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2_07_MPN_20160817_RGM_0001
    조사장소 :
    고흥군 포두면 봉림리 금사마을
    조사일 :
    2016-08-17
    제보자 :
    류기만(남, 87세, 1930년생)
    조사자 :
    서해숙, 김영미
    줄거리
    제보자가 18살 무렵에 논을 파헤치는 멧돼지를 쫓기 위해 막사를 쳐 놓고서 지키고 있는데, 어느 날 밤중에 반란군이 와서 금탑사까지 안내해달라고 총으로 위협했다. 그래서 벌벌 떨면서 금탑사까지 안내를 했더니 고생했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이후 친구와 함께 밤을 따고 있는데 팔영산에서 총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금탑사에 데려다준 반란군은 금탑사의 근처 빈대절터에서 천막을 쳐 놓고 살았는데, 아군들이 쳐들어와서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나(내)가 18살 묵어, 그때는 굉장히 산에 멧돼지가 많이 있었드라. 산돼지가. 그래가지고 농사를 것다 모를 심어가지고. 벼가 패서 고개가 지면은, 산에서 묵을 것이 없으니까. 전부 맷돼지가 산에서 내로와서, 논을 막 기양, 나락을 못 쓰게 맹글아(만들어)불어. 벼를. 그래서 어머니하고 둘이서 상정에다 막을 쳐놓고. 상정. 돼아지 쫓은다고, 상정막에다 걸어. (청중 : 저녁으로 와서 묵은께. 돼아지가 먹은께. 막사를 해놓고, 거그서 지킨다 그 말이여.) 그렇게 해놓고. 저녁밥 먹으믄, 밤에 가서 지케(지키다). 그란디 하룻저녁에. 그 건너에서 성칠이란 그 사람이, “우여, 우여~” 그래. 그래서 나도 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단 말이여. 그라고 조금 있으니까. 시방 저수지 막은 디가 있는 길가에서, “어이, 어이~” 그라드만. 아무 소리 안하고. 금방 모다 돼지 쫓은다고 소리 지른 사람 있잖애. 어머니가, “왜 그라요?” 이라고 하니까 “금방 소리 지른 사람 어찌요?” “우리 아들인디요.” 그랑께 “그 사람 이리 나오라.” 그래. 건너오라고. 가슴이 썰 하드만. 그때 인자 좌파들이 있었어. 반란군들이. “뭣 할라 그라요?” 그랑께. 분명히 건너오라 그래. 나도 인자 겁도 없이 건너갔제. 열여덟 먹어, 18세 때 그랬으니까. “어처라고 오라고 나한테….” “어서, 들와.” 이상하니 들어오란께. “몇 살 묵었어?” 그랑께 “나 열여덟 살 먹었는디요.” “음, 됐어.” “왜 그러요?” 그랑께. 나보고 금탑사까지 데려다 주라. 그 말이여. 금탑사까지 데려다 주라 그래. 절에 까장(까지). 밤인께. 밤으로 댕긴게. 그래서 인자 할 수 없이. “아, 안 할라요.” 그랑께 “앗, 새끼. 디지고(죽고) 잡냐(싶냐)?” 이러고 거석을 해. 그래가지고 인자 18세 땐께 뭐 알 거요. 암말도 안하고 있다가. “가. 앞에 가. 앞에 서.” 그래서 가만히 본께. 뒤에서 총을 둘이 밌어(멨어). 칼빈총(카빈銃)을 두 자루. 한나썩(하나씩) 한나썩. “이 새끼, 안 가믄 새끼 쏴 죽여불어.” 이라믄서 [웃으며] 아이, [총을 앞으로 내미는 시늉을 하며] 총을 그러네. 그때 인자 겁을 묵고, 벌벌 하고 갔단 말이여. 저 금탑사 바로 대문 앞에까지 딱 들어가. “여가 금탑사요.” “그래, 고생했다.” 그라드만. 아, 돌아올란디, 구름이 꽉 찌어서(껴서) 금방 비가 오겄어. 밤에 인자 어두와서. 캄캄하제. “엿까지 데려다 줬은께 내려가. 이름이 뭐냐?” 하드만 “왜요?” 그랑께. “나중에 만나믄 하다못해 엿이라도 사 줄 거 아니냐?” 그래서, 그때 최강민이가 우리 동네 와서 안살았소. 나 이름은 안 갈쳐주고. 그 사람이 여그서 살다가 전라북도 어디로 가불었어. 이사를 가불었어. 전주. 그래서 “나, 최강민이요.” 그랑께. “뭐, 최강민? 알았어.” 그 사람이 쩌 섬(초도)에서 피난을 나와가지고 우리 부락에서 살았어. 그래서 인자 재를 호자(혼자) 겁을 묵고, 아는 길인께 막 뛰서(뛰어서) 내려와붔제. 그래서 인자 집에 와서 잠을 못 잤제. 무서워서. 그러다 가만히 생각한께. 그 안날. 금탑사에가. 가을이여, 가을. 산에 밤이 많이 열어가지고 그때 있었고 했은께. 그 안날, (청중 : 가을에 그때 한참 나락 훑으고 그랬어.) 거시기 귤이까, 그거이 뭣이. 지그 어메가 밤을 잠(좀) 영복이하고 둘이 따주라 그래. 그래서 거그 가서 밤을 딴디, 팔영산에서 막 콩 볶은 소리가 나. 총소리가 그렇게 나드라 그 말이여. ‘아하, 요놈들이 어저께 거석하드만 밤에 요리 피난온구나.’ 싶어서, ‘무담시(괜히) 이름을 갈쳐줬다.’ 나 이름도 아닌 걸 갈쳐줘놓고. (청중 : 그땐 이름 갈쳐줬다가 만약에 잘못 되믄 기양 죽여불어.) 가서 밤을 딴디, 팔영산에서 콩 볶은 소리가, “다, 다, 다, 다, 다.” 들어본께, 팔영산에서 몇이 죽고, 몇이 어차고 했다고 야단이드마, 다. (청중 : 여그서도 열둘이 안죽었소?) 그라믄은 “금탑사 중이 이름이 뭐냐?” 그라드만. 그래서 인자 ‘중이 이름이 뭐이고, 뭐이고, 뭐이고 한다.’고 가르쳐주고. 그때 가르쳐주고는 뭐라고, “거 가믄 참, 대우가 참 좋으 거요.” “왜 그래?” “아, 그런 일이 있소.” 그랑께 “잉,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본께, 사람들이 사상자였어. 거석이서. 중이 사상자였어. 일테믄 그 사람들하고 같은 사람들이여. [손뼉을 치며] 어찌 그랬냐하믄 나중에 알고 본께, 그 중이 쩌 보성 득량인가 어디 가서. 옛날에는 면장을 보고 분수소장이라 그랬거든. (청중 : 옛날에 이북놈들이 넘어와가지고, 이북놈들 지서나 그런 걸 보고 분수소라 그래.) 그런디 아들이 거그서 남로당 뭣을 하고, 조카들이 뭣을 하고 그랬다등마. 그 얘길 듣고 인자 그런 사람들이라 한께, 좋다 해. 그 얘길 나중에사 알았어. 그라고 나서, 한 이십일 뒤까?(뒤일까) 금탑사 스님한테 열둘이 죽었어. 나가 델다준 사람들이 막을 쳐놓고. 쩌그 빈대 절터라고 한 디(데)서. 절을 지었는데, 지금도 보면 빈대 절터라 한 디가 옛날 절터가 있는디. 비럭 밑에가 샘이 있어요. 산 몰랭이 바로 쪼금 내려와서. 샘이. 그 샘 옆에 절터에다가 천막을 쳐놓고 살았어요. 그놈들이. 그래가지고 거그서 살다가 우리 아군들이 인제 와가지고 발견이 돼서 거그서 다 죽었어. (청중 : 그 사람들은 여수 14연대여. 14연대. 여수 14연대가 그 적에 안일어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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