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589_MONA_20170904_DWR_KGR
    PBW_001
    조사장소 :
    진도군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진도문화원
    조사일 :
    2017.09.04
    제보자 :
    박병원 (남, 72세, 1945년생), 김길록 (남, 64세, 1953년생)
    조사자 :
    박정석, 박영관
    줄거리

    1970년대 진도에 극장도 없고 다른 문화시설이 없을 때, 6개 면을 다니면서 유랑극단을 꾸려 영화와 대한뉴스를 상영하고 악단들이 공연을 하며 주민들 노래자랑도 열었다. 문화원과 지역면사무소가 주도적으로 협조하여 4년 정도 지역 순회공연을 했던 초창기 진도문화원 역사를 김길록과 박병원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내용

    김길록 : 우리가 시네마 뭐 진도극장 역사를 더듬어 봤을 때, 우리가 과거에 대선배님 조담환씨, 그 원장님께서 진도문화원을 최초로 설립하신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박병원 : 당연히 그분이 문화원 창립, 창설을 했제

     

    김길록 : 그러죠. 형님도 그런데 그때 당시 아마 70년 전인지 70년 후인지? 70년도 후반기가 됐던지, 아무튼 내가 그 기억은 확실하니 연도는 70년도로 알
    고, 아, 몇 월 그 언제 했다는 그거는 어떻게 내가 기억 하겠소 형님도 마찬가지고 70년 아마 후반기까? 전반기까요?

     

    박병원 : 70년도 한 중반, 그때 약간 날씨가 더웠을 때여. 그랑께 여름 지나고 가을 무렵으로 접어들 때 그때 아마 한 것 같애. 아니 70 몇 년도? 70년? 75년도냐? 76년도냐? 그거를 응삼이 형님한테 물어본 것이고. 내 생각은 74년도 야튼(하여튼) 후반이었응께.

     

    김길록 : 그때 한참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끼리 우리가 개나리악단을 조직 했잖습니까? 우리가 그때 당시에도 문화원회원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문화원 회원들이 많이 없었어요. 직접 참여하는 회원들은 내가 생각했을 때, 선배님도 그걸 기억하실란가는 모르겠지만은 문화원에 나와서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삼십 명 정도였지 않느냐, 나는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생각이 드는데 아마 그랬지요?

     

    박병원 : 그때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문화원 회원가입을 안 했었어. 주로 국악 계통에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이 처음에는 가입을 해서 그때 당시 내가 이사도 하고 그랬었는데 30여명 정도였을 거야 아마.

     

    김길록 : 아! 그랬어요? 형님 이사였었그만. 나는 그때 회원이었는디. 우리가 문화원에서 매년마다 중앙 정부에서 반공교육을 도서지방에 홍보해야 된다
    그래갖고, 우리 원장님이 지역 유지들이랑 주민들 전부 초청해다가 국가 시책이기 때문에 반공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노래자랑을 하든
    지, 끝나고 하든지 하는 것을 우리한테 사업을 주어서, 진도 일곱 개 면에 순회 공연을 했지라.

     

    그 옛날에는 진도에 전기가 안 들어왔지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순회를 하면서 공보실하고 문화원하고 발전기를 가동해가지고 영화를 하고, 또
    대한뉴스 기억나죠? 대한뉴스 끝나고 우리가 30분짜리 영화를 면민들에게 보여주고, 그것 끝나면은 우리가 그 순회공연 노래자랑을 정회하고, 내가 그때
    당시에 명색이 진도문화원 전속가수로 등장을 했제라. 기억나죠? 그래가지고 우리가 조도까지 순회를 매년 했잖습니까? 임회면, 지산면, 고군면 다 돌았었제라. 나는 군내는 기억이 안 나요.

     

    박병원 : 군내는 안 들어갔어.

     

    김길록 : 그러죠?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조도면, 읍내 우리가 철마광장 앞에서 영화하고 뉴스도 했었고 더듬어보면 문화원에서 70년대, 그러니까 박정희 대 통령 시절 때 했던 그 활동이 기억나요.

     

    박병원 : 그랑께 왜 반응이 좋았냐 하면, 그때 당시는 영화 보기도 어려운 시절이고 전혀 문화 시설도 없었고, 또 음악 자체도 악기를 갖고 면 단위로 다니면서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상황이었어. 그것도 문화원에서 추진했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원하고 합류를 해서 당시에 다녔거든. 근데 각 면에는 그런 것을 생전 듣도 보도 못 했을 거야 아마. 반응이 엄청 좋았거든.

     

    김길록 : 전기도 없는 시절이었고.

     

    박병원 : 어 그럼, 그래앚고(그래갖고) 그때 당시에 면장도 나와서 합류하고, 음~

    지서장이나 그 지역 유지들이 다 참석을 해서 그 행사를 빛내 주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거든.

     

    김길록 : 그리고 형님, 면에 유지 어르신들 또 지서장께서 사전에 며칠 날(며칟날) 거그서 영화를 한다, 또 공연을 한다 그러면은 면하고 지서하고 합류를 해 가지고 무대까지 다 지었습니다. 무대까지 전화로 다 지었어. 그리고 우리들 모든 식사를 전부 해결해주고 우리 거마비까지 줬잖아요.

    우리가 조도 한번 들어갔었지요. 예, 근데 태풍이 한번 있어가지고 우리가 아주 작은 배를 타고 한번씩 들어가니까, 그래서 진도문화원에서 매년마다 순회 공연 겸 순회 반공영화를 인자 일 년에 한 번씩 했었는데, 우리랑 같이 다녔던 분들 중에 조금리에서 태어나신 주종호씨 그 선배님, 그분이 형님한테는 후배지만은 나로서는 아마 세 해 정도 선배 될 거요. 지금 종호 형이 어디가 계시오?

     

    박병원 : 제주에가 있지 지금.

     

    김길록 : 제주에서 지금 뭐 하신다? 제주에서 지금도 악사요?

     

    박병원 : 아니, 그건 인자 접어두고 그림화원, 저 그 표구사도 하고, 화랑도 하고, 자기도 직접 그림 그리기도 하고.

     

    김길록 : 그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은 한번씩 나하고 통화를 하는데, 그러면은 그 주종호 선배님께서는 그때 기타를 하셨지요. 기타 하셨고, 우리 박병
    원 선배님께서는 드럼을 치셨고, 또 양진 선배님 그 선배님이 하굴이요 중굴이요?

     

    박병원 : 하굴 살제.

     

    김길록 : 하굴, 예 지금도 섹스폰 활동을 하고 계시드만요.

     

    박병원 : 그라제, 지금도 밤무대 있제. 업소에 나가서.

     

    김길록 : 그러면은 종호 선배님하고 박양진 선배님하고 예~ 우리 박병원 선배님하고 삼인조였습니까?

     

    박병원 : 아마 그때 당시는 그렇게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또 없었어.

     

    김길록 : 그라고 그 후로 아마 트럼펫을 내가 한두 번 같이 한 기억이 나요. 그라고 반공 영화가 사라진 다음에 옥천극장이 탄생해가지고, 그때는 우리가 정식으로 문화원에서 막을 내리고 노래자랑, 군민노래자랑, 또 뭐 지산면 면민노래자랑, 임회 노래자랑, 조도 면민노래자랑, 예 고군 면민노래자랑, 마 우리가 의신서도 안하고 안그랬습니까(노래자랑을 했다,)? 그러면 그때 당시 정형철씨가 많이 참여를 했어요.

     

    박병원 : 그때는 정형철이 투입이 돼서 같이 했었어.

     

    김길록 : 그래서 그때 당시 사인조가 되었고 진도 문화 역사를 보믄은 문화 예술에 대한 거는 총체적으로 지금 조원장께서 상당하니 큰 업적을 남기셨다고 저는 그케 생각한데 형님은 생각이 어떻습니까?

     

    박병원 : 어떻게 되었던 간에 문화원을 창설하신 분이고, 법인체를 만드신 분이고, 진도에서는 그래도 그분이 진도 문화를 처음 초창기에 살린 분이 조담
    환씨였어. 그분이 끌어가는 상태에서 그 차후에 박병천씨란 분이 중앙에서 쪼금씩 알려지면서, 크면서 그분이 진도 문화 발전에 상당히 빛을 내주신 분이여. 그랑께 그 두분이 진도 문화로 봐서는 공로자들이여. 두분 다 작고를 하셨지만은.

     

    김길록 : 그때 70년 도에 좌우지간 진도가 그런 문화 혜택을 보지 못할 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었지요.

     

    박병원 : 그러제

     

    김길록 : 예, 그래서 국가 문화공보부 지원 또 진도군청이 지원해가지고 문화원에서 그 사업을 매년마다 순회 영화상영을 하고 대한뉴스를 하고 군민 노래 자랑을 우리가 그런 순회 공연을 한 몇 년 했을까요?

     

    박병원 : 우리가 그때 한 4년 했을 거야.

     

    김길록 : 한 삼 사년 되겠지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이 납니다만은 삼사년 동안에 우리가 진도 7개면인데 우리가 군내는 이상하니 안 했어요. 6개 면을 전부 순회공연 하고 영화를 하고, 예 문화원 주관으로 했단 말입니다. 지금 그라믄 주종호씨 그 선배님은 한번이라도 진도에 옵니까?

     

    박병원 : 안 와, 진도를 한번 뗀 뒤로는 안 오든만.

     

    김길록 : 그라면 정형철 씨는 진도군청에 근무하시다가 돌아가셨고, 그리고 형님은 지금 국가지정 씻김굿 문화재로 지금 보유를 하고 계시고, 그러고 우리 박양진 선배님께서는 지금 모처에서 음악으로 활동하고 계시고, 나는 그림을 취미로 그림을 활동을 좀 하면서, 내가 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조금, 제가 이래뵈도 명색이 진도 대표가수로 활동을 했고요. 저 누굽니까 강정태, 아 강동태 형님이 지금 여기 진도가 계시지요?

     

    박병원 : 아, 형이 강정태씨고, 예 지금 거그 강정태도 국악을 하시제. 거가 다시래기 후보지, 지금 후보.

     

    김길록 : 그러면 동태는 나하고 친구거든요. 예 그때 당시 진도를 떠나서 서울에서 연예계 지금 활동을 하는 걸로 내가 알고 있는데.

     

    박병원 : 그때 처음에 올라가서는 밤무대에서 각설이를 갖고 활동하다가 지금은 굿판 세계로 뛰어들어가지고 지금 강신굿하는 보살들 그거, 지금 법사를
    하는 걸로 아는데.

     

    김길록 : 아~ 법사를 하고 계시구만, 대단한 쪽으로 또 가셨구만. 그래 나는 각설이로 밤무대를 뛰는 걸로 내가 전해 들었어요. 지금 한 20년 정도 될까? 그후로 진도를 방문을 해가지고 내가 한번 봤어요. 그래서 그 강동태씨하고 나하고 진도에 전속가수, 문화원 전속가수로 문화원에서 지정을 했지요. 또 우리가 할 때 여자분 한나 있었지요. 진도 전속가수 여자분 누굽니까? 내가 기억이 안 납니다. 이름도 모르고.

     

    박병원 : 나도 그 여자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나.

     

    김길록 : 그러죠 잉~. 여성 한 분이 있는데 지금 볼 수가 없어요.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라고 세 사람이 문화원 회원이고, 문화원에서 우리 셋을 진도군 가수로 지정을 해 줬어요. 그래가지고 문화원에서 가수증을 해서 주고 그런 시절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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