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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울 아버이가 어델 가셨어. 밤에 캄캄한데 울 엄니가 날 깨와. “느그 아버지 마중을 가자.” 해. “이러큼 캄캄하이 누가 멫분 질로 올란디 되겄냐?” 그라고 가서, 작대기를 울 엄니가 들고 가등만. 날 데꼬. 한밤이여. 오래 됐어. 지금으로 말하면 아홉시 넘었제. 그란디 산중들이,…
저수지를 그때 1968년인가, 그때 한해(旱害)가 들었어. 정부 대책으로 주민들을 우선 살려야 된께, 미국에서 들어온 원조품 고것 갖고 저수지를 막는데, 하루에 임금이 아무리 일을 잘하는 장정도 3.6킬로그램 밀가루. 또 아무리 일을 못하는 사람도 그 집에서 제일 실건(튼튼하고 다부진) 사람 같으면 한 …
아마 올 같은 해 영산강 물이 없었다 그라믄 영산강 안 막고 감돈 저 수지 하나로 했다고 그라믄 기우제를 했어야 될 거야. 비가 두 달간 소 내기 찔끔질금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면 나락이 타져불거든요. 그런디 영산강 물이 흘르니까 오니까 벼에 지장이 없었고. 곡식에 큰 문제가 없 었고 그런디 그때는…
옛날에 저 거시기 의사가 있었어. 당골이 많이 빌어 줬지. 저 돌팔이 의사. 그 돌팔이 의사 전에 당골한테 갔어. 당골이 있으믄 나는 젓이 적 어서 우리 큰아들 키우면서 거시기 무당한테 물으니까, 시리를 자그마 한 시리가 있어라. 거기다 떡을 해가지고 거시기 쌍딩이 샘. 그 전에 쌍 딩이 샘 있었…
인자 지금은 인자 그 참 {청취불능} 안 거시기 했는데 전에는 그 한 번 지내믄 저 제관집이나 제사 지내는 집이나 축관을 드리는 사람은 어 딜 가도 안해, 아픈디 간데 없어. 초상 났다던가 애기 낳다 그믄 안가. 그러고, 한 달 되믄은 거기 가서 물도 샘물이 따로 있어. 저 위에 있어. 이렇게 두…
제방이, 그것이.[오래 생각하심.] 80년대. 마을 울력으로. 고생들 많 이 했어. 여하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남녀 간에 했는디, 그때 경운 기도 없어. 내중에 경운기 있어 가지고 모르겠는데, 참알로 밥만 먹으면 울력 인자 뭐식허고, 그때는 마이크도 없은께 징 울리고. (조사자 : 거 글믄 …
이 노래는 주산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밭 노랜디 몇 년 전에 얼씨구 학당에 나가서 곡성을 이기고 1등을 묵었제. 에어컨 타갔고 왔어. 장산리, 원강리, 주평리, 월곡리, 주산리 이렇게 3부락 4부락 모아서 나갔는디, 그때 나간 사람 중에 세 양반이 돌아가셨어. 함경남도 미나까에 유리는 반짝싱글 상…
우리 주산리에는 차씨가 맨 먼저 들어 왔는디 지금은 차씨가 없어요. 그보다는 그 전에 도로가 나기 전에는 아래 장산마을에 큰 수해가 자주 일어났는데 수해가 나면 우리 마을로 피신을 왔어요. 한 번은 수해가 나서 둑이 터질라고 하니까 장산마을에서 소장사를 했던 장정팔씨가 소를 몰고 올라 옴서 “야…
(장기섭 : 우리 주산리에는 1962년부터 윤리회가 만들어져서 활동했어요. 지금은 없어요. 참 잘했어요. 고서면에는 여기 밖에 없었어요, 유명했어요. 그 당시 군수님이 삼월 삼진 날 밤에 다 모아서 작은 아이들은 인사 잘한다고 상주고 어른들에게는 효부상도 주고 그랬죠.)우리 며느리도 효부상을 받았어요. …
어려서 물난리가 나면 주산리 산으로 도망가고 그랬어. 요만할 때 열한 살 때부터 주산리 산으로 피난 갔어. 몸뚱이만 갖고 도망을 갔제. 몸뚱이만 갖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는데 (소를 팔던 장정팔씨가) 살아 계시믄 100살이나 자셨을 거요. 그라고 비가 끝난 뒤에는 다시 내려가고 그랬죠. 아무리 수해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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