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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살바위? [청중1 : 고살바우, 바로 바로 저 건너가 있어.] [청중2 : 아이... 혼자 머시기하믄 언능 거이 잘 기억이 잘 안 날 거여. 그러니까 쪼끔 더 얘기를…] 고살바우 전설은 (오른쪽을 가리키며) 여가 고살바우가 있는디 내가 옛날에 이두주씨라고 (옆에 앉아 있는 청중을 가리키며) 이 …
행원에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멫 분 안 되지만은 항시 고 제작을 맡어서 했기 때문에 지금도 고를 꼬아라 하먼 딱 만들어낼 수 있어 지금도. 그란데 그 행사가 없어지고 지금 멫 년 안 만들고 그러닌까 그 요령이 자꾸 저 헷갈려지제. 우리 마을에서 모도 만들어가지고 나갔으닌까. 그라고 우리 손으로…
그것은 실지로 있는디, (구례)동해 사람인디 이 밑에가 아까 구례라고 동해 사람인디, 이 마을 그 서씨들허고 같은 서씨여. 그 ‘눈굉이’ 거기서 소나무 비다가(베다가), 소나무 비고 거기서 즉사를 했소.내가 젊은 시절에 나무를 많이 비 봤소. 기계톱 갖고, 기계톱 처음에 나올 때부터,손톱으로 비다가, 내…
명산 감방산 줄기에 함풍고을 고을 샘이 있었다. 고을 샘이 생겼는지는 언제인지 몰라도 고을 샘으로 만들어진 것은 고려말경으로 추정된다. 이 샘이 유명한것은 물의 온도가 섭씨 19도 정도로 예부터 약수터로 유명하였다. 전에는 땀띠가 나면 무척 가렵고 피부가 약간 빨갛게 부었다. 그런데 고을 샘에 가서 이틀…
이 마을은 1408년 전북 옥구에서 옮겨온 전라도수영(全羅道水營)이 1432년까지 존속한 수영 터(水營 攄)로 대굴 포 전라수영(大掘浦 全羅水營)이라고 불렀다. 마을 동편에는 대굴 사(大掘 寺)라는 고려 때의 절이 1667년까지 있었고, 지금 마을 상수원으로 쓰고 있는 샘은 옥천(玉泉)이며 창 골은 강소…
그랑께 1938년경에 그 일본놈들이 간척사업을 했어. 1938년에 그 왜놈들이 간척사업을 해가지고. 그랑께 우리 부락까지 바다여. 그라다봉께 인자 바다가 없어지고 주업이 인자 농토로 변해부렀제, 앞이. 그라기 이전에는 거문도라는 그 섬, 우리하고 교역을 하다시피, 그 고기 이런 것을 갖고와서 우리 부락…
어르신들한테 들은 얘기라고는 그 장수라고 이름을 지는 것은. 그 옛날에는 저수지가 없고 하다보니까 여기서 부터서 쩌그 은신골이라고 하는 꼴창이 있어. 꼴창에서 질게 수문 앞바다에까지 내려간다 해서, 물이 질게 내려간다 해서 장수마을이고. 말하자믄 오래 산닥 …
임박사는 우리하고 한 살 차인디 그 분은 전대 마취과를 나와갖고 정년 퇴직 헐 때까지 거가 있었어요. 마취과장으로 교수 겸. 과장하면서. 그런디 그분을 키운 분이 하인호박사라고 병원장까지 하신 분이어요. 그 분은 지금 여든아홉살인디 살아계셔요. 두암동 아니 산수 2동 두암타운에 살아 계신디 그래 인자 보…
년도는 알 수가 없고 우리 할아부지가 지금 살았으면은 한 백 열 여덟 살이나 그 정도 됐을까. 저허고 마흔 네 살 차인가 됩니다. 우리 할아부지가 젊었을 때 왜정 시대에, 일제가 막 많이 착취를 해가기 위해서 혈안이 됐을 때, 그때 얘깁니다. 근디 그곳에 풍산골이라는 약 만평의 땅 가운데, 53…
우리 할아버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긴데, 원래 이 부락이 조성이 된 게 아니고, 본래 여그서 일키로 미터 떨어진 디가 있어요. 지명이 괴사터라는 괴사터, 괴사터에서 마을이 형성돼 있어요. 지금은 집 한 채도 없지만, 마을이 형성돼 살다가 호랑이가 호식을 많이 해간다 해가지고, 숨어서 여기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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