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리 마을에서 미리 연락을 드려 만나기로 하여 마산농협에서 구술해주었다.
가랑이 마을에 박남규라는 효자가 살았는데, 군대영장이 나와서 가기 전에 남의 집 품팔이를 해서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 인근주막에다 돈을 주면서 우리아버지 오시면 큰 술 주라고 하고 추울까봐 나무도 많이 해서 놓고 군대를 갔는데 훈련을 하고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너는 여기 있을 때가 아니다 라고 해서 꿈을 깼는데 귀가 먹어서 집으로 보냈는데 집에 오니 귀가 터져서 결혼도 하고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3년 시묘살이를 하다가 여순반란사건 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다.
그 광평리로 가자면는 좌측으로 가면은 가랑마을이 있어요.
가랑이라는 그 마을로 딱 들어갈라고 했을 때 좌측에 묘가 있고, 그 비석이 있고, 또 그 한문으로만 써 노니까 자손들이 그 이해를 못 허니까 그서 그 그 집 아들허고 한글로 판을 해서 설명서 하나 써 놨어요.
가서 사진 찍어보면 딱 나와 있는데, 근디 그거이 왜 효자비라고 해 놨어.
박남규 효자비이라고 해 놨는데 그 박남규란 분이 그 마을에 시방 우리누님 바로 시집간 우리누님 그 집으로 시집가 갖고 우리누님 바로 시동생이여, 말하자믄 그런 분인데 그렇게 효자 였다 그거여.
인자 일정시대 일정시대 1943년이나 됐을까 일정말기에 한참 군대 영장이 나왔어.
일본으로 군대에를 가. 근데 이 사람이 열심히 자기 아버지가 그 박노봉씨라고 허는 분인데, 인제 상처를 허고 또 새로 부인을 얻어 갖고 사는디, 또 술을 좋아해 노인 자기 아버지가 인제 이 효자가 군대 가기 전에 열심히 너무 집이 가서 저 품팔이를 해가꼬 그 인근에 주막집마다 돈을 맽겨 놔.
나 없을 때 우리아버지가 술 잡수고 자믄 큰 술 주쇼.
싹 돈을 갔다 맽겨 놓고, 또 자기아버지 추우면 고생헌다고 나무를 기냥 막 어찌게 해다가 기냥 온 집안에다 못다 쟁인께 그 앞에 들까장 길바닥 있는디 나무를 해서 자기아버지를 그렇게 효를 했다 그거여.
그리고 자기어머니가 돌아 가셨는데를 아무도 모르게 어떤 이웃 사람이 새벽에 인나서(일어나서) 보니까 날 새서 사람들 안 보일 때 늘 가서 성묘를 하고 오드라 그거여.
나중에 알았다 그거여, 이분이 군대를 영장을 받아 놓고 헐 수 없이 군대를 갔는디,
일본 가서 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는데 훈련을 받다 자고 있는데,
꿈에 훤 신령이 나타나더니 머리를 딱 쓰다 드믄면서 너는 집이를 가거라.
니가 여그 있을 때가 아니다, 가그라 그러드래.
그 말을 꿈에 딱 듣고는 깜짝 놀라서 꿈을 깨보니까 귀가 꽉 먹어 뿔었대.
귀가 아무것도 안 들려. 긍께 인제 아 그 뭐 아무리 군대라도 귀 묵은 사람 그럴 수 없고 뭐 해도 안 된게 보냈뿔었어. 긍게 자기는 참 거기서 인자 오재.
와서 자기 집에 와서 딱 사립문에 안에 딱 들어서니까 귀가 딱 터져뿔었어.
귀가 터져뿔었어. 인제 그래가꼬 인자 살다가 열심히 참 그렇게 살고 결혼도 했어. 인자 이 마을 윤씨 파평윤씨가 여 자자일촌인데, 여 파평윤씨로 결혼을 해가지고 살다가 사는 동안에 여순사건이 터졌불었어.
여순사건 터질 때 자기 인자 어머니가 돌아가신디 돌아가신 뒤에 거기서 시묘살이를 해. 묘 옆에다가 인제 막을 쳐놓고 거기서 참 세수도 안하고 밥도 먹는 저만치 허고 3년간을 시묘살이를 헌디, 반란사건이 놔가꼬 우당탕 기냥 죽어뿔었어. 죽어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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