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을 통해 쉽게 설화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옥천사라는 절이 있긴 있었다는데 내가 알기로 옥천동에 사람이 있었으면 무슨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아무 증거가 없더라고. 옥천사라는 이름만 있지 기왓장 같은 것 절터 형식은 있지만 글자로 된 것이 없어. 구례 화엄사로 가야 찾는다고 그려. 저 우에 옥천동이라는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 글자가 있고 지금 두…
그 옛날에 거기서~ (조사자 : 지금 옥터가 어디가 있대요?) 그것이 옥터가 말하자면 현재 읍사무소 뒤에 가 옛날 그 뭐야 버드 나무가 많이 있었는디, 그래서 거기에서 교수형을 했다고 하거든 감옥살이해서 죽은 사람 사형수를 잡아 죽인데가 옥터라,
(월본리하고 갑향리쪽 마을은) 월인, 사성, 계곡, 그렇게 저기 해가지고 월인마을 그쪽 산을 토끼등이라고 하는데 월인이라는 게 말 그대로 토끼가 달 속에서 방아 찧고 있는 그거다 그래요. 그래서 인자 달 월(月)자에 인장 인(印)자 써서 월인(월인마을)이고 그러니까 달이 있으니까 별도 있는 거잖아. 그래…
옥토망월은 사성마을 빈들이 꼬랑. 현재 이씨들 산이제. 황계포란형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은 우리 동네 뒤에여. 닭이 알 품고 있는 것이여. 한집안에서 사법고시 둘 합격(오승진, 오상대)하고 문화유씨(유경기)는 행정고시 합격하고. 지금 서울 시청에서 부시장을 하고 있지. (사법고시 합격하신 분은) 판사…
나의 어린 시절엔 풍악이 매일 울렸다. 마을에서 풍장 농악이 있던 날엔 온 마을 사람들의 잔치 날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부자가 적어 풍장이 매일 있진 않았지만 옆 마을 배야 마을엔 부자가 많아 머슴을 들려 농사 짓는 부잣집엔 거의 다 매년 풍장을 했다. 논매는 가운데서 장구치고 징과 꽹과리 치며…
48년도에 45년 해방 되아 가꼬 48년도에 여수반란 나가지고 음. 45년 49년도에 동네 불맞어 부렀으거요 불질러 부렀을 거요. (나중에 전화통화로 녹취의 년도를 정정하였음) 그때 내가 열일곱 살 먹었는데 48년이 그랑께 그때 내가 열 야답 살 먹어서 동네를 한마디로 거 폭도 그때는 알기 쉽게 말하자먼…
옛날에 이야긴데요. 온씨란 성씨가 한 분이 계셨었읍니다.그런데 그분이 대한민국에서는 그런께 옛말 로 해서는 우리 조선에서는 지사라고 해서 지사로 해서는 아마 명지사였든 겁디다. 그런데 그 분이 명지사이면서도 어뜨코나 가난했든고 참 찢여지게 가난했었어요.그래 애들은 많고 가 난함에 면치 면하고 어덩밑…
인자 그런 사람들. 인자 내가 항시 이야기하지만 일제 때 사람으로서 선생님을 차범석 선생님 다뤄놓고 왔어야해. 우리가 다루는 부분은 내가 다룬다 해도 우리는 야사야.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항께 야사고. 근데 이번에 우리가 한시 엊그제 우리 집에 몇 사람들 왔길래 지금 목포가 제일 먼저 바꿔야할 이름이 …
온금동을 우리말 이름으로 다순구미라고 부른다. 지금은 매립되어 버린, 이전의 째보선창 주위의 산록에 자리잡은 온금동은 목포의 가장 오랜 마을 중에 하나이고 목포항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바닷가 마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포진의 고지도에 나오는 등산진이 있었던 위치로 추정하는 장소 중의 한곳이기도 하…
동네 안에는 새 샘(동네앞에 새로 판 샘), 큰 샘(새샘 서남쪽에 있는 큰 샘), 짠물 샘(온금동 174번지에 있는 샘)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몇 군데의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메꾸어져 없어졌다고 한다. 말태기 고개 중간쯤에 「幼學鄭麟浩施惠不忘碑」가 있었는데 현재는 우물가에 세워놓았다. 이 비석은 가뭄…
(58323)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로 777 Tel : 061-339-6925
777, Bitgaram-ro, Naju-si, Jeollanam-do, Korea
Copyrightⓒ2016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