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3_07_FOT_20180321_KJK_BJI_0002
    조사장소 :
    순천시 순천시 상사면 용암리 용암마을회관
    조사일 :
    2018. 03. 21.
    제보자 :
    박종익(남, 1940년생, 78세, 토박이)
    조사자 :
    김종균
    줄거리

    용암에 살던 육대조는 오곡에 있는 부모님을 아침저녁으로 문안해 조선 숙종 때 효자로 이름나 정려문을 받았다. 육대조가 조부를 장사할 때 장지가 사람과의 운이 맞지 않아 이장을 하려 했는데, 조부 이장을 하고나서 조모의 묘를 파헤치자 묘에서 김이 나, 좋은 자리라 하여 이장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부의 묫자리가 좋은 자리라 하여 박종익 씨 육대조를 그곳에 모셔 결국 조모와 손자가 합장된 셈이다.  

    내용

    저희 육대조 할아버지가요. 저 건네 가믄 정문이 있는데 그 정문이 제가 정확한 연도는 잘 모릅니다만은, 난세 때 현판이라든가 이런 것이 다 없어져갖고 다시 만들면서 그때는 형편이 어려우니까 일제시대에 그 자료를 많이 분실해갖고 조잡하지만 지금 많이 간략하게만 돼 있어요.

     옛날에 그 얘기를 제가 전해들은 바에 의하믄, 오곡에서 삼남 중에서 둘째 아들이 저 건네 오신 할아버진데,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구남이답니다. 아홉 그렇게 전해만 들었어요. 구남인데 그 아홉째 번 할아버지죠. 저 우리 할아버지로 봐서는 잉? 

    아홉 번째 할아버지의 후손이 지금 여그 도사박센 집 그 집안인데 거그가 먼저 여그 이사와가지고 여그서 잘 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산 곳에로 간다고 결혼해가지고 요리 이사를 요리 왔답니다. 결혼해가지고 와서 살았는데 새벽마다 날 새기 전에 두 부부가 오실, 오곡 저 부모님한테 가서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허고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밭을 칠랍니다.”

    오곡을 들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밥을 먹고 또 오곡까지 넘어가서,

    “오늘 이렇게 이렇게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잘 계셨습니까?”

    허고 인사를 허고 왔다 그럽니다. 그런 전설을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수년간 계속 되니까, 그 얘기가 올라가갖고 그 숙종 때라든가 무슨 임금님한테까지 전달 돼서, 정려문이라는 효열문을 하사를 했답니다. 

    그랬는데 일제시대 헤쳐지고 못 쓰게 되고 분실되고 그래서, 그 뒤에 후손들이 힘이 없어서 지금 저렇게 초라허게 형편없이 복원된 거이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해져 있고, 묘 얘기를 해야 할까 말까 했거든요. 

    먼저 와 살던 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막내 할아버지가 묻힌 산이 쩌그 있습니다. 저 쪽에 그 ‘겨메난골’이란 디가 있어요. 지금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해년마다 벌초허고, 거기는 종손이 다 관리를 허니까. 

    그런데 그 할아버지, 할머니 묘가 좋은디, 아무리 터가 좋아도 그분허고 뭐 운 관계가 또 있고 근갑듬만요. 땅허고 나하고 운이 맞아야 된다고 그런 말도 들었어요. 

    근데 점을 헌께 뭐이 안 맞는다 해갖고 파낼라고 영감님 묘는 파내고, 할머니 묘를 막 파고 있는데, 저 건네 장에 갔다 걸어서 오던 그 너머 사람들이 보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그 때는 산으로 저 땀고개재로 넘어서 매재를 넘어서 이렇게 오거든요. 

    “묘에서 김 터진다! 김 터진 자리는 좋은 자리니까, 그 묘에서 김이 터지니까 빨리 도로 묻어라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 묘는 파다가 도로 묻어서 묘를 만들고, 영감님 묘는 파불어서 비어서 있었단 말입니다. 근데 우리 거, 손자뻘 되는 젊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그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 몰라도 거 자리가 좋다고 해서 거리 묘를 써 놨습니다. 

    그래서 시제를 모시믄 남편 자리에는 손자가 묻혀 있고, 여그는 할머니가 묻혀 있고 그런 꼴이 됐단 말입니다 지금. 그때 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묻었는가는 몰라도. 지금 와서 설명을 들으믄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시제를 모시러 가믄 양쪽 손이 다 옵니다. 

    제물은 우리 종손이 채려갖고 가서 놓고, 절은 양쪽 집 손들이 온 사람들은 오고 못 온 사람들은 못 오더라도 절은 같이 헌단 말입니다.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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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대조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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