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3_01_FOT_20171229_KGS_SHS_0002
    조사장소 :
    강진군 목리마을회관
    조사일 :
    2017. 12. 29
    제보자 :
    손홍식 (남, 73세)
    조사자 :
    김규식, 안종희
    구현상황
    구술자 집에서 조사자와 면대면
    줄거리
    우리 마을에는 공덕비가 여러 개가 있다. 이 비들은 마을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을 기리는 비들이다
    내용
    구술자: 제가 목리 사는 손홍식 이라는 전 이장입니다. 현재 마을 앞에 있는 비는 강릉 윤씨 윤현씨 고자대감의 비입니다. 원래 그분이 헌종 때 사람인데 철종 때 궁중 내시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그분이 칠량 도암 쪽에 살았는데 그 당시 도암 살면서 개가 붕알을 물어서 떨어져 부니까 고자가 됐습니다. 옛날에는 궁중 내시로 들어가려면 전 내시의 추천을 받았는데 윤현씨는 어찌케 들어갔냐 함경북도 산 헌종 때의 강릉 윤 씨라는 분이 고자가 있었는데 조선팔도를 당시 조선팔도를 다 훑어보니까 강진에 윤 씨라는 분이 고자가 있어서 그 양반에 의해서 양아들로 들어 가갔고 궁중내시를 하다가 그분이 60 환갑이 되며는 궁중의 궁녀나 내시나 퇴직하게 됩니다. 요즘 말하면 정년퇴직인데요. 그 퇴직을 해갔고 자기 고향으로 내려올 때에 그때 우리나라가 경복궁을 지으면서 대원군이 공명 첩지를 많이 발행하게 됩니다. 그때 그분이 궁중의 첩지를 많이 가져 오셔갔고 이 인근 고을 시군에 다니면서 팔아가지고 약 40%는 궁중에 대원군한테 받치고 나머지 60%는 경비 및 숙박비로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자기가 돈을 자기 조카인 재희에게 돈을 줬던 것입니다. 재희씨가 살림을 이루게 된 동기가 그이유로 되어 있고 저 비는 왜 세웠냐 당시 기해년에 기해년 봄에 우리 마을이 전체가 한 250가구가 전부 다 불이 나 부렀습니다. 그때 당시는 지붕은 짚으로 돼있고 울타리도 짚으로 돼있고 한집이 불나니까 바람이 불었던가 전부 전소가 되었는데 그 어려울 때 현씨가 쌀을 한 백여 가마니를 마을에다가 희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그 당시 인자 여기저기서 돈을 모은 재산을 사비를 털어가지고 마을에 기탁해서 마을 분들이 공을 기리기 위해서 저 비석을 세웠던 것이고 원래 저 비석이 마을 앞에 있었잖에 당시 한전 밑에 있는 땅이 유재희씨 땅인데 유재희씨가 자기가 양자이기 때문에 거기다가 비를 세웠는데 윤보현씨라는 양반이 그 땅을 사가지고 그 집을 사면서 보현씨가 비석을 자빠셔부렀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그럴 수 있냐 그래서 마을 앞에다 옮겨다가 해놨던 것이고 저기 한전 위에 보며는 동성탕에 비석이 있는 것은 제주 고씨 중추부사라고 되어있는데 그것도 내가 알기로는 그분이 벼슬을 한 것은 아니고 당시 궁내첩지에 의해서 했던 것이고 그 옆에는 차 참봉 차영환씨 할아버지 공덕비인데 거기는 참봉이 도암 신기리쪽에 땅을 많이 가지셨는데 그분이 흉년이 드니까 임오년에 흉년이 드니까 그분이 곡수를 좀 감해줘 가지고 그 마을 사람들이 여기다 비를 두 개를 세우겠다 했습니다. 원래 그 땅이 차영환씨 땅이였는데 차영환씨 아들이 그 땅을 팔아버린 바람에 할 수 없이 그쪽으로 비석을 옮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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