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갑진은 지금 보면 의미가 너무도 작아. 현대에 비해서 생각해보면 너무도 작기 때문에 소총의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동서남북이 모두 200미터 를 넘지 못했어.
왜적들이 총만 있었더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인데, 물론 그 당시는 화살이었겠지만, 800명 정도의 수군이 주둔해 있었어.
금갑 본도만 아니라 금갑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파견 초소 근무를 했던 모양이야. 금갑에 본진이 있고, 죽림 쪽, 초사리 쪽 대명리조트 짓고 있는 송군 쪽 일대에 진지를 구축해가지고 해안 경비를 했던 모양이야. 그렇게 유지해 오다가 침탈해 온 왜구를 한 번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피해를 보았다는 기록만 보았지.
왜구를 잡아 보고하거나 치안을 유지 했다는 기록은 전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어.
금갑진을 계속해서 유지해 오다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 옛날 러시아, 청나라, 일본, 세 나라가 우리 한국을 자기 세력 안에 두기 위해서 각축전이 벌어졌어.
그런데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그 다음에 러일전쟁을 해서 이기고 나서는 1894년 갑오년에 그때 금갑진이 폐지되었어. 설치 연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1894년 금갑진이 폐지된 것은 어르신(父)한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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