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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함몰댁이라고 불러. 한마을에서 나서 한마을에서 시집가고 쭉 살았다고 함몰댁이라고 해. 여기 장산에서 태어나서 여그서 이리 늙어가. 내가 13살~14살 묵었을 때 우리 아저씨가 수북에서 왔어. 수북서 큰물이 났는데 우리 아저씨가 작은 집이 우리 장산 마을에 있어서 이리 와가지고 여기 살다가 나랑 결혼…
내가 6.25 후에 서울에서 영화사업을 했어. 15미리 영화를 촬영했는데 도로변에 천막치고 영화를 상영했지. 천막영화관이야. 영화관이 천막이지. 남가좌동, 수색, 응암동, 녹번리, 영천, 약수동 까지가 내 사업 구역이었어. 일주일마다 한 번씩 들어 갔제. 그 때 집을 하나 샀어. 스물한 살이나 묵었어. …
(김인례 : 우리 할아버지는 군인들이 주둔하는데 인공 때 반장을 3일인가 했어. 그런디 나와라고 하대. 군인들이 와서 반장했다고 군인들이 때려가지고 온 몸이 땡땡 부서가지고 죽다 살았어요. 옛날에 차가 있어, 리어카가 있어. 지게에다가 져가지고 데려왔어요. 이 양반하고 싸울라다가도 그 일을 생각하면, 이…
내 이름이 이강렬이요. 해방된 날 그때 내가 학교를 2학년 올라감서 해방이 되었는데 열한 살 묵었으까. 만덕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6.25 때 인민군들이 부산만 빼고 점령했을 때 인천 상륙작전으로 미국이 도와준 통에 낙동강 물이 핏물이라고 했어요. 그때 나는 열일곱 살 묵었는디 인민군들은 나보다 어린 중…
17살 묵었을 때 함평 월야에서 아버지 어머니하고 송정리로 나왔어. 동생들은 행방불명 되야 불고. 송정리에서 서울로 갈 때 내가 열여덟 살 인가 열아홉 살 인가되었는데 나 혼자 갔어요. 돈이 있으니까 뭣을 할 것은 없는가 해서 남대문으로 갔어. 거기서 함평에서 행방불명된 동생 둘을 참말로 우연히 다 만났…
여기 동네에서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거이 6.25 때 피해자가 없다는 거여. 빨갱이들도 이 동네를 상당히 어려워했고. 이 동네에 잘못 해불면 지그 설 땅이 없으니까. 일꾼들이 와서 억압을 놓고 그랬었지. 여기 동네에 빨갱이들이 해칠라 해도 우리 동네 할아버지들 몇 분이 계셨는데 자기들 설 땅이 없으니…
나는 죽도록 맞았어. 인민군 후퇴가고 대한민국 사람이 쳐들어 왔는가. 우리 큰딸 금옥이를 9월달에 날 달인디 다 피난가고 없고, 배고픈 시절이라 친정(동정리)으로 밥 얻어 먹으로 가가꼬, 인자 경찰들한테 안 걸릴라고 다 요러고 뒤로 다녔어. 동정리에 태기양반을 자네가 알랑가 모르겄네. 그 집에 …
6.25때 우리 상갈 부락에서는 안 죽었었지. 18살 묵어서 전부 소개를 나갔어. 하갈에서는 많이 죽었고, 우리 부락에서는 안 죽은 것이 뭐냐문 밤손님인 반란군들이 마을에 있었거든. 군인들이 온다 근께 아랫마을 하갈에서는 반란군들과 함께 피신을 했단 말이여. 군인들이 이 연락을 받고 들어왔겄제. 그래서 …
우리마을에 3부자. 7부자가 난다고 했거든. 현재 3부자는 났는데 이름 있는 부자는 두 부자 나고 꾀로 알부자가 하나 났어. 지참봉 나오고 최부자 나오고 지참봉하고 최부자는 광주시내서 유명하제. 지참봉은 만석꾼을 하고 최부자도 만석은 아닐망정 참봉도 아닐망정 거기도 엄청 부자였어. 두 양반이 여기서 목포…
(조사자 : 여기서 약국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담주리에서 만성리 가는 다리 이름이 만성교인가요?) 1955년부터 고려약국을 했어. 만성리인게 만성교지. 그 지역이름을 많이 따. 그래서 만성교라고 했지. (조사자 : 담주교라 할 수도 있잖아요. 양각리 다리도 담양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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