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8_04_MPN_20170510_LMS_PGN_0001
    조사장소 :
    구례군 구례군 토지면 하죽마을
    조사일 :
    2017년 5월 10일
    제보자 :
    박길남(남, 78세)
    조사자 :
    이미숙
    구현상황

    목이 아프셔서 말을 하면 안되는 상황인데 이야기를 하신다며 조심조심 해 주셨다. 

    줄거리

     6.25 전쟁 당시 어르신은 여수에서 살고 계셨다. 전쟁이 나자 걸어서 여수에서 구례까지 오셨다고 한다. 철도 길을 따라 순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구례까지 이틀 만에 걸어서 오셨다. 국민학교도 1학년을 다니다가 구례로 와서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는데 다니지 못했다고 하신다. 중산이라는 마을은 사건으로 마을에 불을 질러 마을 자체가 없어졌다고 한다.

     

     

    아버님은 여기가 인자 거기 중산리라고. 인자 여수 내려와 가지고 이제 그 마라보시? 마라보시라고 했구만 그때. 마라보시라고 그게 창고! 거 위에 뭐 다는거. 

    어머니를 만나가지고 날 낳은 모양이여. 

    그래가지고 인자 딱 동국민학교 일 년 딱 댕기고 반란사건 일어나가지고, 그때 또 6.25 나부렀지 뭐. 

    그래가꼬는 걸어서 요 구례까지 왔어 구례까지. 이틀간을. 반란사건 끝나고 6.25때 인갑지? 6.25때. 

    뭐 인민군들 내려와 가지고. 그래가지고 저~어기 순천 위에 거가 뭔 동네냐 거기서 하루저녁 자고 우리 땐 열차도 없고 차도 없고 거기서 하루 저녁 자고 어머니랑. 

    아버지는 인제 일찍 와브렀고. 거기서 하루 저녁 자고 여기 왔지. 

    걸어서 걸어서 이틀간을. 걸어가꼬 철뚝 길을 쭈욱 철뚝 길을 타고 그래가지고 여기 와가지고 뭐 딱 나는 학교라는 것은 동국민학교 1년밖에 못 다녔네. 

    이제 여기 오니깐 모두 학교 간다고 갔싼디 나는 학교도 못가재, 도로 여수로 내려가잔 소리까지 했었구만요. 없는 세상 산 사람이여 내가.

    저기 중산이라는 데는 반란사건 나가지고 뭐 불을 싹 대쁘렀다냐 뭐 그래가꼬 없애뿌렀고 집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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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48-6.25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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