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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름이 남선이 아닐 때는‘쩍골' ‘절골’이라 했는데 절이 있었닥 해. 그 절이 아까 이야기하다시피 삼국시대 신라 말 때나 생겼을까? 거가 절이 있다가 없어진 이유는 빈대가 많아서 없어졌다는 그런 말이 있어. 그건 확실히 몰라. 지금도 가서 보면 물이 좋고 멍에(머위)같은 것이 많어.그래서 그 …
절이 있었기 때문에 외지 사람들은 남선을 ‘쩍골’이라고 된 발음 넣어서 부르기도 해. 그란데 사실 어째서 쩍골이라고 됬냐 하면은, 절이 있었기 때문에 절골인데 거기다 발음을 되게 해갖고 쩍골이라고 이렇게 해. 지금도 아마 노인들은 그렇게 부를 거여.
들은 얘기에 의하면 쩌그 금성리 뒤에 가면 감바우 재가 있는디, 거가 옛날에 감명당이라고 아 주 유명한 명당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 감명당에다 묘를 써갖고 그 자손이 재산도 많고 권세도 부리고 살았는디, 그 사람이 구두쇠고 절대 덕을 안 베풀어. 그때만 해도 얻어먹고 댕긴 거지들이 많한 세상인디,…
여그 영보에서 나고 자랐는디 어릴 적부터 베 짜고, 쪽 하는 것 보고 살았어. 내가 기억은 잘 안 난디, 우리 동네 다른 집에서도 다들 쪽물 맨들고 살았던 것 같아. 밭에 쪽 잎사구가 이만큼 자라면 잘라갖고 와. 내 기억에 나락만치 꽃이 피어. 빨간 꽃이 피기 전에 베야 돼. 언제? 여러 번 비…
저 연동마을로 넘어가는 데 그거 가면 엄청 무서워. 그라믄 인자 큰집에 제사 모시러 가믄, 뭐 음식 좀 싸주면 거기다 땡겨불고 오고 그래, 뭐 주라고 한께. 도채비가.(웃음) (아, 직접 만난 적 있으세요?) 못 만내 봤는디. 그거 오믄 다 무섭다게. 그라고 그 신, 요렇게 줍고 가는, 산 사람이 거…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온 이야기로는 엄다면과 함평읍의 경계가 도로였다. 함평의 수호리 물이 엄다땅으로 흐르고 잇는데 거기가 다리가 없어 똘 속으로 걸어다녔는데 그 다리를 놓은 사람이 조씨와 박씨이다. 나무를 베어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성을 따서 조박다리라 하였는데 주로 쪽박다리라고 불러왔다. …
그 맛있는 이유는 우리 어려서 볼 때 큰 가마솥에다 고기를 삶아. 쬐 깐은 솥에다 삶잔에 그 가마솥에다 고기 삶으믄 누글누글하게 삶는디 된장기를 고로 하드만. 우리 어려서 봐도 된장기를. 그때는 미원도 없는 세상이고 지금인께 미원이있제. 그때 하는 거 볼 때 고기가 연헌 것이 그래서 고기가 연했는…
전에 한 사람이 인자 각씨를 얻어서 산디 즈그 동생이 살림을 시번(세번)을 차려 조도(줘도) 시번을 딱 젓어 묵어버리거든. 한 상객이 와서 “당신 성(형)을 모시고 살다가는 당신네 가족이 두, 두집 가족이 다 거지가 된께 당신네 성을 나가 라고 하라.” 고. 그란께, “그라먼 어찌께 해서 우리 …
옛날에 김정승 아들이 박정승 딸한테로 장개를 갔는디 첫날적에 김정승네 아들이 이렇게 신부를 차 다본께 양반이라하믄 신부가 웃기도 힘이 들었제. 옛날에는 웃음도 함부로 못 웃었제. 그란디 신부가 앉어서 빼기작작 웃음을 웃고 있거든. 그랑께 “암찍에도 저 큰애기가 옛날에 즈그 샛서방하고 하는 일 을 생…
그 전에는 약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어. 그리고 거의가 다 저기 그 집안에서 그 저기 어떻게 조약(造藥)이제. 약이 없었어. 그런께 이 눈에 다래끼 난 것은, 다래끼 난 것은 툭 붉잖애. 벌거니 홍안이 되고 헌 것은 병으로 보지를 안해. 지금은 뭐 안과에 가지만은 병으로 보지 않고, 거그 가서 눈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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