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3_01_FOT_20171213_AJH_LJJ_0002
    조사장소 :
    강진군 강진읍 목리 마을회관
    조사일 :
    2017. 12. 13
    제보자 :
    이정진(남)
    조사자 :
    김규식, 안종희
    구현상황
    목리 마을회관은 남, 녀회관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남자회관에서 구술을 받았고 마을 어르신들 10 여분이 함께 계셨다.
    줄거리
    남포와 함께 강진읍내 물산을 주름잡았던 목리, 밀집된 서민들 집 때문에 화마에 쓸려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아직도 목리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 역사는 흐른다.
    내용
    구술자: 목리서 사는 이정진입니다. 나이는 79세 물론 목리서 어려서부터 7대를 목리서 사는 주민의 한사람입니다. 물론 우리 목리 부락에 대해서 역사는 충분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강 어르신들한테 얘기를 들어보고 내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목리부락이라면 약 300세대 촌 전라남도에서 제일 크다고 인정받는 단일부락으로써 지금으로부터 백 몇 십 년 전에 목리 300촌에 큰불이 나가지고 서쪽에서 불이 나가지고 동쪽으로 한두 집 남고 다 타분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목리는 농촌에서 그 당시만 해도 없는 실정에 집을 짓다 보니까 갑자기 집이 아주 허술한 집, 우선 잠을 잘 수 있는 그런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땀[담] 집이라든지 그런 대강 대충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인자 세월이 흐르다 본께 집집마다 문화주택이 들어섰고 그냥 좋은 집들 갖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때도 있었고 그 후로 부락이 농선 이라는 사람을 실어 날리는 배인데 칠량 대구 마량 그쪽 사람들이 강진읍 시장을 오게 되면 농선을 통해 시장을 보게 되는 여건이기 때문에 그때는 농선에서 나온 소득이 우리 부락민이 다소 부락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는 거 그 후로 우리 부락에 큰 행사라 함은 줄다리기 행사가 강진군에서 제일 먼저 줄다리기 대회가 목리부락에서 있었는데 목리 부락이 크기 때문에 동서로 나눠져서 서로 경쟁, 서로 이길라고 의욕을 갖고 줄을 당기다 본께 서쪽은 남포 평동 이웃부락을 동원해서 줄다리기 인원을 확보를 했고, 또 동쪽은 농선이 있기 때문에 신학 신평 군동 일부 하신까지 그쪽 몇 개 부락까지 동원해갔고 그날 선비는 무료로 해가지고 그분들을 동원해가지고 그리고 우리 부락에서 동서가 나눠서 술밥을 대접하면서 서로 이기기 위해서 경기가 쭉 해왔는데 오늘날 오면서 옛날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다 본께 그런 영광스러운 경기가 다 사라졌고 지금은 명맥은 이어왔는데 그마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드립니다. 그라고 목리부락은 옛날부터 수 십 개 여러 가지 씨족이 살았는데 대부분이 여러 가지 성들이 여기서 5대, 6대, 7대 쑥 이어온 부락민이 이어왔는데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객지로 다 나가고 보니까 전부터 살았던 사람은 약 50%, 50%는 외부에서 와서 우리 부락에 거주하고 지금 이끌고 나가는데 지금 현재는 인구는 옛날 비해서 줄었지만 홋 수는 늘었습니다. 왜냐면 가족이 집집마다 자식들이 객지에 가서 살다 본께 노인네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살다 보니까 호수는 많아 약 400촌은 되었는데 옛날에 300에서 100호가 더 늘었는데 인구는 줄었습니다. 옛날에는 3000명 목리부락 3000명 인구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1000명 정도 될까 말까 그런 인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목리부락은 차츰차츰 우리 주민들은 사라지고 이웃에서 와서 우리 부락을 유지할 것 같습니다.
    조사자: 그 외에는 다시 다른 것 생각나시는 것 없습니까?
    구술자: 그전 이야기입니다만 그전에는 여기가 원래는 목리부락이 아닙니다. 목리부락은 지금 평동 앞에 여그 개동이라는 곳 있죠 잉, 바로 뒤여 거기가 일부 목리부락 이였고 지금 새 동네라고 저기 있죠. 거기가 일부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러나 그 부락들이 하나로 되어서 목리라고 했는데 목리는 옛날에 초리입니다. 풀초 자, 마을리 자, 소 원래가 유래를 보면 역사를 본다하면 강진읍이 원래 소 행국 아닙니까 소 행국이면 소눈깔이 옛날 충식이 집이 집 자리가 소구레라고 하고 시끄테가 소 쐐뿌딱 해갔고 소대가리 소쇄부닥 그라고 지금에 와서는 가우도가 소 멍에라고 하거든요 일부 강진에서 나이 자신 양반들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고 그래서 목리는 마장터 소가 풀을 먹는 그것보고 뭐라고 하요 소가 풀을 뜯는 목초지 초지라고 풀초 자를 써갔고 그 후로 목리라고 바꿔졌지요. 지금 현재까지 목리라고 목리가 그래서 목리가 땅이 걸다고 그 설이 많이 있죠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목리가 기름지기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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