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08_MPN_20160622_KKY_MKD_001
    조사장소 :
    해남군 삼산면 신리길 42번지
    조사일 :
    2016-06-22
    제보자 :
    민경덕(68세)
    조사자 :
    김경윤, 민경
    줄거리
    남민전 사건으로 8년 동안 옥중 생활을 했던 김남주 시인의 옥중 시들을 몰래 세상에 빼내어 줬던 교도관 시절 이야기.
    내용

    남주를 얘기하자믄 이 남주 친구 강이, 훈이 선생 아들. 강이를 얘기해야 돼. 이강이가 남주 친구거든. 남주는 그 남조선, 그런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받아 갖고 70년도 초인데, 년도는 확실하게는 모르겄구만. 그 당시 나도 인자 거그서 인자 쫄짤 때. 그런 때 왔고. 강이는 3년을 받아 갖고 왔드라고. 징역을. 강이는. 그래 인자 강이가 누구냐므는 우리 마을, 옆 마을에 우리, 나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담임 한 이훈 선생님이라고 있어. 선생님의 자제여. 우리가 선생님을 겁나 좋아하거든. 그 선생님을. 참 존경해. 그란디 그분의 자젠디. 강이는 나한테 학교는 2년 선배지만은 그래서 인자, 그 당시 내 마음은 내가 모자 벗는 한이 있드라도 내가 남주를 도와줘야 쓰것다. 그른 마음으로 인자 남주하고 했제. 인자 강이가 말한 거여. 나는 얼마 안 남었으니까, 나보다도 그 남주를 좀 도와주라고. 그 때 당시까지는 내가 남주를 몰랐어. 근데 남주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인자 그, 사담을 하자믄. 남주가 초등학교 졸업장백에 없어. 왜 없냐. 해남중학교를 나왔는디. 해남중학교가 불 나부렀대. 그래가꼬 졸업장이 타 부렸어. 그래가꼬 광주 일고로 갔는디, 광주 일고 2학년 때 검정고시를 봐 갖고 전대를 들어가부렀어. 2학년 때. 그래가꼬, 또 전대를 졸업했냐, 그라믄 졸업을 안했어. 졸업을 못했어. 그랑께 졸업장 떼어 갖고 오라믄 초등학교 졸업장백에 없어. 남주가. 그래가꼬 남주가 공부할 때, 어서 공부했냐믄 광주 동명동에서 교회에서 선중이하고 같이 공부를 했어. 그랑께 선중이하고도 친해. 남주가. 선중이, 강이가 나하고 동갑인디. 한 살 빨리 학교를 가갔고 강이랑 동창이여. 둘이. 남주가. 그래서 인자 남주하고 강이하고 나하고 말하기를 밖에서부터 아는 친구다.

    그래야 그때 당시 친구 만나러 간다고 그라제. 해남 사람인께. 만나러 간다믄 그 당시에 만날 수가 없어. 말하자믄 광주교도소 인자 특별 사동으로, 특사라고 그래. 특별 사동에서 있는디, 거그는 그 국가보안법. 옛날에 그 6.25때 넘어오신 분, 그때 당시에 방이 71개 있는데 그른 사람들만 수용하는 곳이여. (청중: 사상범만 있구만.) 그라제. 사상범만. 그라고 거기 근무하는 직원은 또 따로 뽑아. 그래가꼬 거기는 무조건 못 들어가. 아무나. 나는 왜 거기 출입이 가능했냐면은 의무실에서 약품을 담당했거든. 의무실에 근무를 하니까. 그랑께 나는 아무나 만날 수가 있제. 여자도 만나고, 약품을 만나니까. 그라고 사제 약을 본인이 약을 산다하믄 주문 받고 그러니까. 그래서 인자 남주하고 약속을 한 거여. 밖에서부터 친구였다. 그래서 인자 나이는 나보다 두 살을 더 묵었는데 친구로 지냈제. 한번 친구 했으니까. 그래 가지고 남주가 시 같은 거 쓴다고만 알었제, 이르케 인자 잘 쓰고 으짜고 하는 것은 내가 시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몰랐어. 그런데 인제 자꾸 그 당시에 종이에가, 뭔 종이, 마분지. 이만한 거, 32절 화장지. 요것이 인제 화장지드라고 화장지. 마분지가 껌하니 놀놀하니. 그것에다 쓰는 거여. 어떻게 쓰냐고 한께. 인자 연필이 없을 때는 인자 나뭇가지에다가 이르케 눌러서 씀은 비치게끔. 그래서 그르케 쓰는 거여. 그르케 쓰고. 인제 연필 토막을 비공식으로 또 갖다 준 사람도 있었고. 요만한 거, 큰 것은 못 갔다 줘. 걸리니까. 만에 하나, 그 누가 방을, 수시로 그 방을 검열을 해. 언제나. 그러니까 입에 물고 있어 불고. 물고 있어 불믄 돼. 그래서 물고 있어 불믄 입 벌려봐 이러고는 안하니까. 항문까지도 막 뛰게 하고 그러니까. 그란디 거기서 뭣 나오믄 여기서 처리를 못해. 안기부가 직접, 그 당시에 국가 정보부하고 직접 연결된 사람이 있으니까. 인자 그른 상황에서 인자. 그라잖아 강이가 나와서 출소를 했어. 강이가 출소를 해갔고, 남주 시를 내가 그 때 부터 빼내기 시작을 했제. (청중: 자네가?)내가 다 빼준거여, 그거. 거의 내가 뺐제. 그 벽에 붙여진 것은 거의 내가 해줬어. 거의 내가. 벽에 뭐, 짤막짤막하게 써진 것은. 나중에는 인자 사담, 나중 얘기다만은, 인자 사담으로 남주 나왔을 때, 너 이거 갖고 나온 수입 반은 내 것이다. 그랑께 어이 그라세, 그라세 했어. 무조건 내가 다 뺐제. 하도 많이 빼준께 나중에, 그것도 인제 빼갔고 막 그냥 강이를 갔다 주냐므는 그것도 아니여. 인자 그 덕에 인자 내가 80년대 초부터 아파트 생활을 했어. 엘레베이타가 없는 5층짜리 4층에 사는데. 거기서 지금도 나를 민총무라 그래. 총무를 남주 땜에 오래 했어. 왜냐므는 그것을 어디다 감춰갖고, 감춰갖고 안기부에 걸리므는 내가 죽거든. 파면이 아니라. 저것이 빨갱이로. 그른 상황이여. 그래가꼬 인자 그럴 상황이라. 인자 비니루에다가, 남주는 아무 때나 주지만은 강이는 한 달이나 두 번이나 나한테 받으러 오거든. 강이는. 나와서 자기 생활도 어렵고. 그러니까. 한 달에 두 번이나 오지만. 그것을 인자 비니루에다 싸 갖고 우리 화단 나무 심어 논디가, 인자 아파트가 얼마 안 돼놔서 내가 거그서 일한 것은 의심을 안한디, 다른 사람은, 내가 총무가 아니므는 저사람 뭐한다냐 그르지. 그래가꼬 몰래 파서 땅속에 파묻어 놔. 내가. 파묻어 놨다가 인자 강이한테 많이 모아졌은께 아 좀 가져가라 그라제. 있음은 항상 불안해. 왜냐하믄 언제 누가 그 나무를 팔지를 모르니까. 그것을. 그랑께 항상 불안해 갖고 지금까지 우리 집사람도 몰라. 내가 그거 한 것을. 아무도 모르제. 그것을 갔다 편지를. 집이다가는 못 놔둬. 쪼끔만 놔둬도 만에 하나 우리 집에 검열해 갔고 나왔다 하므는 완전히 나는 인자 몰러, 그 당시에 남주는 완전시 빨갱이로 취급을 했으니까. 관에서. 그람. 빨갱이로 취급을 했으니까. 그래 가꼬는 그것을, 하도 많이 나온께 강이가, 워 인제 그만 좀 제발 쓰라 하쇼. 죽겄네. 그래가꼬 다른 사람이 빼낸 것도 쪼끔 있지만은 거의 내가 간수를 해줬제. 왜냐므는 내가 안오므는 아프다고 의무실로 오니까. 그래가꼬 나를 만날 수 있고. 그래가꼬 하도 인자 남주하고 접촉하면 직원이 또 오해하까마니 그 옆에 선경식이라고 있었어. 광주일고 출신인데 거그는. (청중: 거그도 사상범으로 이르케?) 잉, 거그는 그 때 저기 긴급조치 막 할 때여. 전두환 시절, 아니 박정희 시대에. 선경식이가 광주일고 출신이여, 남주 1년 후배여. 그래가꼬 나중에 기자 생활을 했는디, 기자여. 기자하다 들어왔어. 개가 갖고 나를 만날라 한디, 이르케 인자 나 온가 내다 본디 저만 검열을 해 불거든. 그러니까 선경식이가 그걸 묵어 분거여. 입으로. 이걸 갖고 있다가. 어따, 감출수가 없으니까. 1점, 1점 2평짜리 단칸방인데. 숨길디가 없제. 그러니까 이제 함부로, 일반수보다도 우대를 해주제. 인자 때리거나 뭣하거나 그러든 안 해. 직원들이. 얘기를 하고 사정을 하고 정식으로 법적으로 하자고 이러고 이러제. 긍께 오물오물 해가지고 춤(침)이나 나오나 잘 안 나오제, 그걸 넘기도 목에 걸린 거여. 입속에서. 선경식이가. 그럴 때 남주 심정은 어쨌겄어. 또 밖에서 보는 나는 어쨌겄어? 본디이. 그른 과정도 겪으고. 그라고 볼펜은 그, 그 남주 부인이 박광숙인가? 저 홍인표라는 직원하고, 나중에 남주는 홍인표를 도와줬어. 홍인표가 책을 쓸 때 남주가 봐주고 그랬거든. 그 직원하고 나하고 둘이 남주를 보살펴 준거여. 이런저런 일을 다아. 그러나 남주가 생활은 참, 진짜 나는 남주가 죽었다 한께 참 얼척이 없데. 그 혼자 사는 생활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냉수마찰을 해. 겨울에도. 그르케 참 몸 관리를 잘 했어. 키도 나만한 해. 얼마 크도 안 해. 키도 도투막 하니 이르케 건강해. 거그서 제일 건강했거든 남주가. 그른디 나와서 인자 살만 하니까는 어째 나와서 그르케, 안쓰럽드만. 그래 내가 항상 그 5.18 거기 가므는, 5.18 묘역 옆에가 있어. 남주 묘가. 참말로 내가 술 한 잔 붓고, 아야 네가 살었으므는 같이 술 한 잔 할 것인디. 잉, 그른께 남주는 그 과정을 다 설명할라므는 오래 걸리고오. 모든 사항 한나 한나를, 시를 빼 낼 때, 다 기록은 없어. 그 중에서 인자 캇트 시킬 것은 캇트 시켰겄지. 편집하고 하면서, 뭣 하면서어. 그른께 많은 양을 빼주긴 내가 빼줬어. 하튼, 몇 번을 묶어갔고 그 아파트 그 화단에다 파묻었다가 한 달이나 두 달, 어떨 때는 또 서울 가고 없어. 광주가. 지 생활도 할라니까. 그라믄 오래 또 보관해놨다가 또 가끔 열어봐. 물 들어가서 썪었는가. 것도 파 보기도 밤에 파 보제 또. 가만히 가갔고. 그람은 “누구냐?” 그라믄 “나여.” “내가 여 총무니까 나여.” 그라믄 “뭣하요?” 그라믄, “잉, 나무 좀 보니라고.” 그, 그른 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니까. 시가 또 나오니까, 나는 그 당시는 그 해야 된다는, 당연히 내가 해줘야지 할 사람이 없다. 그 생각만 했는디. 남주라는 사람이, 지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유명한 시인이었는데 쪼끔 내가 더 잘해줄 것을. 그 생각도 들데. 솔직하니. 그란디 그때는 진짜 짜증났어. 불안해. 그라고. 내가 불안해. 가무는, 어여 친구, 그라믄 다른 직원들이 다 주시를 하거든. 그라고 방을 보무는 직원하고, 그 직원을 도와주는 재소자가 밖에서 인자 청소부라 그래. 그래 일하고 있는데, 거 맺 방, 맺 방 들어간가 보라고 그래. 그래 불고. 약을 직원이 신청한디 남주는 신청 안했을 때 남주 방에 있음은 뭣이 또 이상하잖아 또, 인제 그른면 저른 것을 참조하느라고 자꾸 빼낼 때, “응, 여기 있어, 가지고 가!” 이런 상황이 아닌디. 몰래 살짝, 내가 약 주는 시늉을 하믄서 가만히 요쪽으로 받어 갔고 가만히 호주머니에 넣고 그르케 빼갔고 인자 직원이 인자 고발해 불므는 거그는 인자 점수 올라가고 나는 인자 파면 돼야 불지 나는. 그른 상황이여. 응. 특사란 데는 아무나 못 들어가. 그 동행부에다 써. 출입한 사람을. 누가 출입 했다는 것을. 그른 생활을 했제. 남주가 어려운 생활을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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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산21-김남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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