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지역별 설화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의병활동을 하셨던 병택되는 어른신은 어려서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일본군과 싸우다가 총에 맞아서 전사하시자, 그 주변 사람들이 시신을 걷어다가 우리 마을 앞에 서당 밑에 산이 있어서 서당산에 몰래 안장을 하였다고 합니다.근래에 집안의 형님되시는 분이 사당을 복원하셔서 현재 봉곡리 서평마을에 사당이 지어져…
(제보자 김경신) 김자, 용자, 구자 의병장님께서는 저희 증조 할아버지십니다. 그면 아들 되 신 분 김자, 봉자 의병장도 아들, 같이 의병활동을 했던 분이시고. 제일 처음에 인자 계契 상태 로 해서 금산마을에서 처음 결성을 했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여그 전투를 많이 했어요. 뭐 선 운사전투, 뭐 정…
인자 서종채 의병장은 1905년도에 한일합병의 비보를 접하여 이제 분통이 여겨가지고 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헌 사람이에요. 허다가 국군이 침략되었고, 1907년 10월에 장성에 서 일어선 의병 기삼일 의병장 부대가 약 삼천명 정도 돼요. 거기에 참가해서 인자 큰 공을 세 웠고, 후에는 이대국 …
성재 이백래 선생 저 어르신은 인제 이곳 출신인데. (예동 출신이여요?) 예 그러죠. 옥암리 출신인데. 야튼 그 그동안 우리가 몰랐다가 어떤 비문에서 그 기록이 나와 가지고 이게 지금 국가 보훈처에서 주장을 해가지고 비를 해놨는데 2003년도에. 세왔는데 그당시에 화순에 있는 쌍봉사 거그 앞에 지금 거 …
구분실 약방은 한 가족의 가업으로 1세대 창업주부터 5세대까지 이어지고, 그 기간은 구한말부터 현재까지 약 백삼십 여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의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일 세대부터 삼 세대까지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구분실 약방의 창업주이자 일세대인 ‘주(朱)’, ‘경(景)’자,…
천 사백년 대에 우리 마을이 젤(제일) 첨에(처음) 설치되었는데, 그때는 사람이 많이 안사니까 한 다섯 집이나 이캐(이렇게) 사는데 제일 욱에가(위에) 상리라고 ‘웃 상’자 써서 상리, 그라고 그 다음에는 중리, 그 다음에 오래되았고(되어서) 옥대리 그렇게 되았습니다. 그란데 거그 상리 그 욱에서 뭣 할…
그 뒤엔 안가 그렇게 인자 집이서 인자 가정을 많이 헌께 모도 아 가정도 지키고 헐라고 인자 가서 인자 총을 메고 인자 지서에다 인자 적을 두고 다님서 아 농평이고 당치고 이런데 가서 밤으로 가서 잠복근무를 허고 낮에 나가갖고 또 밤에 들어와서 근무허고 밥은 그런께 인자 동네마다 시켜 묵어. 밥은 그때는…
다 옛날에 했던 것이 뭐 있냐면. 일본 경찰이 비서가 하나 있는데 주임은 일본 사람이 봤고. 우리나란 의용경찰들이, 의용경찰이 그 당시에 많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더 독해요. 독해요, 그 나쁜 놈들. (조사자 : 의용경찰이 임시직 같은 건가요?) 그르니까 그이 하나, 무슨 거…
그때는 어쨌냐면 인민군들이 남침을 해가지고 곡식을 가져가는디 서숙을 그때는 서숙을 심었어요. 서숙, 조를 심으면 모가지가 시(세) 개 가 있어. 소, 중, 대. 요놈을 다 시어. 일일이 그놈을 다 시어. 모가지 하 나를 시고, 시고. 그래가지고 곡수를 그렇게 해서 믹에. 쌀도 그렇게 했 어요. 나…
결혼하고 맨날 맞고 살았어요. 맨날 저년 죽인다고 칼을 갈더라고요. 걸핏하면 “어 느 놈이냐”고 소리치면서 찔러 죽인다고 난리였어라. 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아 무것도 안하고 있음시로, 내가 바느질하면 옆에서 칼을 갈고 있고, 얼마나 무섭고 마 음이 졸이겠어요. 기도 못 피고 살지, 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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