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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여덟 살에 시집 왔는디, 꽃다운 청춘 땐디 나는 청춘이 먼지도 모르고 살았어라. 그때 는 하도 힘이 든께 죽을라고 하다가, 살다가, 내빼다가, 오다가, 가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징한 세상 살았제. 시집살이 말도 말어라. 내가 열여덟 살에 시집온께, 혼자된 시아버지에다 시아제가 다섯에다가 …
시종면 송산마을 앞에서 남쪽으로 칠백 미터 앞에 위치해 있는 장사바위라는 바우가 있어. 그 것은 태산봉과 남산봉의 중턱에 있는 디, 삼백 키로 이상 된다고 전해 져. 근디 옛날에 우리 마을에 네 성받이가 살았다고 해. 그 네 성씨들이 서로 자기 들이 잘났다고 평상시에도 쫌 알력이 있었다드마.&n…
구술자: 사장은 250년 해놨는디 설촌은 여기 꼭대기밖에 안돼 그러지라조사자: 가만있어봐 가만있어봐 여기 생기기전에 지금 저기 절올라간데 구술자: 절이 먼저 생겨겄제조사자: 절올라간데밑에 시루대밭 있는데구술자: 여그 안에가 있다니까 저수지 요쪽에 조사자: 저수지안에 거기구술자: 저수지말고 저수지 못가서 …
저 죽정마을은 인자 옛날에 그 처음에 마을이 설촌될 때 그 인자 불도를 불교를 믿는 사람들 인자 그 불도를 닦기 위해서 그 마을 그 지금 있는 마을 뒷산에다가 암자를 짓고 처음에 정착하면서 이렇게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그래. 긍께 인자 처음부터 죽정마을이라고 불른게 아니고, 어 인자 원래는 그 대절골 절이…
그때는 부모님들이 대나무공예를 하셨기 때문에 학교를 가면은 일을 도와달라고 학교를 못 가게 하시는 거야. 지금 바구니를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팔아야 먹고 사는데 학교가 무슨 소용이 있냐. 하면서 학교를 못 가게 했어.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금방 다녀온다고 학교에서 파하믄 집에 가서 하고 그러면 부모님들한…
육십여 년 전, 늘상 피난 다닐 때 였는디, 삼호에 토벌대가 실탄 쏘기 일주일 전 이야기여. 그 때는 밤낮으로 피난 댕겼어라. 밤에는 산에서 자고 낮에는 집에 와 있당께. 그 당시 내 친구 아 버지가 목포서 피난을 와 있었어라. 내가 아버지가 없는 탓에 친구 아버지를 따라 다녔어라. 멀 라 그랬는지 몰라…
죽천 선생님은 겸백 사곡으로 사후에 오셨습니다. 원래 화순 모후산에서 정유재란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유재란이 끝난 뒤에 국사(광해군 사부)라고 해서 나라에서 지관을 보내 선생님을 이리 모셔라 해서 지관이 잡아서 모셨습니다. 정유재란 이듬에 이리 모셨습니다. 국묘로 모셔서 이 …
풀이 나서 내가 그냥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약을 뿌려놨등만 죽었소 죽어. 거 빙월정 그런데는 강을 하지만 여그는 강을 안 허거등요. 그래갖고 묵해부렀소. (광풍제월이 여기도 있네) 예, 풀약을 했응께 조금 지나면 정리를 헐라고. 저 광풍제월 전부 다 회봉선생 (요 앞에 자가 무슨 자예요?) 어…
고려말 최씨선비가 비금도에 처음 정착하여 대쪽같은 선비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마을 뒷산 골짜기에 대나무 숲을 만들어 은둔생활과 함께 후손 양육에 전념하여 왔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대나무골이라 부 르며 지금도 뒷산골에는 대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죽피라는 것은, 죽피 말하자면 껍닥을 찢어가꼬… 죽순 껍질로 그렇게 찢어가꼬 방석을 만들어서 시장에 가며는, 시장에 가서 팔아요. 짚이 있어야제, 짚이 안꼬 넣어가꼬, 요케 꼬쟁이로 꼭꼭 쑤셔가고, 다 거시기가 있어. 허는 방식이 다 있죠. 그랴꼬 고놈 히서 시장에 가면 팔아서 고것으로 거시기를 하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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