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돌연장을 지고 소로길을 갔던 기억과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뒤에 저 나무를 아까 그 ‘회’자 우리 증조 할아부지 거그 그 양반을 모시면서 나가 열네 살 때 쩌 금천이란 바닷가에가 있는디, 최영감 집이 가 거그 가서 돌 연장을 지고 오라 글드라고.
아 그래서, 그때는 길 한나도 없고 요 소로길로 농삿길만 있는 그 새로 가서 그걸 짊어지고 온 것이 여련이 생각 나. 나가 저 풀도 베고 낙엽이 있으믄 긁어도 내고 이런 것이 시방 기억나네.
경인년에 갔다가 6·25가 터졌는디, 그 뒤에 절골이라고 헌 학자 이약 안헌갑네. 그 분들이 거석해서 이런 좋은 문적을, 난리는 나쌓고 종이란 것은 소실돼뿔믄 끝난 거인디.
그래도 각자라도 한나 해노믄 되지 않냐 해서 참, 우리 부친을 권고를 해가지고 아까 그 마석을 다듬아갖고 헌 것이 시방 그 흔적이라. 예 우리도 배왔으믄 나가서 거석 허 꺼인디 군대 삼년만 갔다 객지에 갔으까 폥상 여기서 태어나고 살다가 말았어.
그래농께로 돈 벌 길은 없제. 자식들은 나가도 즈그 먹고 살기가 바쁘고 해서 항시 나가서 아 이것이 참 잉. 각자라도 내력을 쭉 허니 기록을 해가지고 쪼금 사회에 모범이 되겠기해야 꺼인디 이 일 못허고 간 것이 한스러와.
우리가 옛날에는 참 갖다가 자기 부모한테 자기가 어질게 해도 표창장은 남이 준 거이거든. 그래 타의 모범이 되고 이 나라가 끝날 때까지 그래도 효친 사상이 앞서야만이 대접 받은 나라가 되고.
긍께 어른이 대접 받지못헌 시대가 돼 뿔고. 나라에 충신 없고 열녀가 없는 시대라. 지금 젊은 사람도 신혼여행 가서 툴툴툴 해서 다투믄 까딱하믄 이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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