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3_01_FOT_20171213_AJH_LJJ_0001
    조사장소 :
    강진군 강진읍 목리 마을회관
    조사일 :
    2017. 12. 13
    제보자 :
    이정진(남)
    조사자 :
    김규식, 안종희
    구현상황
    목리 마을회관은 남, 녀회관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남자회관에서 구술을 받았고 마을 어르신들 10 여분이 함께 계셨다.
    줄거리
    강진의 해양문호였던 목리마을 육상교통이 미흡하고 해로가 비중이 컷던 일제강점기 때 까지 물, 뭍의 교역을 장악하고 다리가 설치된 이 후로도 그 비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용
    구술자: 우리 목리 마을에 옛날에 농선 있을 때, 우리 마을 농선을 이용한 분들은 강을 건너야 되니께 군동 일부 칠량 대구 마량 그분들 이었재,  또  농선을 이용해서 우시장에 소를 팔로 오면 돈이 드니까 소 몰고 오면 돈 좀 얼마를 내니까 선비를 내니까 그분들이 돈 한 닢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농선 밑에가 물이 나면[썰물:빠지는 물] 건널 적에 건널목이 있었는데 그리 소 같은 것 많이 끗고 이용을 했고 또 일부 사람들은 농선비가 아까워서 다리를 걷고 무릎위에까지 찬 물을 건너서 시장을 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또 일부 칠량 일부 마량은 바닷가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산되는 모든 조개,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강진 시장까지 그때는 찻길도 귀했고 그랬기 때문에 머리에 이고 강진 시장까지 팔러 온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제, 먹고 살기 위해서 또 옛날에는 완도 일부 대부분이 배를 타고 미역이나 다시마를 강진 장에 와서 판매를 하기 때문에 목리 앞에 배들이, 섬 배들이 많이 들어와 가지고 팔고, 몇일씩 묵으면서 다 팔고 또한 섬사람들이 목리는 농촌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 짚이 많이 있기 때문에 짚을 여기서 미역과 여러 가지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들을 교환조건에서 짚을 가져가서 섬에서 엮어서 지붕을 올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그래서 섬사람들이 목리에 와서 직거래도 많이 했다는 거 그래서 지금은 추억거리로 되어있습니다마는 옛날에는 목리가 강진읍의 첫 입구가 되어서 섬사람들이 왕래를 많이 했던 목리 앞 선창가의 지금은 옛날 추억거리로 되고 지금은 배가 없습니다마는 여기 다리가 역사가 깊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마는 62년인가? 그때 다리가 완공이 되어가지고 다리 완공 준공식을 해가지고 양쪽에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서로 오고가고 그래서 그 다리로 인해서 목리가 많이 발전했다 라는거, 목리 약 30%, 총면적의 경지면적 30%가 산지 쪽에가 있다는 거, 군동이요 그래서 옛날에는 배를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다리를 놓으니까 참 편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목리 부락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소득 면에서도 더 낫고 또 부락민이 농촌 소득면에도 큰 영향을 입었고 지금은 옛날에는 삼신이라 하면 군동 땅이나 일부 삼신 농토를 많이 갖고 신학,  신평, 하신 그쪽 사람들이 농사를 짓었는데 지금은 다리를 논 뒤로 목리 사람들이 농토가 약3/1이 목리 농장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목리부락민이 농토가 범위가 더 넓어졌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목리부락민이 소득이 더 높아졌다 결론이 들겠죠. 목리 다리가 큰 이바지를 했다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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