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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_01_FOT_20160811_PKS_OGS_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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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장소 :
    영광군 영광읍 우평리 우평마을 정자
    조사일 :
    2016-08-11
    제보자 :
    오규석, 남, 70대 후반, 토박이
    조사자 :
    박경숙, 남성자, 임준석
    구현상황
    조사를 갔을 때 우평마을 정자 ‘관풍정’에 어르신들이 쉬고 계셨다. 제보자와 조사 자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르신들 또한 우평마을 이야기를 경청하셨다. 특히 제보 자는 우평마을 설화, 전설 혹은 마을 유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시려고 노력 하 셨다.
    줄거리
    6·25 당시 우평마을에도 좌익과 우익의 세력들로 나뉘어 있었다. 우익으로는 영광 공산주의 군단위원장이 있었고, 좌익 사람은 경찰 총경을 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집이 서로 이웃집인데 오씨는 우익이고 좌익인 총경은 한씨였다. 자칫 세 력 간의 다툼으로 마을이 위험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우익 오씨들이 좌익 한씨 집 지붕에 불을 지르기 위해 몇 번을 시도했는데 우익 오씨들이 한씨 집 지붕에 올라 가서 불을 못 지르게 하기 위해 거기서 잠을 자고 한 달 동안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네에서는 그때그때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우익과 좌익의 갈등 상황에 서 서로가 합의하여 잘 넘겼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이 마을은 6·25당시 한 마을에서 한 분은 영광 군단 위원장으로 인공시절, 요즘 말하면 이북 즉 공산주의 영광 군단 위원장을 했고, 한분은 좌익으로 경찰 총경을 했어요. 그러믄 두 집이 서로 이웃집인데 오 가는 우익이고 총경은 좌익이여. 그러믄 이 마을에 우익과 좌익이 있어. 우익 좌익이 만약에 싸움이 됐다면, 이 마을은 불 바다가 되아버렸을거여. 왜그러냐, 영광 군단 위원장쯤 되아버리니까. 아주 위험한 마을이었어. 그런데 우익인 오가들이 한씨인 그 좌익에 집을 소각허기 위해서 긍게 불을 질러버리기 위해 서 몇 번을 시도허고 불을 질러버릴려고 했는데 오가들이 한씨 집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에서 잠을 자고 한 달동안 살았어 한달동안. 그 럼으로써 좌익, 우익 갈등이 해소되고 다 모든 것을 막아내 갔어. 그래서 이 마을이 영광 읍에 서 제일 큰 자연부락인데도 불구하고 우평마을은 6·25당시 희생자가 거의 없는 그렇게 훌륭 한 마을이었어. 영광군에서도 6·25당시 피해가 극히 적어 이 마을은 외부로부터 칭찬받는 마 을이었다는 거여. 그래서 이 부락에 다른 것은 모르지만은 거 인심 좋은 거, 그 좌익우익이 살아도 서로 합 의에 의해서 서로 우애허고 6·25피해를 면해가면서 오늘날까지 공정히 살았다는 거. 그래서 이 마을을 극히 누구한테도 자랑하고 싶고, 후세에도 우리 마을의 자랑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모든 것에 칭찬했고, 앞으로 이 마을은 어느 불행이라던가, 마을에 우환이 있다 하 드래도 당산제를 중심으로 해서 서로간에 화목허고, 서로 합의해서 불화음이(불협화음) 없이 조용히 맞춰나가는 역사적인 마을로 360년 동안 내려온 전통적인 마을이란 것이 자랑이지.

     

    우평마을 좌익 한씨와 우익 오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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