴것인디 크은상을 받을 것 같다고” 서장님이 바로 지시를 했는디 에 저하고 좀 같이 가야된다고 그래 그래서 “나는 잘한 것은 없으니까 다른사람이나 표창을 주라” 그랑께는 “아 그래도 안 받드라도 거그 가서 말씀을 하셔야지 나는 그럼 힘이 없소”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해. 그랑께 거그서 인자 화장실을 가 파출소를 가갔고 화장실을 좀 다녀올란다 그랑께는 순경을 둘이를 딱 딸려 보내내 화장실을 간께 이 이상 예감이 좀 이상해. 잘 한 것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는디, 가서 보니까 경찰서에서 빨리 모시고 오라 한다고, 가니까 마산 사람이 여그 옥천 파출소로 온제가 하루 밲에 안됐어. 그 사람이 경찰서에 내려가서 딱 거 문 들어간께는 내 뒤로 따라드니 “서장님 저를 원망하지 말아주십쇼. 저는 시킨대로 한 것이지 나 옥천 나 마산서 삽니다.” 그런디 “왜 어떤 뭔 일 있어요? 5·18항정 뭔 일 있어요?” 그랑께는 인자 그때 만해도 아무 그런거 모르고, 아이 뭔뭔... 뭔일 있기는 뭔일 있다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는 자 델다준께는 경찰서로 간께는, 수납가장이 옥천 양해도 오란께는 옥천 양해도 여그 모사십니다. 그랑께는 요새 어띃게 담았어 인자 거그서 아 이거 문제가 생겨부렀구나. 그라믄은 거길 빡도 못하고 들어가도 못하제. 조소를 인자 조소 받는다 한디, 그 때만 해도 조소 패로 없써. 보안대장이라고 그 때는 보안대장이 뭐 지금으로 말하믄 국무총리나 높아 보안대장이 막드란께 해도 옥천 양해도, 수작가장이 그래 그랑께는 “요색끼가, 해남군 대표로 요색끼가, 요색끼를 어띃게 잡았는가 모른다”고 그란데 몽댕이 이만한놈을 갖고 오더니 욱에서부터 내 후래쳐 블던만 뭐 이라도 못하고 저라도 못하고 있는디 나수 맞고는 “너 이 새끼 네가 요렇게 해갖고 한다” 절대 안했다 했지 그랑께는 그 때는 경찰서로 들어가도 전부 순경들은 박수를 쳤거든 잘한다고 그랬는디 그.. 우암마로 경찰서가 타결대 그놈을 뚜든대를 사진을 찍어부렀네. 어뜬 놈이 찍어부렀는지 뭔 사진을 찍어갖고 “네가 이래서도 안해야?” “네가 요렇게 해가지고 해남이 이릏게 난리가 나부렀다.” 이제 이릏게 된 것이여. 그래서 이거슨 안한게 아니라, 이것은 했어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였다. 그 때 상황으로는 지금으로는 이것이 큰 죄가 된디, 나는 인자는 부인을 안 할란다. 그래갖고 인자 거그서 해갖고, 내가 여그 여찰서에서 28일 있고 광주가서 일주일 있다, 내가 인자 어 석방이 되았어. 그런디 그도 석방을 된 것도 나로 해서 영실 재중씨가 양재중씨라고 아저씨가 자흥 서장을 했는디, 수사과장을 순경 그 냥반 서장할 때, 수사과장할 때 손지 사람을 순경으로 들어왔는디, 엄~청 인자 그 곱게 봐갔고, 자알 키웠든 모양이여. 인자 연락이 그르케 되아갖고는, 그 때는 판사도 좋아갖고, 변호사도 없꼬, 어 뭐 없 머시기 머시기 달 때가 없어, 제에에일로 신사람이 경찰서장이여. 그 때 그 때로 그래갖고는 여그서 자흥으로 가갔고, 자흥에서 그리했는디, 거그서 살고 있는디, 인자 나는 아주 하루에 두 번씩 조소받으러 댕기대 계~속, 그라고 지문 이놈 발하고 손하고 다하고 요렇게 해서, 나는 아주 못 언능 말해서 나오도 못한 그런 그런 형을 인자 받은 받게 되았어 인자. 그라고 인자 사진 다 찍어서 인자 다 하고 있는께는 수사과장이 있는디 “양해동!” 그라든만 “예!” 그랑께는 요색끼는 다른 사람하고 틀려갖고 요색끼는 아주 보통 뭐시기가 아닌께, 고생 시키라고 딱 그 소리 하고는 딱 나가브러. 그랑께는 간수가 딱 쪼깐 있는께는 한 시간 있는께는 부르더라고 “모욕하실랍니까?” 그러드라고 모욕 그 안에 경찰서 그 거서 “모욕하실랍니까?” 그래서 아 모욕이 그 때 여름이지 “모욕하믄 좋지” 그란디 내가 어띃게 모욕을 해. 그랑께 “이리오십쇼” 그라믄서 그리 댔고 인자 모욕을 하라 한거여. 그라고 칫솔 갖다주지, 인자 수건 갖다주지, 속옷 갖다주지 따아악 전부 해 그래놓고 저닉이면은 그 때만 해도 인자 전화가 50대 있어. 간간이 면단위마다 50대가 전화가가 있썼어. 50번까지 가 우리집가 50번이였거든. “전화.. 전화 하실랍니까?” 그라드라고 간수가 그래서 자 인난께는 “아니 전화를 어띃게 해요.” 그랑께는 “아무소리 마르시고 전화를 하십쇼” 그라거니 거그서 연결을 해준께 여그 우체국으로 해갖고 여그서 인제 전화를 해. 그랑께 우리집 사람이 깜짝 놀래블리 “어디여?!” 그라든만 “나 여 경찬데” 그랑께는 “뭔 전화를 어띃게 했어?” 그라고 “나도 모르것는디 그 크게 걱정하지 마라고 자 날마다 뚜드러 맞아도 그거슬 걱정하지 마라 해야지. 걱정을 하란말을 못하지. 그래서 걱정하지 마라고, 여 나는 괜찮하다” 고 그랑께는 오메오메 가보도 못하고, 인자 그란다고 인자 전화를 그라믄 이튿 저녁이면은 전화를 틀어줘. 그 사람이 그라고는 그 때 구면했던 최마수씨가 처음으로 면회를 온거여. 면회를, 면회를, 면회를 경찰 그 때는 면회를 없었어. 그 마수씨 혼자 면회 오고는 못와브러. 같이 했던 사람들도 나는 계~속 또 잽혀 들어올까 무선께 빨리 내빼라고 인자 그 말을 해야쓰것는디, 그 말을 못해 누구하고 연결이 되아야 말을 하제. 그래 인자 마수씨 와 갖고 요렇게 하고 있는디 마수씨 얘기가 “너 얘기를 잘해라”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하더라구 그래서 “뭔 얘기요?” 그랑께는 “너만 들어가야지 이거 안 된다” 그라 인자 그런 얘기를 하드라. 그래서 마 마수씨 그 사람 한 뒤로 15분 있는께는 수하과 계장이 저를 부르더라고 한께는 “너 이 새끼 여그 최마수씨가 와서 네가 주동해갔고 다 했단 얘기를 했는디 너는 거짓말해야” 그라 마수씨가 “그랬는 것이여 나는 그런 일이 없써” 인자 하고 인자 하고 또 만수씨는 인자 감스러 뭐이냐라 그라믄은 “네가 말 다했는디 당신이 말 안한다해서 모른다냐” 이릏게 인자 그 때 인자 그르케 이해를 했 인자 했어. 그래 갔고는 계~속 하루에 두 번씩 정을 맞았지. 뚜드러 맞고 그라고 있는디, 거그하고 연결이 해갔고는 5일 있다가 서장이 부르더라고. 서장이 부르더니 “어디가 서울 어디가 안사람 계셔요?” 그라든만 “아 저는 안 사람이 별로 없는데요” 그랑께는 “아~ 대~단한 분을 알고 계셔서” 아마 인자 그... 그 때는 서장이 뭐이랴하믄은 양선생이라 해 “양선생님은 정말로 평생 고생하실 것인디 정말 그 분 덕으로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그 때 들어가서 조소가 필요 없어 즈그 맘대로 찍어갔고 손 끗어다 것다 찍어븐거여. 거 경찰서 즈그 맘대로 적어갔고 했다고 해도 소용없고, 안했다 해도 소용없고, 손 갔다 것다 찔 찔러브 란디, 그 놈을 나 본디서 따악 찢어블고는 “다시 조소를 받으십쇼.” 인자 이릏게 얘기를 하드라 그랑께, 수사과장하고 얘기가 다 되았제. 그랑께 그거슬 다 빼블고, ‘나는 다방을 하고 있는디, 거그서 그 사람들이 요렇게 올려갔고 거거를 따라가서 갔다 온 죄밲께 없따.’ 인자 요렇게 조소를 만들었어. 그래갔고 (조사자: 해남서?) 예. 해남서 인자 인자 서장이 그렇게 인자 지시를 해논께 그래갔고 광주 가서 인자 5일 있다가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믄 내가 바보 같거든요. 광주서 살 때 5알은 산디 이만한데서 한다하믄 한 백명 정도 사람을 재워놓고 대가리는 대가리하고, 대가리하고 맞대고 발하고, 사람 한나, 대가리 한나, 사람 한나, 이릏게 해서 겨운디, 5일 동안 뭔 얘기를 하냐 그라믄 , 여기 있던 일 지적삼수로 맞았단 얘기, 이런 얘기를 하믄 다시 들어오믄 죽어갔고 나갈 줄 알아라. 그 교육을 한 것이여 5일 동안. 계속 밤낮 이에 가면 모른다. 안했다. 전혀 뭔 뭔지를 모른다. 이릏게 해야 살지, 다시 들어오믄 인자 죽으러 들어온 폭이다. 인자 거그서 그 교육만 5일을 한거여. 나도 인자 살고 잡은께 인자 나뿐만 아니라, 다 그랬제 그 때는 그렇게 해갔고 있쓰니까, 인자 이릏게 시간이 흘러가지고, 일년 반이나 됐나? 그란디 시청 직원들이 두 분이 찾아 왔드라고 “양이도 오선생님 이십니까?” 그러더니 “아 처 선생 아이고 농사짓는 사람입니다.” 그랑께는 ‘아이 압니다. 그런디 이릏게 해서 어 고생을 많이 하셨는디“ 정부에서 지금 혜택을 줄라고 그랑께 아무 걱정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를 얘기를 해줘 그래서 내가 “아이 나는 그런 사실도 없꼬, 나는 고생한 사실도 없꼬, 그런 사실이 없는데” 인자 보내부렀어. 그 사람이 손을 꽉 잡은스러 “정~말로 이번에 잘해야 혜택을 받는단 말입니다. 혜택을 못 받으면 안 된다.” 걍 깜딱 놀라 보내부렀는디 인자 여를 남았따해. 그 기간이 말미가. 또 왔어. 다른 사람 한 사람 댔고 서니가 와가지고, “이릏게 돼서 이릏게 돼 누구도 보상을 받고, 누구도 보상을 받고 그란디, 이릏게 해서 보상을 안받을랍니까?” 그래서 나는 그런 사실이 없은께 가이쇼. 그러니까 “정말로 그라실랍니까?” 그래서 “정말로 그란다고” 그랑께, 내가 여기서 죽어도 거짓말을 하면은 내가 여기서 죽습니다. 그랑께 나를 믿고 거그서 어떤 얘기를 했다 한다 하드라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란디, 그 인자 받은 사람들 전~부 이놈을 내놓더라구 요렇게 요렇게 했는디 “쪼끔이라도 혜택을 받으쇼” 그란디 진~작 하셨으먼은 보상도 마이 받고 혜택을 마이 볼거인디 이게 열흘백께 안남았는디 많은 보상이 안될 것입니다. 그런디 최하 등급으로 기타 등급으로 받으면서, 그 때 한 900만원 정도 돈을 받았거든. 근데, 그 때 900만원도 적은 돈은 아니여요. 그런디 일찍허니 했으먼, 한 5000만원 정도 돈을 저도 인자 해남 대표로 인자 이렇게 해논께, 받아야쓰 받았을 것인디 어~띃게 무섭정을 줘블고 그란껜, 인자 그걸 못하고 와서 그래도 자흥, 강진, 해남, 완도 그래도 5·18 회장을 맡아서 한 5년 동안 하면서 많은 경험도 얻고 그렇게 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 거기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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