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지역별 설화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949년 9월14일 발생. 당시 경찰발표에 따르면 탈옥수 413명 가운에 체포 85명 사살 298명 자수자 10명 미체포 23명 총기회수 10정에 이른다. 목포형무소 수용인원 대략 300-400명 정도였는데 1,500여명이 수감돼 있어 실질적으로 통제불가능 상태였고 수감자의 상당수가 제주 4.3관련자였…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이며 진의 우두머리인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리상으로 볼 때 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안고 있으며 바다로 연결되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목포진…
죽동 가믄 마인계터 잔등이라고 있어, 구름다리 넘어서잉, 쌀을 열 가마니를 실고 오면 800키로여. 옛날에는 쌀이 한 가마니가 80키로니까잉. 열 가마니를 실고 사람이 끄는 큰 리아카가 있어, 말이 끄는 리아카 말고. 그런데를 안 옮겨주면 안되니까, 그 죽동 마인계터 잔등 그런데를 사람이 끄꼬 올라오는 …
목포사람치고 물지게 한번 안져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물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죽교동 쌍샘, 온금동 샘 등 샘과 관련된 일화가 많음.(옥단이 등) 일제는 부족한 물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의 목포와 무안군 등지에 4곳의 수원지를 개발해 일본인 거주지역만 사용하였다.
1928년 윤치호 전도사가 기독교정신으로 7명의 부모 잃은 아이들과 생활하게 된 것이 공생원의 시작이 되었다. 1938년 일본인 여성 윤학자(다우치지즈꼬)여사와 결혼하였으나 1951년 6.25사변 당시 500명이 넘던 아이들의 식량을 구하러 광주에 갔던 윤치호전도사는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 윤학자여사는…
“전해오는 말로는 이 대성동서 영감 한나가 그전에 태어날 때 심이 그 영감님이 좋으니께 어깨에 가서 뭐 날개가 돛쳤다 뿔이 돛쳤다 이 말은 들었어요. 그래도 그런 것은 우리가 가당 안한께 뭐라고 말허것소. (그분이 대성동에서 태어났나요?) 근디 대성동에서 태어나잔에 그전에 어서 와가지고 산디 그 사…
재생원 옆 골짜기를 말한다. 옛날에 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감나무꼴창이라고 했다. 지금도 60대 이상 되신 분들은 감꽃 주으러 다녔던 추억담을 말하기도 한다.
자유시장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포 인근 지역인 무안 삼향읍, 몽탄면, 일로읍 그리고 함평사람들이 첫 기차를 타고 목포역 근처에 모여 농수산물을 판매했다. 이들이 오전 중에 장사를 마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시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해서 ‘도깨비시장’이라 불렀다. …
〇 전설1 이 갓바위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진리를 깨달은 경지 높은 도사 스님이 영산강을 건너 나불도에 있는 닭섬으로 건너갈려고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과 지팡이를 놓은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〇 전설2 월출산에서 도를 닦던 도사 스님이 상좌스님을 데리고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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