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8_08_FOT_20170522_YMS_LSH_0001
    조사장소 :
    구례군 산동면 효동마을
    조사일 :
    2017년 5월 22일
    제보자 :
    이성현 (남, 65세)
    조사자 :
    윤명숙
    구현상황

    마을 이장님이시고 마을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다고 하여 방문하여 이야기를 요청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줄거리

    큰 바위가 자물쇠고 작은 바위가 열쇠라고 해서 쇠통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전에 밀양박씨가 정착 하면서 효자를 염원하는 뜻에서 효동이라고 부르던 것이 자를 발음이 어려워 으로 해서 소통굴 또는 소통골이 됐다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

    인자 자물쇠고 밑에 까라진 것이 키다. 그래가꼬 쇠통구리라고 불러. 쇠통이 자물쇠잖아 쇠통이 옛날에 쇠통이라고 그랬어.

    그랬는디 인자 그 말은 논리적으로 안 맞아.

    그럼 무슨 얘기냐면 쇠통이 효 으로 발음을 많이 했거든.

    여기 저 저 현천 앞에 가면은 효자모퉁이라고 그랬어.

    그 동네 그 마을 옆에 효자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때, 소자 모퉁이라고 그랬어. 소자모퉁.

    으로 발음해서 효동 자를 발음을 쎄게 해가꼬 그런께 소통구리라고 했지 안했는가. 소통구리가 맞아 쇠통구리가 아니고.

    그 저 그런 것 때문에 봐봐 인자.

    큰 바위는 쇠통 작은 바위는 열쇠를 상징하여 쇠통굴이라 명하던 이름이 소통굴로 변하여 현재의 마을명이 효동으로 이르게 되었다는 설과 남원에서 이주해 온 밀양박씨가 정착하면서 촌을 이루면서, 주산이 줄기가 풍수지리상 청룡혈로 효자를 염원하는 뜻에서 효동이라 명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마을은 바깥몰과 암몰 두뜸으로 산재된 마을을 1980년에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취락구조 사업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런께 금방 얘기헌 것 있잖아. 여기 저 쇠통이라고 허고 요것은 무엇인디 실제로 이것을 쇠통이 아니라 소통굴, 소통굴 그런께 효자 으로 발음해서 소통굴이라고 했지 안했을까. 쇠통굴로 효동굴 굴이 아니고 효동골로 효동골로 변했다 이렇게 해야 맞는 것이 않을까 요것이 맞지 않고, 근디 어떤 것이 맞다고 하는 전설을 우리가 알 수 없잖아.

    저기 효동은 맞고 효자를 염원하는 뜻에서 효동이라고 명했다고 그랬는디 염원은 무슨 염원을 해 효자가 있어야지 효동이라고 하지. 허허허

    근께 요런 부분을 어떻게 저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저어 큰 바위와 길쭉하면서 아담한 작은 바위가 저 밑에가 있어.

    그런께 큰 바위는 소통 자물통이라고 허고 다음에 작은 바위는 열쇠라고 칭허고, 그래서 이거 이 마을을 쇠통구리다 자물통이 있는 동네다. 쇠통구리라고 했던 했다고 헌단다. 그렇게 해서 이것이 쇠통구리 이것 이를 빼고 소통굴로 변했다.

    요렇게 전래된 것이고 그렇다는 것이지 뭐 어느 것이 뭐 정확히 맞다 그런 것은 아니고 요 어째든 인자는 우리가 문법으로 보면은 소통굴인데 소통골인데, 아니 효동골인데 효동 효동골인데 앞에 자를 으로 발음해서 소통골로 이렇게 통상적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우리는 여가 소통골로 다 알고 있어. 소통골로 알고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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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50-효동마을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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